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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서관, “상관 지시 없었다” 진술…은행, 가압류 해제 등 한보 회생 도와
되돌아본 수서사건⑤…의혹의 결말
2019. 12. 14 by 김현민 기자

 

1991429일 서울지법에서는 수서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첫 공판이 열였다. 오용운·김동주·김태식 의원등 관련 국회의원 5명에 대한 심문에 이어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의 순서가 돌아왔다. 장 비서관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장 비서관은 정 회장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거듭 진술하며 자신보다 상층부에서 이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9차례 만나 26,0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은 어떻게든 구속을 피할수 없을 것 같았고, 또 검사가 국회의원도 3,000만원에서 2억원까지 받았다고 진술하는데 청와대에서 돈을 안 받았다고 누가 믿겠는가. 당신이 돈을 받았다고 해야 여론이 진정될 것 같다고 말해 허위진술한 것입니다. 9차례 만났다고 하지만, 직접 만난 것은 몇차례 되지도 않으며 이때도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장 비서관의 진술에 이어 정태수 회장은 장 비서관 부분은 진술을 거부하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재판이 엉망으로 됐다. 법정에 오른 수서사건은 첫 공판에서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5명의 국회의원들도 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수서택지분양과는 다른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수 회장도 국회의원들에게 돈을 준 사실이 있으나 정치자금이나 후원금 명목의 의례적인 인사치례였다며 뇌물이 아니었음을 강하게 항변했다.

검찰은 특히 청와대의 장 비서관에 대해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수표추적등을 해도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장 비서관과 장 회장이 조사과정에서 한 진술만을 증거로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해 10월 항소심 공판에서 장 비서관은 또 주목받을만한 발언을 했다.

청와대 비서관이 서울시장에게 특혜공급을 지시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업무는 성격상 대통령이나 비서실장 또는 행정수석 비서관의 지시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장 비서관의 진술은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었지만 거의 폭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장 비서관의 진술은 여기에서 그쳤고, 더 이상 구체적으로 누구의 지시였다는 말은 삼갔다.

 

수서사건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특혜분양이 이뤄졌다는 사실보다는 거액의 정치자금이 권력층에 흘러들어갔다는 설의 사실여부에 초점이 모아졌다. 당시 한보 정태수 회장이 수서지구 택지를 특별분양 받기 위해 300억원의 비자금을 동원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양성우 의원(평민·양천갑)이 국회 행정위에서 서울시와 한보 관계자들에게서 들었다며 200억설을 꺼냈다. 한보의 비자금 추정은 그 그룹의 택지를 주택조합에 팔아 챙긴 336억원과 맞아 떨어져 풍문이 사실처럼 번졌다. 따라서 수서사건 재판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이런 풍문의 진위를 명쾌히 밝히는 것이었다. 그런 재판 결과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수서사건의 장본인인 정태수 회장이 징역 4년을 구형받았고, 이에 비해 장 비서관, 이태섭·이원배 의원이 모두 10년씩 구형을 받았다. 71일 선고공판에서 장 비서관과 이태섭·이원배 의원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 오용운·김동주·김태식 의원과 정태수 회장, 이규황 건설부 국토계획국장 등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126일 항소심 공판에서 김태식 의원에게는 무죄가 선고되고, 다른 피고인들도 형량이 일부 줄어들었다.

6공화국 임기가 두어달 남은 921224일 노태우 대통령은 사면을 단행, 북역중이던 장병조·이태석·이원배씨에게 잔형면제 처분을 내렸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석방됐다.

