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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시대
영국이 런던박람회에서 수정궁 소개…프랑스, 영국과 경쟁하며 에펠탑 건립
수정궁과 에펠탑…현대 마천루 신기원 열다
2019. 12. 26 by 김현민 기자

 

18512월 런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거대한 초현대 건물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51일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개회 선언으로 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가 열렸다. 그해 1015일까지 열린 박람회에는 영국을 포함해 45개국에서 14천점의 제품이 전시되었다. 전시품 중 절반은 영국 제품이었다.

당시 박람회에서 관람객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품목은 영국 왕실이 자랑하는 코이누르(Koh-i-Noor, 105.6캐럿)와 세계 최대로 페르시아 왕실 소유의 다리아이누르Daria-i-Noor, 182 캐럿) 다이아몬드였다. 또 영국 도자기업체 밀턴스(Mintons)가 전시한 초호화 자기제품도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귀금속과 도자기류만큼이나 관심을 끈 것은 공업제품이었다. 프레데릭 배이크웰(Frederick Bakewell)이라는 영국 물리학자는 오늘날 팩스기와 비슷한 기계를 선보였고, 무기업자들은 최신 권총과 대포를 내놨다. 온도계, 자물쇠, 망원경, 현미경과 같은 다양한 첨단 제품들도 전시장을 메웠다.

이 행사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공(Prince Albert)의 주도로 열려 영국 산업혁명을 과시하는 세계최초의 박람회로 기록된다. 관람자 수만 6백만명, 당시 영국인구의 3분의1에 해당했다. 하루 평균 42천명이 다녀갔고, 많은 날에는 10만명을 넘기도 했다.

 

1851년 영국 런던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수정궁 /위키피디아
1851년 영국 런던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수정궁 /위키피디아

 

무엇보다 구경거리는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 불린 박람회장 건물이었다.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 1803~1865)이라는 당대 영국 최고의 건축디자이너가 설계한 수정궁은 길이 최대 563m, 124m, 축구장 18개가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석재와 벽돌과 같은 기존 소재를 쓰지 않고, 주철 기둥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벽과 지붕은 유리로 만들었다.

조지프 팩스턴 /위키피디아
조지프 팩스턴 /위키피디아

 

수정궁이라 이름 지어질 만큼 판유리를 외벽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 유리는 1832년 챈스 형제(Chance Brothers)가 개발한 것으로, 산업혁명이 창출한 유리 제품으로 건물 외벽을 구성할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수정궁은 겉모양은 유리로 되었지만, 내부 구조는 강철로 만든 건축물이었다. 건축 현장 밖에서 제작해온 주철과 연철 부자재로 얼개를 만들고, 유리를 붙였다. 건축기간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석재로 만들었다면 공사기간을 이처럼 단축할수 없었고, 규모도 장대하게 할수 없었다.

런던 만국박람회는 세계의 공장임을 자부하던 영국의 위세를 과시하는 자리였다. 겉으로는 유럽 각국의 공업제품 전시회를 표방했지만, 사실 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제품은 기관차 엔진, 수압식 인쇄기, 동력 직기, 공작 기계 등으로 메이드 인 브리튼이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런던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수정궁의 위용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유리로 외벽을 만들고 철로 만든 골조로 지탱하는 건축물은 당대인에게 생경한 모습이었다.

 

영국은 이미 1779년에 철제 교량인 아이언 브리지(Iron Bridge)를 완공할 정도로 강철 건축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이 정도의 거대한 건물에 철강재를 공급할수 있다는 것도 당시 영국 산업의 자랑거리였다. 아이언 브리지를 건설하던 18세기 후반의 제철 기술로는 다량의 강철을 제조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강철의 가격도 매우 비싸 경제성이 없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주철 제조, 용강법 발명, 철 정련법 등 철강 제조 기술이 갈수록 발전했다. 수정궁의 탄생은 이 같은 제철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다.

수정궁이 건축되기 전까지 강철은 실용적이지만 미적으로 건축자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수정궁은 강철은 건축가와 토목 기술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팩스턴이 철을 이용한 조립식 공법의 수정궁을 설계한 것은 앞서 커다란 온실을 세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철()이 건축물의 소재로 활용될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건축가들은 논쟁을 벌였다. 앞서 건축가들은 오랫동안 석재로 건물을 지었고, 돌로 지은 건물이 미학적 판단기준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본슈테르는 철의 사용이 과연 새로운 건축양식을 이끌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이에 비해 독일의 또다른 건축가 에르바르트 메츠거는 처음부터 철의 사용을 옹호했다. 그는 철은 가늘면서도 우아한 윤곽을 지니고 강하거나 섬세함을 드러내는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칼 뵈티허도 철을 미래의 재료라고 공언했다.

