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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열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각축전을 벌였던 지중해의 소국
유럽의 공국③…그리말디 가문의 나라, 모나코
2019. 04. 07 by 아틀라스

 

모나코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국가다. 엄밀하게는 프랑스 안에 들어와 있는 나라다. 공식명칭은 모나코 공국(Principality of Monaco)이다.

해안선의 길이 4에 면적 2.2의 모나코는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2016년 현재 인구는 38,897명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168,000달러로 부자나라다. 카지노 산업으로 유명하다.

 

모나코 전경 /위키피디아
모나코 전경 /위키피디아

 

이 나라의 국가수반인 공작은 이탈리아 800년전 제노바 출신의 그리말디 가문(House of Grimaldi)에서 이어지고 있다.

모나코는 BC 10세기경에 페니키아인이 식민지로 건설한 도시로, 로마에 정복되었다. 119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가 모나코 영지를 이탈리아 제노바에 넘겨주었다.

1297년부터 제노바의 귀족 프란체스코 그리말디(Francesco Grimaldi)가 영지로 받아 성채를 쌓았다. 이때부터 모나코는 그리말디 가문의 영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땅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아라곤(Aragon)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그 와중에 모나코는 아라곤의 영지가 되었다.

1419년 그리말디 가문은 아라곤 왕국으로부터 모나코를 매입해 명실상부한 영지임을 선언했다. 그 후에도 스페인은 과거 아라곤의 영토였던 모나코의 영유권을 주장했고, 그리말디 가문은 프랑스에 보호를 요청했다. 프랑스의 역대 황제는 모나코를 보호했고, 모나코의 그리말디 가문은 프랑스의 신하가 되었다. 1793년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자 혁명군은 모나코를 장악해 직접 통치를 했고, 그리말디 가문은 공작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그리말디 가문은 이번에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왕국에 붙어 지원을 요청했다. 1814년 나폴레옹 패배 이후 열린 빈 회의에서 사르데냐 왕국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공국으로 다시 건국되었다.

 

1860년 이전의 모나코. 프랑스가 영토의 95%를 떼내 갔다. /위키피디아
1860년 이전의 모나코. 프랑스가 영토의 95%를 떼내 갔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1860년 사르데냐 왕국이 군대를 철수한 이후 다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모나코의 영지였던 니스(Nice)를 떼내 갔다.

프랑스의 지배하의 그리말디 가문은 과도하게 세금을 걷자, 멘톤(Menton)과 로크브룬(Roquebrune) 주민들이 반발했다. 그들은 독립을 선언하며, 사르데냐 왕국과의 통합을 주장했다.

이에 프랑스가 강하게 반발했다. 모나코의 샤를 3(Charles III) 공작은 두 영지를 프랑스에 410만 프랑을 주고 양도했다. 이로써 그리말디 가문이 500년동안 지배해온 두 영지가 프랑스에 넘어갔는데, 당시 영토의 95%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이후 모나코 공작은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지 않게 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이후 카지노 사업을 벌여 그 수입으로 왕실 비용을 대고 있다.

1910년에는 공작 지배에 대한 시민 저항운동이 벌어졌다. 이후 1911년 절대군주제가 폐지되고 헌법이 제정되어 입헌군주제로 전환되었다. 1차 세계대전 기간중에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가 1919년 전후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공국으로 인정받았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이 점령했고, 곧이어 나치 독일군이 유태인을 색출하기 위해 점령하기도 했다.

2차 대전후 레니에 3(Rainier III)1949년부터 56년간 재위했다. 1956년 마릴린 몬로와 쌍벽을 이뤘던 헐리웃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레니어 3세와 결혼해 화제가 되었다. 레니어 3세는 당시 내 궁전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어요라며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켈리에게 청혼했다. 수만 명이 몰려든 웨딩마치는 지중해의 소국을 화제 속에 몰아넣었다.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 /위키피디아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 /위키피디아

 

1993년 모나코 공국은 유엔 회원국으로 공식 가입했다.

레니어 3세가 죽고 그뒤를 이어 2005년부터 알베르 2(Albert II)가 즉위했다.

모나코는 1701년부터 외교권과 국방권을 프랑스에 위임했고, 되어 있다. 1861년 프랑스-모나코 조약으로 주권이 인정되었다. 1

1962년 도입된 신헌법에 따라 의회의 권한이 강화돼 대공과 의회가 공동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며, 프랑스와의 보호조약에 따라 프랑스가 대공 추천권을 가진다. 공작이 거주하는 궁전은 원래 요새였던 곳으로 1480년 모나코가 독립되면서 궁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근에는 포와 포탄이 지중해를 향하고 있고, 매일 정오쯤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된다.

 

모나코의 공작궁 /위키피디아
모나코의 공작궁 /위키피디아

 

지금도 모나코의 국가원수는 모나코 공작(인데, 행정부는 5명의 행정위원회를 이끄는 국무장관이 수행한다. 2002년까지는 프랑스 정부가 추천한 프랑스인이 국무장관에 임명되었지만, 프랑스인과 모나코인이 임명될수 있다.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24)이다.

우리나라는 20073월에 모나코와 공식 외교를 체결했다.

 

모나코 위치 /위키피디아
모나코 위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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