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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 비망록
김종인 보사부 장관, 노태우 움직여…실무자들, 물정 모른채 “예정대로” 강조
실패한 6공 실명제⑤…물건너간 청사진
2019. 12. 20 by 김현민 기자

 

1990년 정초가 지나면서 청와대 비서실은 110일로 예정된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구시대 청산과 새시대 개막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로 고민을 했다. 이때 김종인 보사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을 찾았다. 당시 노 대통령에겐 개혁을 외치는 문희갑 수석이 어쩐지 미덥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1989년말부터 김 장관을 수시로 불러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경기가 침체하고 있는데 부동산 투기는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자문을 구해오던 터였다.

김종인 장관은 직책과 상관 없이 경제현안에 관한 두툼한 종합보고서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그 보고서에는 금융실명제와 세제개편이라는 내용이 상세히 기술돼 있었고, 김 장관은 그것도 모자라 노 대통령에게 실명제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김 장관의 말 가운데 서독에서 실명제가 실패했다는 점에 특히 귀를 기울였다.

1990년 정초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면서 날이 밝았다. 19891231일 저녁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에 출석해 증언을 마치고 백담사로 돌아갔고, 이제 바통은 노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199013일 시무식과 함께 노 대통령은 5공 청산 종결을 선언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이 무렵 박철언 정무1장관은 민주당의 황병태, 공화당의 김용환 의원과 접촉해 3당 통합의 조건을 상당 수준까지 합의해 놓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여소야대의 정치구조와 민주화 열기 속에서 지나치게 인기 위주로 벌였던 경제정책을 재점검하자는 기운이 민정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내각에서도 김종인 장관이 국무회의 때마다 혼자 손을 들어 반대 의견을 폈다. 김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실명제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금융실명제의 본질은 금융자산에 대한 종합과세다. 이 것은 세수 확보의 차원에서 원천징수에 비해 나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부작용만 심화시킨다. 이런 사례는 서독에서 찾아볼수 있다. 실명제에 의한 금융자산 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는 분리과세에 비해 세수확보 면에서 유리하지 않다. 자금의 해외도피나 저축감소와 같은 부작용의 우려가 높다. 이와함께 금융거래정보를 정부가 갖는 것도 금융관행의 시정보다는 오히려 민주화에 역행할 소지가 있다.”

김 장관은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재정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73년부터 서강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국보위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유학파들이 대거 입각하던 당시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소수파로 독일에 관심이 많았다.

때마침 19897월 서독 정부는 여야 합의로 이자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제도를 폐지했다. 19891월 서독 정부는 원천소득세를 부활해 모든 이자소득에 대해 10% 세율의 원천징수 후 종합과세를 실시했으나 예금이 세금기피를 위해 대거 룩셈부르크로 빠져나가고 국민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에 시행 6개월만에 폐지했다. 서독의 사례는 김종인씨에게 실명제 반대론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노 대통령의 의중도 이에 움직였다.

김종인 당시 보사부 장관의 말이다.

전임 경제팀은 이상론을 너무 강조했어요. 토지공개념이니, 금융실명제니 하면서 거창한 슬로건만 내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어떤 파장을 주고, 그것이 가능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실명제는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실명제가 되면 경제정의가 실현되는 양 생각하면 잘못이에요. 성숙되지 않는 경제를 이상론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곧이어 110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실명제의 단계적 실시와 신중한 추진을 강조했고, 16일로 예정된 재무부의 새해 업무보고에서 실명제 실시의 부작용에 관해 신경 써서 준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1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무부의 새해 업무보고. 이날 상오 경제기획원 보고에서도 실명제의 신중한 추진을 강조한 노 대통령은 이규성 장관의 브리핑이 끝나자 윤증현 실명단장을 불렀다.

윤 단장, 선진국에서는 실명제를 어떻게 실시하고 있소. 서독에서도 문제가 있다던데 우리는 실명제를 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소.."

서독은 이미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자 소득의 과세방식을 원천징수제로 바꾸려다 자금이 인접국으로 대거 빠져 나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실명제와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윤 단장은 대통령의 우려를 바로 잡으려고 설명했지만, 노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실명제 연기로 기울어 있었다.

물론 연두 기자회견을 하고 기획원·재무부의 업무보고에서 지시를 내리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문희갑 수석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문 수석은 화가 났지만 어쩔수 없었다. 어떤 이상한 기류가 대통령의 의중을 바꾸고 있음을 직감, 특유의 배짱으로 실명거래실시 준비단을 직접 통제하고 나섰다.

문희갑 수석은 1990년 정월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 쪽에서는 수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대통령의 말씀과 지시는 부작용 방지를 위해 충분히 검토한후 시행하라는 취지라고 누누이 설명했지만, 분위기는 계속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만반의 준비를 해나갔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사진
한국은행 자료사진

 

노심(盧心)‘이 실명제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팀은 실명제 추진의 목청을 돋우었다. 120일 서영택 국세청장은 실명제 실시를 계기로 지하경제를 척결하겠다고 밝혔고, 다음날 재무부는 사실상 실명제 실시에 관한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문 수석은 이 방침이 사실상 입법예고나 다름 없다고 밝혔지만, 주변의 환경은 그날의 삭풍한설만큼이나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같은 시기 박철언 정무장관실에서는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통합 발표문 초안이 작성되고 있었다. 122일 밤새 눈이 발목까지 내린 청와대 경내를 걸으며 노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조건 없는 3당 통합을 합의, 정국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3당 통합후 민자당내 민정계에서는 실명제 유보론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125일 박태준 대표위원이 포문을 열었다. “사견입니다만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실명제 실시 등 무리한 제도 개혁은 전면 제검토, 연기해야 할 것입니다.”

여론 전환을 위한 당의 공격이 본격화되자 같은날 이규성 재무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실명제 실시에 관한 부동의 입장을 강조했다.

실명제는 당초 예정대로 내년 1월 실시를 목표로 실무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오는 3~4월에 공청회를 통해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발표하고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실물경제에 최대한 신중을 기할 방침이며,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비, 철저한 보완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경실련도 129일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경실련은 “3당 통합을 계기로 정치권 일부에서 금융실명제를 연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극소수 기득권 계층과 일부 재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제개혁 조치를 예정대로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조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도 같은 날 실명제는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3당 합당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은 터에 실명제를 놓고 합당 초기부터 당정이 심각한 갈등을 노출했다. 민자당이 공식 출범한 뒤 처음으로 212일 서울 상의회관에서 당정회의가 열렸다. 숙명의 라이벌 관계인 조순 부총리와 이승윤 당 정책위 의장이 공동으로 사회를 맡았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이날 회의에서 이승윤 의장은 목소리의 톤을 낮추었다. “정부의 정책 실기, 정치인들의 경쟁적 인기영합, 기업인의 방만한 경영과 근로자들의 과다한 제몫 찾기가 오늘의 경제난국을 불러왔습니다.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모든 경제주체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당도 정부가 추진하는 실명제와 토지공개념등 제도개혁에 동의합니다.”

황병태, 나웅배 의원등 당직자들도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는 점을 의식해 정부를 두둔하고 나왔고 조 부총리는 그런 좋은 얘기를 해주시니 고맙습니다며 분을 삭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을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당정의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이후 김종인 장관을 따로 불러 합당 정국의 경제수석으로 일하라고 언질을 주었고, 조 부총리, 문 수석의 경질이 예고되어 있었다. 금융실명제도 이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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