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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4개월 앞두고 선정…김영삼 진영 반발, 최형우 막후 조정에 나서
6공 이동통신 선정 논란③…정치 소용돌이
2019. 12. 24 by 김현민 기자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일주일쯤 앞둔 8월 중순의 어느날. 삼청동 안가에서는 최종 선정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마지막 의견조정을 위한 당정 대책회의가 열렸다. 청와대와 정부 측에서는 정해창(丁海昌)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진설(李鎭卨) 경제수석, 이상연(李相淵) 안기부장, 송언종(宋彦鍾) 체신부장관이, 민자당에서는 황인성(黃寅性) 정책위 의장, 최창윤(崔昌潤) 대표 비서실장, 박관용(朴寬用) 의원이, 각각 참석했다.

민자당 쪽에선 정부측 입장을 이해하지만 당의 입장도 고려해야지 않느냐는 것이었고, 청와대쪽에서는 문제제기가 너무 늦어 어쩔 수없다는 쪽이었다. 이들은 밤늦도록 함께 고민을 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선경이 선정돼도 어쩔 수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이날 회의에는 김영삼 대표의 핵심측근들도 참석했던 만큼 청와대측은 김 후보의 뜻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 이를 계속 밀고 나갔다.

이 무렵 6공화국 내내 대통령에게 막강한 영항력을 행사했던 동서 금진호씨와 5공 시절부터 통치권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이원조(李源祚)씨가 개입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대통령을 찾아가 불편한 심기를 삭이려고 했다. (이들의 중재 노력으로 선경의 이동통신 반납이 성사됐다는 설이 있다)

최종발표에 임박해서도 당정 간의 의견 일치를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양측의 감정의 골은 패일대로 패였다. 발표와 동시에 당정갈등은 표면화할 수 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이동통신을 둘러싸고 노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와의 견해차는 7월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업계와 증시에는 온갖 소문이 떠돌고 야당이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할 움직임을 보였다.

723일 김 대표는 청와대에서 있은 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사업자선정 연기를 건의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동통신 문제가 적법성, 합리성과 관계없이 대통령 사돈에 대한 특혜 시비로 비화되고 있는 만큼 사업자 결정을 대통령 선거 후로 넘겨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동통신으로 인한 잡음이 선거에서 여권에 불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고 한다. 이에 노대통령은 이 사업에는 한 점의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김 대표의 말에는 수긍, 송언종 장관을 불러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송 장관은 대통령의 질문에 이미 공고를 마치고 심사에 들어가 있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선경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며, 선경이란 일개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이 함께 얽혀 있어 절차상 중단할 방법이 없습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심사는 계속됐다.

729일 체신부는 1차심사결과를 발표했다. 주주 선정의 적정성에 20%, 재무 상태와 자금 조달 능력에 30%, 영업 계획과 기술계획서에 각각 25%의 점수를 부여한 심사결과,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이 1만점 총점에 8127점으로 1,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이 7783점으로 2,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이 7711점으로 3위를 각각 차지, 3개의 컨소시엄이 1차 관문을 통과했다.

8월초 민주당을 비롯, 야당들이 이통 건을 놓고 여당을 한꺼번에 비난하고 나서자 김 대표의 측근들은 김 대표가 노대통령에게 사업자 결정(발표)의 연기를 건의했다고 흘리면서, 김 대표와 정부의 결정은 별개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자 1차 심사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한 선경과 코오롱은 연기반대의 입장을 밝혔고, 3위를 한 포철은 발표만 연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연기한다면 심사를 연기해야한다고고 주장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측의 이러한 움직임이 청와대와 민자당의 갈등, 불화의 시각으로 비춰졌다. 김 대표의 선거 준비팀이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1차로 이동통신문제를 선정했으며, 그에 따른 여론화작업이라는 설도 이 무렵 유포됐다.

최종심사를 앞두고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흐르자, 86일 이진설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동안 여섯차례의 공식 당정회의 거쳤으며, 이 사업은 어느 기업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이고 공정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어 의혹이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청남대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노 대통령은 8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동통신에 관해 보고를 받고 이동통신 연기론은 일축했다.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은 임기초부터 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고, 이동통신도 외국에 비해 10년이나 뒤져 있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서는 안돼지만, 국민에게 공약한 사업과 국가에 필요한 사업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13일 김 대표측이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가운데 노 대통령과 김 대표와의 첫주례회동이 열렸다. 회동이 끝난 후 김중권(金重權) 정무수석은 이동통신문제는 일체 거론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날저녁 김 대표는 상도동 자택에서 이동통신이든 움직이지 않는 통신이든 나한테 묻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 대표 측근들은 김 대표가 사업자선정연기를 대통령에게 촉구했으며, 이제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김 대표로서는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추가로 설명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국책사업을 정치적 이유로 연기할 경우 정부의 공신력이 실추된다는 등 사업추진의 불가피성을 일일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날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출입기자들에게 사업연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역설했다. “임신하기 전에 아기를 갖는 것은 연기할 수 있습니다. 또 임신 초기라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낙태를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달이 다 되어 곧 아기를 낳으려는 산모에게 낙태나 출산연기를 명령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818일 정부 측이 예정대로 사업자를 확정 발표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김 대표측에서는 선거에서의 감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따라서 결코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강경입장이 절대 우세했다. 사업자가 예상대로 선경으로 발표될 경우 선경을 제외한 참여업체로부터의 반발은 불을 보듯 명확했다.

