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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대형 은행 탄생…‘대형화를 통한 감량화’로 국제금융시장 주도
美 금융파워③…M&A로 경쟁력 강화, 사업다각화
2019. 11. 15 by 김현민 기자

 

1990년대 들어와 미국 금융시스템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막대한 부실 채권을 정부가 구제해준 덕분에 은행들은 신규대출을 재개했고, 경제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인 Fed는 금리인하의 여건이 성숙했다고 판단, 기준금리를 3%대까지 낮췄다. 미국 경제는 호황국면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지 부시(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친인척이 운용하는 금융기관에 특혜를 주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금융계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공으로 재선이 눈앞에 보였던 부시는 공화당의 표밭인 부유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바람에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했다. 미국의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정권적 위험을 무릅쓰고 단행됐던 것이다. 비록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가 행한 악역은 클린턴 시대의 장기호황에서 빛을 발했다.

 

금융구조조정이 단행된 이후 미국 금융가에는 대형화와 다각화 바람이 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인수·합병(M&A) 바람은 미국 금융산업에 큰 흐름을 차지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1960~70년대에 연평균 130~140건에 이르던 은행 합병이 1980년후반엔 400~500건으로 확대됐다. 1990년대엔 대형 은행간 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져 10대 은행 대부분이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확대했다.

1991년엔 당시 랭킹 6위였던 케미컬 은행이 매뉴팩쳐 하노버 은행(10)을 흡수 합병했고, 1992년엔 2위였던 뱅크 아메리카가 시큐어리티 퍼시픽은행(8), NCNB(7)가 퍼스트 피델리티(8)를 각각 합병했다. 1995년엔 10위권내에 있던 퍼스트 유니언은행, 퍼스트 시카고 은행이 각기 중소은행을 인수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샤롯은 미국에서 몇번째로 손꼽히는 금융도시다. 미국 상업은행 랭킹 6위의 퍼스트 유니언 은행과 뱅크 어메리카를 합병한 네이션스 뱅크의 본거지다.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두 회사의 빌딩은 서로 마주보며 팽팽한 경쟁관계를 상징했다.

1996년에는 랭킹 4위였던 케미컬 은행이 6위인 체이스맨해튼은행과 합병, 미국 금융가에 일대 바람을 일으켰다.

케미컬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합병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케미컬이 체이스맨해튼을 인수한 합병임에도 불구하고, ‘체이스 맨해튼이라는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합병 당사자들은 규모야 케미컬 은행이 크지만 상호에 어쩐지 화학(chemical) 약품냄새가 나서 은행이라는 이미지가 약하므로, 규모는 작자만 지명도가 높은 체이스맨핸튼을 사용하기로 했다.

기업의 상호(로고)는 기업의 존재를 의미한다. 로고와 기업의 상품이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은행합병에서는 자산규모가 큰 은행이 자신의 로고를 포기했다. 단순히 기업을 확장하거나 경쟁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새롭게 탄생한 체이스맨해튼은행은 시티은행을 제치고 과거 1위의 자리를 되찾았다. 자산규모 3,000억 달러의 미국 최대은행은 합병과 동시에 감량화(Downsizing)에 착수했다. 612개 지점중 비슷한 지역에 있는 지점 100개를 폐쇄했다. 전체직원 75,000명의 16%에 해당하는 12,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합병후 3년간 모두 15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전략이었다.

체이스맨해튼에 1위 자리를 내준 시티 코프도 가만 있지 않았다. 1996년말 시티코프의 고위간부는 비밀리에 카드 사업 전문은행인 아메리카 익스프레스(아멕스)의 고위간부를 만났다. 그들을 두 회사를 합병하는 문제를 신중히 논의했다. 두 회사가 합병되면 시티코프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제치고 최대 상업은행의 자리를 되찾고, 카드부문에서도 선두 주자로 나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논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세상엔 비밀이 없는 법. 시티코프와 아멕스의 비밀 협상 사실이 월가에 흘러나갔다. 두 회사의 합병을 자문했던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가 바짝 긴장했다. 자칫 하다간 거대 상업은행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겠다고 생각, 덩치를 불리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물색한 파트너가 또다른 투자은행인 딘위터와 디스커버사였다. 세 투자은행은 다음해(97) 2모건스탠리-딘 위터-디스커버라는 긴 이름의 간판을 내걸었다.

시티코프는 아멕스와의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1년후(1998) 46일 트래블러스 그룹과 합병, ‘시티그룹을 출범시켰다. 시티코프로선 경쟁 은행인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제치고 상업은행 1위를 되찾고, 동시에 투자은행 영역에 참여했다. 트래블러스 그룹도 모건스탠리의 합병에 충격을 받아 시티코프와의 합병에 응했다. 자산 규모 7,000억 달러, 고객 1억 명, 영업활동국가가 100여개국이나 되는 시티그룹은 선진 7개국(G7)의 하나인 캐나다의 GDP를 넘어서는 금융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시티그룹의 천하도 1주일밖에 가지 못했다. 랭킹 3위의 네이션스 뱅크가 랭킹 4위의 뱅크 어메리카와 합병, 상업은행 1위 자리를 빼았았다.

