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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년 서로마 황녀 호노리아의 결혼 제의에 분노한 아틸라, 서로마 침공
베네치아, 훈족에 쫓기며 형성된 ‘물의 도시’
2019. 11. 18 by 김현민 기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시내 60%가 현지날짜 17일 조수가 150cm 올라가면서 물에 잠겼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 벌써 세 번째다. 지난 12일에도 조수 수위가 178cm 올라가 도시의 80% 이상에 물속에 들어갔고, 15일에도 160cm나 올라가 70%가 침수되었다.

베네치아는 수상도시다. 구도심 도시 전체에 수로가 뚫려 배를 타고 다닌다 해서 물의 도시로 유명하며, 현재도 구도심에서는 배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도시 내에서 차량을 구경할 수 없고, 대중교통수단은 수상택시 뿐이다. 본토와 구시가지를 잇는 지하철 건설계획도 여러 번 세워지기도 했지만 건설 비용이 많이 들고 유적훼손 논란도 있어 현재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베네치아(Venezia)는 수상도시라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중세에 지중해를 석권한 강력한 공화국이었다. 그런 역사적인 도시가 왜 바다 한가운데에 세워져 툭하면 물난리를 겪고 있을까.

 

베네치아 /위키피디아
베네치아 /위키피디아

 

고대에 중국 몽골 고원에서 활동하던 흉노(匈奴)족들이 서진(西進)하면서 서기 375년경에 유럽 다뉴브강 유역 헝가리 평원에 도달했다. 유럽인들은 그들을 훈족(Huns)이라 불렀다. 434년에 걸출한 족장 아틸라(Attila)가 훈족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로마제국을 위협했다.

훈족은 기독교도들에게 신의 채찍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훈족은 화가 나서 미친 듯이 날뛰는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로마 변경과 주변 야만족을 약탈하고 파괴하고 불태웠다. 훈족이 떠난 뒤에는 개 짖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퇴각하는 자리에는 포로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우선 동로마제국이 무릎을 꿇었다. 동로마는 엄청난 평화비용(조공)을 지불하고, 훈족 군대에서 탈주한 자를 돌려보내며, 포로로 잡힌 로마인을 돌려보낼 때엔 막대한 금화를 지불할 것등 일방적인 조약에 서명했다. 무조건 항복이나 다름없었다.

서로마제국의 황제 발렌티누아누스 3(Valentinianus III)에겐 호노리아(Honoria)라는 누나가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공동황제였기 때문에 황녀였다.

호노리아는 결혼도 하지 못한채 30세를 맞았다. 그녀는 대담하고 무모한 제안을 훈족 추장 아틸라에게 던졌다. 호노리아는 아틸라에게 값비싼 반지와 함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는 자신과 결혼하면 지참금으로 서로마제국의 영토 절반을 주겠다고 쓰여 있었다.

아틸라에겐 호박이 저절로 굴러온 셈이었다. 훈족 추장은 서로마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누나 호노리아와 결혼하겠다고 밝혔다. 발렌티니아누스는 깜짝 놀라 누나를 감금했지만, 아틸라의 분노만 샀을 뿐이다.

 

452년 아틸라의 서로마 침공로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이야기‘ 15권, P290
452년 아틸라의 서로마 침공로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이야기‘ 15권, P290

 

아틸라는 서로마제국을 침공할 명분이 생겼다. 그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호노리아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압박했다. 서로마는 아틸라의 요구를 묵살했다.

호노리아 /위키피디아
호노리아 /위키피디아

 

서기 452년 아틸라는 이탈리아 북서부로 침공해 왔다. 목적지는 황제가 머무는 라벤나(Ravenna)였다. 아틸라는 진군하는 곳곳에서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들렀다. 이탈리아 반도가 공포에 질렸다. 훈족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하다는 소문을 그들은 듣고 있었다. 저항한 사람이든, 저항하지 않은 사람이든 모두 죽여 버린다는 소문도 훈족 기병대의 움직임과 빠르게 이동했다. 사실 그러했다.

반도 북동쪽 베네토(Veneto) 지방은 라벤나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알프스 산맥 쪽으로 도망치자니 훈족에게 쫒겨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이럴 때에 신화가 만들어진다.

베네토인들은 교회를 찾아갔으나 사제들은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했다. 사제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종탑에 올라가라. 그곳에서 바다 쪽을 보아라. 눈에 들어오는 곳이 너희가 살 집이 될 것이니라.”

사람들은 교회 종탑에 올라갔다. 마침 썰물 때였다. 종탑에서는 군데군데 소택지가 보였고, 그곳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베네토인들은 남녀노소,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모두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제가 앞장 서서 신의 계시를 이행했다.

아틸라의 군대는 해군이 없었고, 또 라벤나로 가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갯벌로 도망친 사람들을 내버려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목숨을 건질수 있게 되었다.

 

로마주교 레오 1세가 훈족과 만나는 모습. 라파엘로의 그림 /위키피디아
로마주교 레오 1세가 훈족과 만나는 모습. 라파엘로의 그림 /위키피디아

 

아마 후대에 각색한 스토리일 것이다. 역사 연구가들에 따르면 그 당시 해변 갯벌에는 소수의 어부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스토리가 오늘날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시원이다.

그후 아틸라는 로마 주교 레오 1(Leo I)의 교화를 받아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도 전설이다. 아마 주교는 넉넉한 뒷돈을 주고 아틸라와 타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공격이 있은지 1년후인 453년에 아틸라는 연회를 하다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 호노리아는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 사료가 없다.

아틸라 사후에 훈족은 권력투쟁으로 사분오열되어 세력이 약화되었고, 서로마제국은 아틸라 공격 20여년후인 476년에 멸망했다.

아드리아해 갯벌로 도망친 베네토인들은 그곳에 머물렀다. 훈족은 사라졌지만, 그후에도 여러 야만족이 이탈리아를 공격하는 바람에 나올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수중 도시를 만들었으니, 오늘날 툭하면 물바다가 되는 위험을 안게 된 것이다.

 

중세시대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위키피디아
중세시대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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