사건 발생 110개월여만에 수서사건 관련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석방됐다. 정권을 뒤흔들었던 사건치고는 흐지부지 끝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재임중 이 사건을 완전히 종결짓고 싶었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위키피디아
노태우 전 대통령 /위키피디아

 

수서사건은 노 대통령에겐 치명적이었다. 이 사건은 집 대통령으로 남겠다며 재임중 최대 치적으로 자부하던 주택 200만호 건설정책 자체를 부정적 시각으로 비춰지게 했으며, 청와대를 비리 스캔들에 휘말리게 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 사건을 터트리고 확대한 언론에 대해 몇 번이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19911212일 노 대통령은 민자당 핵심당직자와 통합이전의 민정·민주·공화당의 통합추진 위원들을 청와대에 초청, 3당 합당 1주년을 자축했다. 이 경사스런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수서사건 관련 보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재 언론에 보도태도는 마치 체제 부정을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수서사건과 관계된 주택수는 6공화국에서 건설해온 주택 총량의 0.3%에 불과한데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 마치 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날 저녁 주한외교사절을 부부동반으로 초청, 만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노 대통령은 한국 언론이 때때로 대통령을 지나치게 공격한다며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수서사건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노 대통령의 노골적인 심정이 그 이후로도 여과되지 않은채 터져 나왔다.

민주주의의 밝은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병폐가 드러난 이번 사건은 있는 그대로 그 진상이 밝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저녁 9시에 청와대 소식부터 시작됐으나 요즘은 큼지막한 행사를 해도 대통령 소식은 뉴스의 끝부분에 나올 정도인데, 나도 인간인 이상 섭섭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91213일 강원도청 순시연설)

우리 언론은 자나깨나, 일주일 열흘이 지나도록 똑같은 것을 가지고 써대니 우리 스스로 눈··귀 나아가 심장까지 찔러 스스로 죽이자는 것입니다. 언론이 아무 장애 없이 자유를 갖게 되는 자체에 역작용이 있음을 걱정하며 옛날이 좋았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라건데 너무 부정적인 것만 부각하지 말고 자율적으로 균형을 맞춰줬으면 합니다.” (91221일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

 

수서사건의 책임을 지고 박세직 서울시장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취임한 이해원 시장은 취임직후인 9132일 수서택지 분양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한보그룹의 로비활동도 일순간의 물거품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박세직 시장의 택지특별공급 결정 이후 꼭 49일 만이다.

연합주택조합측은 서울시청에서 농성을 벌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주택조합특은 미리 확보해 놓은 1,000억원짜리 한보 어음을 내세워 조합원 1인당 1,000만원씩(336억원)을 조기 회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보측과 협상에 들어갔다.

지루한 협상 끝에 1991년 한보와 주택조합측은 최종 타결점을 찾았다. 한보측은 조합원 3,162명에 대해 각각 원금 1,000만원과 연 15%의 이자를 가산해 4523,800만원을 위약금으로 돌려준다고 제시, 조합측의 동의를 얻어냈다. 한보와 주택조합의 무리한 시도는 만 3년만에 이렇게 희극적인 결별로 막을 내렸다.

수서사건이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한보그룹이 살아남는다는 설이 금융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보주택은 91년도 상반기중 신규 공사수주를 한건도 못한 상태였다.

19915월이 되자 한보그룹의 재기는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순항국면으로 접어들었다. 516일에는 조흥은행측이 한보주택에 설정했던 107억원의 가압류 신청을 해제해 주었다. 621일에는 한보주택이 주택조합에 지불할 위약금중 162억원을 은행들이 담보없이 한보철강에 신용대출해 줬다. 조흥·서울신탁·상업·산업은행등은 그동안 한보에 대한 신규대출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던 터에 이같은 조치를 취하자 은행감독원이 개입했다는 얘기가 시중에 흘러나왔다. 이어 75일에는 정태수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보의 재기가 가시화된 것이다.

정태수 회장은 일단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88일 정 회장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박승규씨를 새 회장에 일임했다. (정 회장은 박씨가 일본에 체류할 때 10여년간 박씨를 돌봐줬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실직절인 경영권은 3남인 보근씨에 넘겨주면서 사실상 한보를 뒷전에서 경영했다.

수서사건은 최고통치권자를 비롯, 정치권, 공직자 사회, 무주택서민, 언론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많은 의혹을 남긴채 결말지어진 수서사건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할수 있다는 기업들의 오랜 관행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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