일주일 사이에 1위에서 3위로 밀려난 체이스맨해튼 은행도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체이스 은행의 윌터 쉬플리 회장은 메릴린치, JP 모건 등에 합병을 하자며 손길을 내밀었다. 체이스가 새로운 세기를 맞아 합병 파트너를 구하게 되면 미국 금융사에 최대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뉴욕 월가에선 미국 은행들의 합병이 완료되면 대형 은행 5개만 남고, 중소은행들은 지역화하거나 특화함으로써 존재가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뉴욕 월스트리트 (2009) /위키피디아
뉴욕 월스트리트 (2009) /위키피디아

 

미국 금융기관은 크게 상업은행(Commercial Bank)’투자은행(Investment Bank)’으로 분류된다. 상업은행은 한국의 시중은행들처럼 일반인과 기업을 상대로 예금과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고, 투자은행은 증권, 채권, 파생금융상품을 다루는 은행을 말한다. 월가의 주식 및 채권시장을 주도하는 은행은 투자은행이다.

월가의 최대 증권회사는 단연 메릴린치였다. 모건 스탠리-딘 위터-디스커버와 살로먼-스미스바니의 대형 합병회사가 탄생했어도 메릴린치는 여전히 선두를 고수했다. 그러나 경쟁사인 살로먼 스미스바니의 모기업 트래블러스 그룹이 시티코프와 합병, 공룡은행으로 변모하는데 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체이스맨해튼 은행과의 합병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것도 메릴린치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자노선을 고수했던 JP 모건도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창업자 JP 모건은 20세기초 철도와 철강 산업을 비롯, 미국의 거의 모든 산업을 장악했던 독선적인 금융자본가였다. 그는 중소은행이 도산하면 은행가들을 맨해튼의 자택에 불러 모아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등 스스로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 대공황이 발발하자, JP 모건의 후손들은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1980년대초까지 JP 모건은 미국 최대 도매금융회사의 자리를 차지하며, 보수성과 자만에 빠져 있었다. 경쟁사들이 합병과 인수를 단행하며, 상품 다양화를 추구하는데도 따라가지 않았다. 아시아 위기가 터지자 JP 모건은 순이익이 감소, 인원을 5% 줄이는 곤욕을 치렀다.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되던 골드만 삭스의 생존 대응은 주식 상장이었다. 골드만 삭스는 1999년에 마침내 뉴욕증시에 상장함으로써 130년간 유지해온 지배구조를 바꾸었다.

 

20세기말, 세계 유동성 자금의 절반을 움직이는 월가에 대격돌이 벌어졌다. 상업은행들은 호시탐탐 투자은행의 영역을 엿보았고, 투자은행들도 자구책으로 상호 합병을 모색했다. 미국 정부가 이미 대공황때 그어놓은 은행간 경계가 급변하는 국제금융질서에 맞지 않다고 판단, 업종간 벽을 허물어 버리지 버렸다. 은행간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금융가에 합병 붐이 번져 나가면서 남이 인수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거나, 다른 은행이 합병해 덩치가 커지면 이에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합병을 단행하는 병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1980년대에 일본이 엔화로 세계를 공략할 때 내세웠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표어는 90년대 미국에서 큰 것이 아름답다는 구호로 바뀌었다.

미국 은행에 확산된 M&A대형화를 통한 감량화라는 상반된 논리를 적용했다. 즉 덩치는 키우되 군살을 빼면서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두 은행이 합쳐지면서 외형을 키우고, 동시에 관리 및 영업등 중복부문을 과감히 도려낸다. 비용절감을 통해 이윤을 증대시키고,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을 늘리며,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한다. 그렇게 되면 고객이 늘게 되고 다시 이윤이 확대되는 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또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이 합병함으로써 여수신 업무와 증권, 보험, 채권을 망라, 금융산업의 백화점식 경영이 가능해진다. 은행 규모가 커지면 자금 유통이 원활해지고, 국제적 대형 프로젝트 금융을 따기 쉬워 진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글로벌리제이션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적인 점포망을 형성하고, 단일시장화하고 있는 유럽공동체(EU)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미국 은행들은 대형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 금융계에서는 앞으로 몇 년 이내에 대형은행 5개만이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미국 은행들은 일본 은행에 밀려 전세계 랭킹 30위권에 1개밖에 차지하지 못했던 1980년대말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일본에 팔려간 캘리포니아의 은행들을 다시 사들였다. 1990년대에 경쟁력을 회복한 미국 금융산업은 공룡의 몸집으로 글로벌 시장을 질주하며, 10년 이상의 최장기 미국 경제호황을 리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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