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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년간 통치하면서 원주민과 노예 수탈…현지출생 백인 크레올 불만 표출

스페인 착취에 라틴아메리카, 독립 갈망하다

2019. 12. 16 by 김현민 기자

스페인의 아메리카 지배는 정복 초기부터 버거웠다. 스페인 왕실은 북미와 남미의 방대한 대륙을 지배할 비용을 충당할수 없어 현지 정복자들의 개인 능력에 맡겼고, 정복자들은 본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무한대의 권력을 누렸다. 정복자들은 자신이 관리를 임명하고 승진을 시킨 후에 국왕에게 통보만 하면 스페인 왕은 어쩔수 없이 승인하는 구조였다.

초기정복자는 현지에서 봉건적 귀족 노릇을 했다. 잉카 문명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파사로(Francisco Pizarro)는 종신으로 정복지를 지배했다. 피사로가 죽고 스페인이 페루에 총독을 파견했지만 피사로의 동생에게 살해되고, 그 후임으로 파견된 총독이 간신히 질서를 회복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스페인 왕실이 관리자를 보내고 총독의 임기를 종신에서 4년 정도로 제한할수 있었다.

스페인은 1535년에 멕시코를 중심으로 북미 지역에 누에바 스페인에 첫 부왕령(Vice-royalty)을 설치했다. 현지 총독은 스페인 국왕 바로 아래 부왕(viceroy, vice king)의 지위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곧이어 1543년에 페루 리마에도 페루 부왕령을 설치했다. 파나마를 경계로 누에바 스페인(Nueva España)은 북미 대륙을, 페루 부왕령은 남미를 통치했다.

부왕은 귀족가문에서 파견되었다. 하지만 부왕이 관할하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었고, 요즘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식민당국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허다했다. 지방에서는 바로 본국과 접촉하면서 부왕을 따돌리기도 했다.

식민지 영역이 넓어지면서 1739년 페루 부왕령에서 현재 콜롬비아 지역을 분리해 누에바 그라나다(Nueva Granada) 부왕령을 만들고, 1776년에는 아르헨티나 일대에 네 번째로 라 플라타(Río de la Plata) 부왕령을 설치했다. 라틴아메리카에 여러 나라가 독립하기 직전에 스페인은 이렇게 4곳의 부왕령을 운영했다.

스페인이 거대한 두 대륙을 300년 가량 통치한 것은 그야말로 억압과 착취를 시행했기에 가능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산출되는 생산품에 대해 ‘5분의1세’를 과세했다. 부왕들은 20%의 고율 세금을 본국에 바치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따로 챙겼고, 그 아래에 있는 관리들이 별도로 이익을 챙겼다. 결국은 맨 아래층에서 노역에 참여하는 노예와 원주민들이 수탈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왕실은 기부하는 자에게 식민지 관직을 주었고, 딸을 결혼시킬 때 사위를 위해 관직을 사주는 귀족들도 있었다. 식민지에 관직을 받은 귀족들은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현지에 가서 악명높은 ‘상품 나누기’를 했다. 지방관리들은 상인들과 결탁해 원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면서 ‘나눠 준다’는 표현을 썼다.

스페인은 카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신의 아들인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릴수 없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식인 원주민에 대해선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예로 삼을수 있었다. 어느 부족이 식인을 하는지 판가름하기 애매한 이 조항을 악용해 식민자들은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었다.

1570년대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인구는 1천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중 970만명이 원주민이었고, 흑인과 혼혈이 20만, 백인 10만 정도였다. 1%의 인구로 나머지 인구를 통제한 것이다.

스페인 점령지역에는 혼혈이 많다.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메스티조(mestizo), 흑인과 백인 사이의 물라토(mulato)라는 신인종이 생겨났다. 앵글로색슨이 지배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혼혈이 적은데 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령에서 혼혈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국과 캐나다 이민자들은 가족단위로 건너왔기 때문에 혼혈의 필요가 없었는데 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령에는 남성 위주의 군인들이 파견되어 현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여성들을 강간하면서 혼혈에 의한 새로운 인종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영국은 외부의 지배로 피가 섞인 역사가 없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피가 섞이도록 강요된 경험이 있다는 문화적 차이점에서 라틴아메리카에 혼혈이 생겨난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페인 왕실과 교회, 백인 아내들은 혼외 작식인 혼혈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혼혈인들은 원주민 엄마의 지위를 물려받아 원주민의 대우를 받았다.