이어 20일 오전 송 체신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2이동통신의 주사업자로 선경이 선정됐습니다라며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14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둔 때였다.

 

1992720일에 있은 이동통신 1차심사에서 선경이 탈락했으면 문제는 끝났을 것이지만, 선경그룹의 유공을 대주주로 한 대한텔레콤이 압도적인 점수차로 1위를 차지하자 특혜시비가 불붙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체신부, 그리고 심사에 참여한 학계와 연구기관인사들이 유공의 준비가 탁월했음을 누누히 강조했으나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를 호재로 삼고 쟁점화했다.

 

2이동통신 최종심사결과가 발표되자, 탈락한 포철과 코오롱측은 즉각 불만을 표출했고 , 특히 포철이 강하게 반발했다. 또 정치권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정치이슈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탈락업체들은 각본에 들러리만 섰다며 선정과정의 불공정사례를 들고 나왔다.

당시 언론을 통해 부각된 사업자선정의 불공정사례를 몇가지만 요약해 보자.

추진일정연기 = 사업계획서 접수시기가 당초 924월에서 6월로 연기, 사업자 지정일정이 당초계획보다 2개월 순연됐음. 이는 미국의 벨 사우스와 결별한 선경에 재검토 시간을 부여하기 위한 것임.

회계법인 선정 = 정부가 사업신청기업의 재무관련서류를 검토할 회계법인을 안진회계법인으로 선정했음. 이 법인의 대표는 태평양그룹회장의 처남인데, 태평양그룹을 매개로 한 안진과 선경의 모종의 담합이 있을 수 있음. (그무렵 선경은 태평양증권을 인수했다)

평가항목의 유출 = 선경의 계획서가 체신부의 평가항목및 심사기준과 너무나 일치함. 쉼표 어구까지 대부분 흡사함.

1차심사결과의 유출 = 당초 순위만 발표한다는 계획과는 달리 1차심사결과를 점수까지 공개. 1차심사결과를 바탕으로 2차심사에서 선경의 1위 굳히기를 위한 속셈으로 보임.

 

사업자선정의 불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비등하자 체신부가 일일히 해명하고 나섰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체신부 실무자의 말이다. “심사위원들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3배수의 추천을 받아 연구실적 등에서 사업자신청 기업과 다소라도 관계가 있으면 제외시켰습니다. 평가방법은 심사위원들이 내부토론을 거쳐 결정했고 중간에 어떻게 되가느냐고 물으면 오히여 참견말라고 반발할 정도였습니다. 선정방법과 기준에 대해 탈락업체들이 반발한다면 그것은 악속위반입니다. 참여회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의가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군요.”

 

탈락 기업들보다는 정치권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날 하오 청와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김대표의 주례회동. 이동통신문제에 관한 노 대통령의 강경방침과 김 대표의 연기입장이 맞선 가운데 회동을 마치고 청와대를 나섰다. 김 대표는 곧바로 가락동 민자당정치교육원으로 직행, “정부가 깨끗하고 대통령이 정직해야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주당은 긴급확대당직자회의를 열고 김 대표가 반대하고 청와대가 강행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내부적으로 짠 것이다며 성토했다. 다음날 민주당의 김대중 대표는 김영삼 대표는 수시로 당정회의도 주재하고 일주일에 한차례씩 청와대회동을 통해 국정을 공유해 왔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차별성을 부각시켜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비난했다.

야당의 집요한 공세가 노 대통령은 물론 김 대표에게로 집중되자 김 대표는 강릉지구당개편대회 참석차 가던중 전날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이동통신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다고 발표하라고 서울에 남아있는 측근들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대표 진영에서는 김대표의 지시대로 이동통신에 대한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대외에 밝혔다.

강릉문화회관에서 열린 지구당대회에서 김 대표는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상당히 심각한 톤으로 표시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청렴결백한 풍토조성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도 내 아내와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나라를 더욱 사랑합니다.”

김 대표의 강릉발언이 노 대통령을 대로케 한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인 22일 노 대통령은 긴급수셕비서관회의를 소집, 아동통신 사업에 대한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체신부 결정에 대한 재고나 사업연기 등은 논의되지 않았으며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선전과정의 공정성을 검증, 의혹을 적극 불식시키자는 정면돌파방식이 논의됐다.

당정간 정면 충돌의 조짐이 보이자 민자당의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이 이상연 안기부장과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부측 인사와 다각적으로 접촉,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해나가기 시작했다. 서동권 청와대정치특보, 김영구 민자당사무총장, 최창윤 김대표 비서실장, 김덕용 의원등도 막후대화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양측의 입장을 살리는 방안은 사업자로 선정된 선경측이 사업자선정을 반납하는 방법벆에 없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체신부가 선경에 사업자선정을 통보한지 2-3일만에 민자당의 수뇌부는 사업자반을 선경에 타진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김 대표의 오른팔격인 최형우 의원이 선경 측과의 막후협상에 나섰다.

23일은 일요일인데도 불구, 민자당과 선경 사이에 이동통신사업자 반납을 위한 막바지 막후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경측은 대주주인 유공의 지분이 31%에 지나지 않아 독자적인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사업권을 일방적으로 포기하기 어렵고 사업을 포기할 경우 컨소시엄에 참여한 국내외 업체로부터 손해배상 소송등 법적책임 추궁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유공의 이동통신참여지분을 국민주로 전환, 이익을 국민에게 환원하겠다는 선언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제안마저 김 대표측의 뜻을 돌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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