프랑스 건축가 외젠 에마뉘엘 비올라 뒥은 건축이 발전 할 수 있는 비결은 산업재료에 있다고 했다. 그는 그 재료중의 압권은 철이라고 주장했다.

철의 잠재력을 이용해 건축엔지니어들이 설계한 지붕이 있는 시장이나 온실, 그리고 철도 역사 등이다. 철 구조물이 공공건물에 처음으로 적용된 것은 1850년 파리의 앙리 라브루스트가 지은 생트 쥬느비에브 도서관(Sainte-Geneviève Library)이다. 이 도서관은 전통적인 형태의 볼트와 공공건물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노출된 철 구조가 잘 어우러진 역작으로 평가되었다. 철로 만든 원통 볼트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발적인 도전이기도 했다. 볼트 형식을 석재 대신에 철로 했다는 것은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철이 건물 공사에 널리 사용 될 만큼 충분한 양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 이후부텨였다. 철은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영국에서 대량생산되어 1770년대부터 건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연철(퍼들철)을 제조하기 위한 정련공정은 1784년에 고안되었고, 이후 숙련공들은 하루에 1톤씩 연철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철이 만들어지면서 압연기술은 잇따라 진보하게 된다.

연철은 처음에는 철도의 선로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다가 후기에는 건축물이나 주요 구조물을 생산하는데 쓰였다. 철은 방적공장이나 창고와 같은 산업구조물에 이상적인 재료였다. 그 건물들은 내화성능을 갖춘 다층 구조물로 만들기 위해 철과 함께 벽돌로 된 외벽과 결합되어 사용되었다.

 

바스티유데이(7월 14일)에 에펠탑 주변의 불꽃놀이 /위키피디아
바스티유데이(7월 14일)에 에펠탑 주변의 불꽃놀이 /위키피디아

 

런던 박람회는 경쟁국인 프랑스의 시기심을 자극했다. 프랑스도 1855년과 1867년 연달아 파리 국제박람회를 개최했다.

영국에 도전한 프랑스의 대표 주자는 토목기술자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이었다. 에펠은 런던 박람회의 수정궁을 본따 1867년 박람회에서 타원 모양의 유리 건물을 지어 선보였지만 수정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펠은 영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프랑스 여론을 의식해 다양한 건축에 철골조를 시험했다. 1880년대에 프랑스 님(Nimes) 근교의 가라비 철교(Viaduct de Garabit)가 에펠의 대표작이다. 이 다리는 165미터 스팬의 아치가 강을 가로지르는 장관을 연출했다. 에펠은 고대 건축물 양식을 자신의 토목 구조물에 건축 모티브를 사용하기도 했다. 가라비교도 로마시대 가르교를 본뜬 것이었다.

 

에펠이 디자인한 가라비 철교 /위키피디아
에펠이 디자인한 가라비 철교 /위키피디아

 

에펠은 교량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자리 잡으면서 도시에 지어지는 대중적 건물에 참여했다. 1885년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1885)을 만들면서 내부에 철골 골조를 넣었다.

에펠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1889년 박람회에서 드디어 에펠탑(Eiffel Tower)을 건설했다. 에펠탑은 에펠 자신의 개인 경력과 수정궁을 누르려는 프랑스의 국가적 노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는 수에즈 운하 공사에 참여하면서 보았던 피라미드를 기본 모티브로 삼았다. 여기에 슈테판 소베스트르(Stephen Sauvestre)가 건축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쾨클린(Maurice Koeklin)과 누기에(Emile Nougier)가 역학계산을 담당했다.

에펠탑에는 첨단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 에펠이 이전의 다리에서 완성시켰던 아치 기술을 수직으로 올렸다. 전체 구성은 기단, 몸통, 탑의 삼단 구조다. 중량을 대폭 줄여서 내력 부담을 완화시키고 풍압에 유리하도록 거미집 형식(spidery system)으로 설계되었다.

 

구스타프 에펠 /위키피디아
구스타프 에펠 /위키피디아

 

에펠탑과 수정궁 모두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수정궁이 평면적 산물이었다면 에펠탑은 수직적 타워로 기록을 세웠다.

1889년 미국 시카고에 랜드 맥널리 빌딩(Rand McNally Building)이 건물 전체를 철강제로 지었고, 1991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 건물 전체를 철골조로 지은 웨인라이트 빌딩(Wainwright Building)이 건설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생산된 철강재는 이제 본격적으로 마천루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1891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건설된 웨인라이트 빌딩 /위키피디아
1891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건설된 웨인라이트 빌딩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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