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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 비망록
한보 정태수 회장, 대통령 약속 로비 활용…택지 전환 노려 자연녹지 매입
되돌아본 수서사건①…의혹의 시작
2019. 12. 10 by 김현민 기자

 

199121일 노재봉 국무총리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주례 국정보고를 하러 가기 직전에 마침 수서사건이 곧 언론에 보도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수서가 곧 언론에 보도된다고 합니다.”

수서가 뭡니까.”

혹시 아실까 해서 여쭙는 겁니다.”

알아보겠는데, 수서가 대체 뭘까요.”

사정수석에게 알아보겠습니다.”

6공화국 최대 비리사건이라고 일컫는 수서사건이 터지기 직전, 노태우 대통령은 수서라는 개념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노 총리는 김영일 사정수석에게 물었다.

사정수석, 수서사건이 터진다는데, 아십니까.”

수서가 뭡니까. 업체와 관련된 것입니까.”

수서라는 말은 나도 처음 듣는 건데 알아보세요.”

민정·민주·공화의 3당이 합당한지도 1. 정국이 혼미한 때였다. 내각제 합의각서 파동을 비롯, 민정계와 민주계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긴장관계가 계속되었으니, 역시 단합이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19901227일 노 대통령은 새 국무총리에 노재봉 청와대 비서실장을 임명하는등 개각을 단행했다. 그동안 흐트러진 국정을 가다듬고 의욕적으로 행정을 추진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911월 하순에 접어들자 국회 상공위원회의 뇌물 외유사건이 터져 정국이 다시 긴장상태에 빠졌다. 이러는 사이에 2월에 들어서자마자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강남의 수서지구 특혜분양사건이 터졌다.

노 대통령 자산도 사건이 그렇게 확대 재생산될 줄 몰랐던 것 같다. 노재봉 총리의 보고를 받고도 수서가 뭐냐고 되물은 것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 주택조합용 택지를 분양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기보는 대상토지가 수서지구였는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사안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택지특별분양건을 잊어버린 것일까.

정권이 바뀐지 한참 지났어도 6공화국 최대 비리사건이라 일컬었던 수서사건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더 이상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고, 수사당국도 과거의 허물을 들춰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베일에 가려 있는 사건이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정체가 드러나는 법. 당시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당사자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고, 정권이 바뀌면서 사건 자체를 새롭게 조명해 보려는 시도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이런 것들을 조합하면서 수서사건을 짚어보자.

 

수서사건의 출발은 멀리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대한하키협회 회장직을 맡아온 한보의 정태수 회장은 비인기 종목이었던 하키를 올림픽에서 우승자를 내는데 성공했다. 그때 올림픽조직위원장이었던 박세직씨(수서사건 당시 서울시장)와 체육부에서 올림픽조직위로 파견근무하던 장병조씨(사건당시 청와대 문화체육담당 비서관)와 가까워 졌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160개국 13,000여 선수단이 참가, 올림픽 사상 최대의 잔치를 기록했고,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날린 대회였다.

한국선수단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소련·동독·미국에 이어 4위의 성적을 올렸다.

노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척 기뻐했다. 올림픽을 끝낸후 체육관계 단체장, 우승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만찬회에서 노대통령은 이번 서울올림픽에서 우승한 종목의 협회장들에겐 반드시 보상하겠다고 공언했다. 올림픽 성공에 따른 논공행상이었다. 박세직 올림픽조직위원장은 물론 장병조씨도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승 종목의 협회장들은 협회를 좀 더 지원해 달라”, “우수선수 육성책을 세워달라는 등을 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비인기종목에서 우승, 국민적 자신감을 심어준 대한하키협회 정태수 회장의 차례가 돌아왔다.

정부의 주택 200만호 정책에 호응해 집없는 사람들에게 아파트를 지어 주겠습니다. 정부에서 택지를 분양해 주었으면 합니다.”

노 대통령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수서사건은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대통령의 의례적인 이 약속이 발단이 돼서 굴러갔다.

