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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유출, 주민반대 “산 넘어 산”…문 수석, 대국민 설득 광고전 대응
노태우 부동산 정책⑧…난항 겪는 신도시
2019. 12. 08 by 김현민 기자

 

1989427일 상오 청와대에서는 노태우 대통령 주재로 주택문제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강영훈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들이 기립한 가운데 노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왔다. “이번 신도시 건설계획에 대해 그동안 보안이 잘 지켜져 왔는데,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사전 보도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이오.”

이날 일부 조간신문이 서울 시내판에서 성남의 남단녹지와 일산에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앞서 420일 건설부의 이규황 토지국장이 TV 대담프로에서 대규모 택지개발 계획을 은근히 흘리면서 주택문제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방침을 밝힌 적은 있었다. 물론 이 국장의 발언은 청와대 경제비서실과의 사전협의가 있었던 계산된 발설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보도는 줄을 이었지만 분당(남단녹지)과 일산의 위치를 정확히 맞추지는 못했다.

노 대통령이 진노할만도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박승 건설장관이 입을 열었다.

일산의 경우만 하더라도 위장전입자와 무허가 건축을 막기 위해 호구조사만 하는데 수백만명이 동원됐습니다. 철저한 보안을 지키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의 질책과 장관들의 해명성 답변이 오간뒤 이내 신도시 건설과 주택문제에 관한 현안 토의에 들어갔으나, 노 대통령은 끝내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안정과 투기 척결을 위해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미리 준비한 문안을 읽어 내려갔다.

경제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망국적인 부동산투기 풍조가 하루 속히 근절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어렵게 하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입니다. 이번 조치로도 주택투기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나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 권한인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아파트 투기를 반드시 잡을 것입니다.”

이날 대통령이 밝힌 긴급명령권 조항은 당시 비서실이 작성한 문안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문희갑 경제수석이 이를 알고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담지 않고 흐리멍텅하게 쓴 자가 누구냐며 경제 비서실을 다그쳐 추가로 삽입한 내용이었다.

긴급명령권 조항에 대해 야당이 즉각 반발했다. 평민·민주·공화등 야3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아파트 투기를 잡겠다는 의지는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경제문제에 대해 구시대적인 혁명적 방법이 동원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반박했다.

비록 발동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에 대한 언급은 그만큼 주택문제 해결을 정권적 차원에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540만평의 면적에 105,000가구와 42만명이 입주하는 분당신도시, 460만평에 75,000가구 30만명이 들어가는 일산신도시는 이처럼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진됐다.

분당·일산의 신도시 건설은 출발부터 험난했다. 야당측이 개발정보가 사전에 누설됐고 대기업등 특정인 소유 토지를 개발계획 범위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해 특혜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도 장관회의에서 정보 누설에 대해 화를 냈던 만큼 관리자를 색출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신도시개발계획 누설 및 특혜설에 관련해 총리 행정조정실 제4조정실과 대검·치안본부·국세청이 합동으로 5월 한달 동안 내사를 벌였다. 문희갑 수석, 홍철 비서관 등 청와대 주택건설기획단 멤버를 비롯, 박승 장관등 건설부 공무원과 가족을 포함해 400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 조사는 안치순 총리실 행정조정관이 616개발계획의 누출이나 이에 따른 계획적인 투기는 없었다며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수사팀들은 청와대 실무자들에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안을 유지했다며 그 공로를 치하하기까지 했다. 조사반은 그러나 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 불필요한 인원까지 포함해 수백여명이나 참여함으로써 정보누설의 개연성을 크게 한 것은 투기유무와 관계없이 문제점으로 본다고 토를 달고 조사를 종결했다.

신도시 건설이 결정된 다음날인 428일 토지개발공사에는 분당산업단과 일산사업단이 각각 조직돼 현지로 급파됐다.

당시 토지개발공사 실무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마치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사업을 추진했어요. 매직펜으로 대충 그린 한 장짜리 지도를 들고 허겁지겁 분당으로 달려 갔습니다. 청와대로부터 7개월 안에 토지매입에서 기본조사 및 설계까지 끝내고 첫분양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렸더군요. 밤을 새며 작업하고 주민을 설득한 끝에 기초공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해 11월 첫 분양을 실시했습니다.” (주기영 당시 분당사업단 부단장)

원당읍 내의 농협 강당을 빌려 전화만 가설한 채 임시 사무실로 썼어요. 처음엔 일산주민들도 개발 소식을 듣고 기뻐했는데, 2~3일 지나면서 문전옥답에서 쫓겨날 수 없다며 반대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직원들이 구타당하고 돌팔매질 당하기 일쑤였고, 밤에 혼자 다닐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토지매수 협상이 1년 동안 진전되지 못했고 904월에야 보상에 착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우규 당시 일산사업단 부단장)

주민들의 집단시위는 특히 일산지역에서 심각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이택현 의원(고양)과 소속정당인 공화당은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 백지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 국회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여당인 민정당의 나웅배 정책위원장마저 사석에서 분당만 하고 일산은 하지 말자고 거론, 사태를 더욱 어렵게 했다.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이 전해지자 분당지역 주민들은 경부고속도로를 점거, 통행을 마비시켰고, 일산 주민 가운데 자살하는 농민까지 생겨났다.

신도시 건설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청와대는 신도시 개발정책을 알리는 신문 전면광고를 전 일간지에 냈다. 당시 광고는 광구 주체의 이니셜이 명시되지 않았는데, 청와대가 직접 나서 광고를 하기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부가 직접 대국민광고를 통해 설득해 보겠다는 문 수석의 아이디어였다.

노 대통령은 529일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신도시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하되 문제점을 보완하라고 지시, 문 수석 휘하의 경제비서실에 무게를 실어줬다.

주민들의 집단 시위는 궁극적으로 토지보상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판단, 실무자들은 집요하게 주민설득 작업을 벌였고, 그러는 사이에 시일이 지나자 집단 시위도 점차 진정됐다.

이제 남은 것은 도시 설계와 건설이었다. 노 대통령은 후세에도 높이 평가할만한 훌륭한 도시를 만들 것을 지시했고, 설계를 맡은 토지개발공사의 이상희 사장(후에 건설부장관 역임)종전에는 주택단지를 만들었으나, 이젠 진짜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며 설계팀을 독려했다.

이상희 당시 토지개발공사 사장의 회고. “두 도시를 최고로 멋있는 도시, 세계에 내놓아 자랑스런 도시를 만들자는 욕심으로 설계했습니다. 분당과 일산에는 전신주와 굴뚝이 없는데, 이는 도시를 공원처럼 꾸미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토지개발공사가 검토하고 중단한 도시계획 가운데 멋진 청사진이 하나 있었다. 일산신도시와 한강이 접촉하는 호수공원에 수중 용당(龍堂)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이상희 토지개발공사 사장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일산의 용당 계획은 당시 롯데측의 타당성 조사까지 마쳤으나, 경제기획원에서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반대해 좌절됐다.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추진된 신도시 건설은 이렇게 일단 시작됐다. 그러나 도시를 급조하는 과정에서 부실공사와 건자재 파동, 인건비 상승등의 부작용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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