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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 중복투자 제한조치…재계 “땅 팔라더니 사업까지 참견” 분통
6공 재벌개혁②…업종 전문화 시책
2020. 01. 08 by 김현민 기자

 

각하, 금리가 너무 높아 기업하기가 힘듭니다. 재벌기업에 대한 여신관리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5·8 조치가 발표된지 한달여 지난 19906월의 어느날.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은 청와대를 방문, 노태우 대통령에게 금융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을 건의했다. 최 회장은 노 대통령과 사돈 간이기도 했지만 금융실명제를 비롯,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노 대통령에게 곧잘 간언하곤 했다. 이때도 재계로선 어려운 때였다. 5·8 조치로 위축된 기업활동을 되살릴 필요성을 느꼈고,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에 내놓아 손색없는 기업 몇 개는 육성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경제비서실에 그 방안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의 의중도 의중이었지만 김종인 수석을 비롯, 당시 경제비서관들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박운서 비서관은 당시 경제비서실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5·8 조치가 너무 과격하게 추진돼 경제적으로 충격이 크다는 사실을 모두들 인식하고 있었어요. 자금시장이 경색돼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았어요. 자금난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재벌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검토한 것이 업종전문화 정책이었습니다. 국내외 경제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재벌도 업종을 전문화해야 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정부는 5·8 조치와 병행해 업종전문화라는 대재벌 정책의 가닥을 잡아 나갔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업종전문화가 필요합니다.” (노 대통령, 906296·29 3돌 국민과의 대화)

대기업의 과잉중복 투자를 막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업종별 전문화를 유도해 나가겠습니다.” (박필수 상공부장관, 90629일 국회본회의 답변)

청와대와 정책 당국자의 간단한 언급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업종전문화 정책은 5·8 조치로 애지중지하던 땅마저 처분하게 된 재벌에는 또다른 규제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에선 재벌의 전문업종에 대해 여신관리를 풀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재벌의 입장에서는 정치·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돼 가는 마당에 업계 자율화에 어긋난다는 불만이었다. 5·8 조치에서 틈이 생긴 정·재계의 갈등은 업종전문화로 골이 깊이 패게 된 것이다.

업종전문화 정책은 출발 초기부터 문제점을 노출했다. 재벌의 신규업종 진출을 막을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 198771일 공업발전법이 발효되면서 정부가 민간기업에 강제적으로 투자 조정을 할 근거가 사라졌고, 6공화국 초기인 1988·89년에 대부분 업종의 신규참여가 자율화된 상태였다. 유화부문에 삼성·현대가 이미 뛰어들었고, 쌍용이 자동차산업에 진출해 있었다. 그래서 재벌의 신규업종 진출을 행정규제로 막을 수 없어 청와대가 직접 나서야 했다.

 

(주)카프로 공장전경. /(주)카프로 홈페이지
(주)카프로 공장전경. /(주)카프로 홈페이지

 

노 대통령이 재벌의 업종을 전문화하고 과잉중복 투자를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5·8 조치 이전부터였다.

19891113일 노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충남 서산군 대산면 삼성종합화학 공장기공식에 참석, 치사를 했다. “서해안 시대를 여는 또 하나의 큰 발걸음으로 오늘 삼성종합화학의 공장을 이곳 서산에 기공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90년대 중반까지 더 많은 석유화학공장이 이곳에 들어세게 되는데, 이곳을 21세기를 이끌어갈 산업지역으로 만들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이내 유화산업의 과잉중복 투자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았으며, 곧이어 있을 예정이었던 현대석유화학공장(충남 서산) 기공식에 불참을 통보했다. 현대는 기공식을 취소하고 곧바로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경제비서관들에게 삼성·현대의 유화 참여는 잘못된 일이라고 피력하면서 삼성종합화학 기공식에 참석했던 일을 후회하기도 했다.

업종전문화 방침이 굳어지면서 재벌의 신규업종 진출에 청와대가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의 카프롤락탐 사업과 삼성의 상용자동차사업 진출이다.

나일론의 원료인 카프롤락탐의 당시 국내수요는 연간 22만톤이었는데, 한국카프로락탐(현재 ()카프로)7만톤을 생산하고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했다. 한국카프로락탐에 합작 참여해온 동양나이론이 독립회사를 차리겠다고 나오자 현대가 끼어들었다. 동양나이론이 연간 12만톤, 현대가 15만톤을 생산하겠다고 나서 과앙중복 투자가 불을 보듯 뻔했다.