수서사건 연루에 곤욕을 치렀던 당시 정부의 한 인사는 올림픽 직후 만찬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 만천에서 정태수 회장이 노 대통령에게 수서지구 택지분양을 요구했고, 노 대통령도 선뜻 승낙했습니다. 후에 담당보직과 관계가 없는 장병조 문화체육 비서관이 수서특별 분양에 개입하고 박세직씨기 시장에 취임하자 단독으로 특별분양에 관해 결심한 것도 이날의 일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올림픽 논공행상에 기업의 논리가 끼어든 것이다. 자연녹지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건 건설업자의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인데도 정태수 회장은 정부를 어떻게라도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마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니. 안되는 것을 되게 하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경제개발 초기의 기업 속성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보그룹은 4명의 임원 명의로 수서지구에 대한 땅 매입에 들어갔다.

한보 주택은 19884월께부터 수서지구 땅 매입에 나서 최모씨등 한보그룹 임직원 4명 명의로 1989321일 수서지구가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기 이전까지 자연녹지인 수서·일원동 일대의 땅 34,840평을 매입했다. 한보주택은 지구지정일이 지난 후에도 이 지역의 땅을 계속 매입, 8911월말까지 모두 5135평을 사들였다.

한보주택은 이렇게 사들인 땅 중 48,184평을 891229제소전 화해방식으로 26개 주택조합에 명의이전했다. 이때 한보는 문제의 땅을 제소전 화해방식으로 넘기면서 약속 시한 내에 택지를 공급받지 못할 경우 조합원들이 낸 1,000만원에 대해 3배를 배상하겠다고 조합장들에게 약속했다. 이에 따라 한보측은 19903월과 9월로 두차례 시한을 정해 놓고 맹렬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

한보측이 로비활동을 펼치게 된 것은 1989321일 건설부가 수서·대치지구 자연녹지 43만평을 공영개발방식으로 취하는 택지개발예정지구로 고시, 택지확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조사를 살펴보자. 정태수 회장은 8910월 중순 장병조 비서관을 만나 청탁을 했다.

수서지구에 조합아파트를 건축하려는데 이 지구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됐습니다. 서울시가 공영개발방식으로 택지를 공급하기로 방침을 정해 조합주택을 건축할수 없게 됐습니다. 서울시에 압력을 넣어 방침을 변경해 주십시오.”

장 비서관은 정 회장의 부탁에 수긍했지만, 문제는 주무당국인 서울시였다.

공영개발방식이란 공공기관이 토지를 사들여 택지를 조성한 다음에 주택건설업체에 싼 값으로 공급, 무주택서민들에게 주택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한보와 주택조합측은 서울시가 공영개발중인 수서지구내 토지 35,000평을, 그것도 수의계약으로 특별분양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조합주택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건설업체에 의뢰해 짓는 아파트인데, 조합주택에 당이 많이 돌아갈수록 경쟁에 의한 아파트 당첨기회는 줄게 된다. 한보가 요구한 땅을 특별분양할 경우 수서지구에서 일반분양분(국민주택규모 이하)4,330가구에서 970가구로 77.6%나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태수 회장은 고건 서울시장을 서너 차례 찾아갔다.

특별공급 형태로 조합주택용 토지를 분양해 주십시오.”

주택조합이 당초 아파트를 지을수 없는 자연녹지를 조합주택용지로 사들였습니다. 현행 법규상 택지를 주택조합에 특별공급할 규정이 없습니다.

고건 시장은 정 회장을 단호히 물리쳤지만,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서울시에 가해오는 압력의 강도는 갈수록 높아갔다. 업무협의 차 청와대 행정비서실과 회의를 할 때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들은 비서실측으로부터 수서, 그것 좀 해주시오라는 종용을 받았다.

당시 분위기를 서울시 도시계획국에 근무했던 K씨는 이렇게 서명했다.

수서 택지분양건을 놓고 청와대 비서실의 압력이 끊임없었어요. 처음엔 권유형태였으나, 서울시가 말을 듣지 않자 청와대에서 수서 분양건을 주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비서실의 압력은 공식 문서로 남기기보다는 구두로, 전화로 하는 비공식 형태가 많았습니다.”

서울시에 대한 한보와 청와대의 협공은 날이 갈수록 집요해졌고, 건설부와 국회마저 한보의 편을 들게 됐다. 서울시는 고립무원에 빠졌고, 비극적인 수서사건이 마침내 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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