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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금융가, 제국주의적 심판자…자본 이익에 반하는 정치인 순식간에 처벌
미 금융파워⑤…국제 자본에 굴복하는 정치인들
2019. 11. 18 by 김현민 기자

 

1997년과 1998년의 아시아 위기를 보라. 30년 철권정치를 유지하던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가 국제자본의 논리에 밀려 결국 물러나지 않았는가.

미셸 캉드시 IMF 총재는 199911월 사의를 밝힌 자리에서 우리는 수하르토가 물러나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IMF)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밝힘으로써 IMF가 수하르토 퇴진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인정했다.

민주화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고 외치는 한국의 김영삼 전대통령을 비참하게 만든 것은 그가 국제시장의 논리, 즉 월가 시민들의 시장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독립국가 정부의 역할이 미국 주지사의 역할쯤이면 만족한다. 미국의 주지사들은 자신들의 주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타국 또는 타주의 기업들을 모시느라 혈안이다. 뉴저지 주지사는 뉴욕 맨해튼에 본사를 둔 NBC 방송이 계열사인 CNBC의 사옥을 허드슨강 너머 뉴저지 주로 모셔오느라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방송사 하나가 들어오면 세수가 불어나고 일자리가 많아지며, 하다못해 맥도널드의 빅맥 하나라도 더 팔리게 돼 있다. 독립국가의 대통령이 미국의 주처럼 시장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국 기업이든, 프랑스 기업이든 외국 기업을 많이 유치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선 OK.

뉴욕 월가가 이끄는 국제금융자본은 세계를 단일시장화했다. 나라의 주권은 월가가 주도하는 금융제국주의에 의해 침해당했다. 정치가 불안한 나라는 월가 투자자들이 아예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월가의 논리에 얼마나 영합하느냐가 지방정부화한 독립국가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1998년 5월 21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퇴진을 선언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98년 5월 21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퇴진을 선언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20세기 마지막해인 1999,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헌법에 금지된 3선 조항을 무시하고 또다시 대통령에 나오려 하다가 헌법 재판소의 위헌 판정으로 욕심을 버렸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후보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정략적으로 내뱉은 언행들은 월가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했고, 가뜩이나 취약한 아르헨티나 경제에 충격을 주었다.

메넴 대통령 밑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도밍고 카발로씨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장래에 아르헨티나는 태환정책을 탈피, 변동환율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알려지면서 ‘1달러=1페소로 묶여 있던 페소화가 절하될 것이라는 설이 급속히 유포됐다. 아르헨티나 주가는 하루만에 4.3%나 폭락하고, 해외채권 가격이 3% 주저하는 등 시장 불안이 급속히 확산됐다. 게다가 집권당의 대선 후보자인 에두아르도 두알데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가 카발로씨와 정치적 연합을 시도하자, 집권 페론당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월가에 퍼져나갔다.

멀리 뉴욕에서 이를 지켜보던 투기자본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태환정책이 아르헨티나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페소화가 실질 가치보다 높게 평가되어 있어, 경제 왜곡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툭 내뱉었다. 소로스를 따르는 월가의 펀드매니저는 물론 현지 아르헨티나 투자자들마저 동요했다.

카발로는 자신의 발언을 하루만에 뒤집었다. 그는 고정환율제를 포기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뜻이 왜곡 전달됐다고 극구 변명했다. 대권주자인 두알데 지사도 집권하면 태환정책은 추호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월가를 안심시키느라 안절부절못했다. 이들 대권후보는 아르헨티나의 고정환율제가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국제자본가들의 동요를 방치한 채 선거 구호에 고집할 수 없었다.

 

글로벌리즘을 움직이는 주체는 뉴욕 월가다. 하루에도 수조 달러의 국제자금이 국경을 넘나든다. 이들 자본은 빠른 속도로 이동해 다니면서 틈이 벌어진 국가를 비집고 들어가 메가톤급 무게로 무너뜨린다. 아시아와 러시아 위기시 외환딜러들이 마구 불러대는 가격(환율)이 한 나라의 경제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입증했다.

1990년대 이후 빠른 주기로 확산되고 있는 국제금융시장의 위기는 대부분 정치적 위기와 직결돼 있었다. 1997년 한국 경제위기는 대선 직전에 터져 나왔고, 1998년 여름의 러시아 위기는 공산당이 장악한 의회(듀마)가 경제 개혁안을 거부한 직후 국제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확산됐다.

 

1999년초 브라질 위기도 정치적 갈등에서 출발했다. 브라질 2위의 경제력을 보유한 미나스 제라이스주가 연방정부에 대해 150억 달러에 달하는 채무상환액에 대해 90일간 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그 이면에는 이타마르 프랑코 주지사와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과의 알력 관계가 깔려 있었다. 프랑코 주지사는 카르도수에 앞서 대통령을 지냈으며, 카르도수 대통령은 그의 각료로 재무장관을 맡았었다.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카르도수에 패배한 프랑코는 정치복귀를 위해 주지사에 출마, 당선됐었다. 주지사 취임후 프랑코는 빚이 많은 주를 연합, 카루도수의 연방정부에 정면 대항했다. 두 정적간의 갈등은 월가의 두려움을 자아냈고,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거 이탈로 헤알화 절하로 이어졌다.

1998년말 볼리바르화를 절하한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대선을 앞두고 집권세력이 인위적으로 고평가된 통화를 방어하려다 역부족으로 물러난 케이스다. 멕시코는 과거 네 번이나 대통령 선거 때마다 금융위기에 빠졌고, 1995년엔 그 규모가 유난히 컸다. 멕시코는 20007월에 대선을 치르기도 앞서, 월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과 IMF에 손을 내밀어 237억 달러의 차관을 빌려오겠다고 협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월가 자본의 위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선거 직전에 유권자의 구미에 맞춰 공약을 내밀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공약을 뒤집는 경우가 다반사다. 선거 직후 뉴욕을 방문하는 것도 미국에 의한 단일패권 시대를 사는 각국 정치지도자들의 생존방식이 되어버렸다.

멕시코의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은 당선 직후 페소화 위기가 발발하자, 미국을 방문, 지원을 호소했으며, 브라질의 카르두수 대통령도 헤알화 절하후 워싱턴 DC를 찾아 지속적인 경제개혁을 다짐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선거공약으로 외국 수입품에 대해 높은 무역장벽을 쌓고 외채에 대해 2년간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겠다고 다짐하고, 외국인 석유회사의 국영화 등을 내걸었다. 선거 공약만 보면 그는 월가의 패권에 저항하는 국수주의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은 당선 후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고 지칭하며 외국 회사와의 계약을 준수할 것이라며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차버렸다. 그는 뉴욕을 방문, JP 모건, 시티은행을 찾아다니며, 해외채권을 팔아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훌륭한 정치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월가는 민주주의의 절차인 선거마저도 자신의 논리로 왜곡시키고 있다. 뉴욕 금융가는 각국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고집할 때 순식간에 이를 처벌하고야 만다. 월가는 미국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의 정치갈등을 지배하는 심판자로서 제국주의적 위력을 막강하게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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