청와대 경제비서실은 동양나이론은 이미 참여한 사업인 만큼 참여를 인정하고 현대는 추가로 뛰어든 만큼 업종전문화 원칙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려 현대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현대는 19906월 서류 보관을 이유로 재무부에 제출한 합작승인 신청서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상공부가 인정한 사업을 청와대가 틀자 정주영 명예회장은 기업이 알아서 할텐데 정부가 왜 나서는가. 사업을 하는데 등록·신고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삼성 자동차의 경우 청와대가 개입해 정책혼선은 물론 6공화국말 정부에 대한 재벌의 로비 의혹을 남긴 케이스다. 삼성그룹은 상용차의 공급부족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닛산(日産) 디젤과의 기술도입 신고서를 상공부에 제출했다. 상공부는 산업연구원의 이경태 박사등 5명으로 실사반을 구성했다. 실사반은 1990725일부터 30일까지 삼성중공업·자동차 5·()통일 등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 실사팀은 상용차 공급 적체를 해소한다는 삼성의 기술도입 이유는 공장가동 때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당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입 시기는 수급에 맞춰 결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는 이 결론 가운데 당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초점을 맞춰 상공부에 신고서를 반려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상공부는 그해 8월 삼성의 신고서를 반려했다.

실사팀의 일원이었던 이경태 박사의 설명이다.

당시 청와대는 삼성이 상용차에 진출한 후 승용차를 생산, 자동차 생산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해 처음부터 저지했습니다. 일정한 룰이 없이 진행된 업종전문화 정책은 재벌이 로비를 통해 사업에 진출하는 또다른 형태의 정경유착을 낳을 소지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삼성은 그러나 시기를 기다려 1992년 기술도입 신고서를 다시 제출해, 마침내 접수시켜 숙원이던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현대의 카프롤락탐 사업, 삼성의 상용차 사업에 대한 저지에는 김종인 수석이 직접 손을 댔으며, 대우의 디지털 피아노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업종전문화 정책은 1991년 들어 주력업체 제도로 구체화된다. 산업연구원은 199012월 정책토론회에서 업종전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데 이어 911월 세미나에서는 주력업종 제도에 대해 예산규제를 풀어줄 것을 제시했다.

산업연구원이 제시한 주력업종 제도는 여신관리가 어렵다는 최각규 부총리, 정영의 재무장관의 반대에 부딛쳐 주력업체 제도로 틀이 바뀐다. 9124일 정영의 재무장관은 국회 재무위 답변에서 주력업체 제도의 골격을 밝혔다. “우리 기업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통해서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특히 업종전문화와 첨단산업분야의 제조업 설비투자를 적극 지원해야 하며, 이를 위해 여신관리 제도의 개편이 필요합니다. 업종전문화를 유도하기 위해 주력업종과 주식분산이 잘되어 있는 기업을 여신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겠습니다.”

정영의 장관은 9136재벌마다 2~3개 주력기업에 대해 여신한도 규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여신한도 관리를 30대 그룹에서 10대 그룹으로 축소하며 부동산 신규매입 및 신규업종 진출에 대한 규제는 50대 그룹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의 여신관리 제도 개편방안을 금융산업발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중 여신관리 대상을 10대 재벌로 축소한다는 내용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금융발전위원회의 반론에 부딛쳤고, 이틀후인 38일 최각규 부총리는 30대 재벌에 대한 여신관리 규제를 계속한다고 발표했다.

업종전문화와 주력업체 제도의 추진배경에 대해 당시 두 상공부 장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 자체가 커지는 것을 막아서도 안되지만, 재벌이 이것저것 사업을 마구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벌이 업종을 전문화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누군가 이를 제어해야 하는데 정부만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업종전문화는 5·8 조치와는 별도로 추진됐으나, 재벌들은 땅도 못하고 사업도 맘대로 못하게 한다고 불만이었습니다.” (박필수 상공부장관)

그룹마다 자율신청에 의해 주력업종을 선정토록 하되 조정을 않는다는 원칙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유화·자동차·전자등에 집중됐습니다.” (이봉서 상공부장관)

전경련은 311일 정례 회장단회의와 49일 최고경영자 월례조찬화를 통해 이번 기회에 여신관리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30대 재벌까지 그룹별 3개씩 주력기업을 선정, 무제한의 은행대출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주력업체 제도로 이행한 업종전문화 정책은 5·8 조치 때 어떤 땅을 내놓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재벌에게 어떤 업종을 살려여 할지 하는 또다른 고민에 사로잡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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