스페인의 지배가 몇세기 지나면서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과 본국에서 파견된 백인 사이에도 차별이 생겨났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을 크리올(creole)이라 하는데, 그들은 현지에서 원주민이나 혼혈, 흑인노예에 비해 우월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부는 축적할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본국에서 파견된 백인들에 의해 차별을 받았다. 크레올들은 또 본국이 중상주의 정책을 취하면서 식민지에서 본국 이외의 거래를 금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크레올의 불만이 19세기초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동기가 된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중남미에서 원주민들의 반란이 일어난다. 극소수 백인들이 부를 독점하고 호화스럽게 사는데 비해 원주민(인디오)과 노예, 혼혈들에 대한 착취는 가혹해 졌다. 하층인들이 비참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는 길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1780년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Jose Gabriel Condorcanqui)라는 인디오가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스페인의 정복에 항거하다가 죽은 잉카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을 본따 투팍 아마루 2세(Túpac Amaru II)라 칭하고, 인디오들을 규합해 봉기했다. 그는 인디오들이 식민당국에 강요에 의해 농장과 공장에서 노예처럼 강제노동에 사역당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있는데 항거했다.

아마루는 어릴 때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형은 스페인 정부에 협조해 족장에 준하는 지위를 물려받은 특권계층이었으나, 인디오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고는 것을 보고 분개했다. 그는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잉카 황제의 복장으로 나타나 인디오의 원성이 높았던 총독 안토니오 데 아리아가를 처형했다. 투팍의 군대는 금세 6만명으로 불어나 잉카의 수도 쿠스쿠를 중심으로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북부까지 점령하는 등 유례 없는 반란을 주도했다.

아마루 반란군의 기세에 당황한 스페인 식민당국은 페루 부왕령 군대로 부족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원병을 요청해야 했다. 이듬해 반란군은 진압되고 아마루는 체포되어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아마루는 처형당했지만,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에 영향을 주었으며, 라틴아메리카 인디오들의 권리 투쟁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인디오들의 반란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1804년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카리브해의 아이티(Haiti)가 프랑스에서 독립해 공화국을 수립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투산 루뵈르투르(Toussaint L'Ouverture)의 지도 아래 50만명의 흑인 노예들이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이 혁명은 로마 시대 스파르타쿠스 반란 이래 세계역사상 처음으로 성공한 노예 혁명으로 꼽힌다. 이 소식은 신대륙에 순식간에 퍼졌다.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과 아이티의 국민주권 혁명이 신대륙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자유주의 물결이 불어 닥쳤다. 페루인 후안 비스카르도 구스만(Juan Vizcardo Guzmán)은 저서를 통해 스페인 식민지의 억압적 통치를 고발하고 자유 아메리카 이상을 설파했다. 그는 국민주권의 이상에 다라 인디오들의 권리회복을 주장했다.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앞서 이상주의로 혁명 대열에 나선 선구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Francisco de Miranda)라는 인물이다.

미란다는 베네수엘라 태생의 크리올이자 스페인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에도 참여하고, 그 경험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에 독립을 이식시키려 시도했다. 그는 급진적인 프랑스 혁명보다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미국형 독립을 추구했다. 1806년 미란다는 미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원정대를 조직한 다음, 뉴욕에서 출발해 베네수엘라로 상륙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독립운동은 너무 일렀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808년 나폴레옹은 스페인의 카를로스 4세와 페르디난도 7세를 체포하고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국왕으로 옹립했다. 유럽 정세 변동은 본국 스페인과 식민지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왕당파들은 프랑스 왕가에 충성을 거부했다. 스페인 파견군과 현지 크레올은 아메리카 현지에서 지방군벌로 남아 세력을 유지하면서 본국에 대항했다.

자유주의자와 독립운동 세력에겐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들은 식민지의 주권이 국민들에게 있다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