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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 비망록
업종 전문화 시책에 재벌 분가 가속화…주식이동, 지급보증 축소, 감정 싸움까지
6공 재벌개혁④…분가와 분재 확산
2020. 01. 10 by 김현민 기자

 

정부의 업종전문화 시책과 주력업체 제도가 재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던 1991년 하반기.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최종욱 선경마그네틱 사장은 계열사 분리를 신중히 논의했다.

형님, 이젠 독자적으로 기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선경마그네틱을 그룹에서 독립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여신규제로 투자도 제대로 못할 바에야 그룹을 떠나는 게 나을수도 있지.”

최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으로서 정부의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게다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라는 장기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선경마그네틱을 분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최종욱 사장은 더 절실했다. 선경의 계열사로 있으면 네임 밸류도 활용하고 경영지도를 받을수 있지만 이젠 사정이 달랐다. 어느 정도 오디오테이프 제조업체로 성장했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선경 계열사로 묶여 여신관리 규제를 받는 게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형제 간의 속마음은 달랐겠지만 아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최 회장은 동생 종욱씨의 희망사항을 받아들였고, 선경그룹은 곧바로 선경마그네틱의 분리 작업에 들어갔다. 199110월 선경그룹은 선경마그네틱의 계열사 분리를 시작해 그해 12월 은행감독원으로부터 계열사 분리 신청을 인정받아 그 작업을 마무리했다.

 

6공화국 말기에 들어가면서 강경 일변도로 치달은 정부의 재벌 정책은 재벌그룹으로 하여금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에 큰 부담을 안겨줬다. 업종전문화 시책, 주력업체 제도, 상호지급보증 축소, 상호출자 규제 등의 방침이 속속 발표됐고, 재벌기업들은 차제에 비주력업종을 분리, 여신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고 유사업종을 통합, 업종전문화 시책에 보조를 맞췄다. 재벌그룹의 거대 조직에 핵분열과 핵융합이 붐을 이루며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1차 주력업체 선정이 끝난 뒤인 1991621일 최각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산은경영연구회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해 재벌의 경영구조에 대한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졌다. “급속한 경제여건의 변화에 맞추어 물가안정과 함께 금융자율화, 경제력집중 및 부동산투기 억제 등에 보다 중점을 두어 장단기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특히 경제력 집중의 경우 소유 분산과 개별기업 경영 정착을 위한 각종 제도 보완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최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경제기획원의 정책기조로 굳어졌다. 기획원은 91년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서 그룹 기조실 해체, 독립적 경영을 추진하고 계열기업 간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하며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규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무렵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은 재벌그룹 기조실장을 불러 놓고 개별기업 중심의 경영체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그룹 기획조정실이니, 회장 비서실이니 하는 조직이 계열사를 통괄, 장악하는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개별기업이 독자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이 방향으로 정책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경제 수뇌부의 이같은 분위기를 재벌기업들은 재빨리 감지했다. 정부의 잇따른 공세는 공룡처럼 비대해진 재벌의 유기체가 분열·통합하는 외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제공했지만, 재벌그룹 스스로도 변신의 내적 동기를 갖고 있었다. 경제개발 30년을 거치면서 재벌의 가계도 1세대에서 2세대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1세 총수들도 대부분이 작고하거나 경영 2선으로 물러났고, 2세 총수들의 형제간 분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재벌의 조직 분열은 그룹의 특성에 따라 변화의 모습을 달리 했지만, 이때 시작한 탈각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속도를 가속화했다.

 

럭키금성은 발빠른 변신을 시도했다. 1988년부터 그룹경영 전반에 걸쳐 자율경영을 강조해온 구자경 회장은 1990년 기획조정실을 계열사 지원업무만 하는 회장실로 탈바꿈시키면서 13개팀 159명의 조직과 인원을 4개팀 60명으로 축소했다. 그리고 이해부터 매년 계열사 사장과 각서 조인식을 갖고 투자결정·인사·자금조달 등의 책임을 사장에게 일괄 위임했다.

구자경 회장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해마다 이런 각서 조인식을 갖는 이유는 각 CU(사업 섹터)에서 수립한 계획이 철저한 실천으로 이어져 경영 성과로 나타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각서 조인식은 우리끼리만의 약속이 아니라 주주·고객·임직원·사회에 대한 엄숙한 선서입니다.”

199161일 럭키금성그룹은 경영난에 허덕이던 금성전기를 금성통신에, 럭키소재·제약을 ()럭키에 각각 합병하는 등 62개의 계열사를 58개로 축소했다. 이어 92년엔 7개의 기업을 정리하고 3개의 기업을 신규편입, 54개로 축소한데 이어 새 정부 출범 후인 199371341개 계열사로 대폭 정리했다.

 

자료: 신세계 백화점 사이트
자료: 신세계 백화점 사이트

 

삼성그룹이 취한 방식은 분가였다.

1991116일 삼성그룹은 신세계백화점과 전주제지를 계열에서 분리, 독립시켰다. 전주제지와 그 자회사인 고려흥진은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씨(고 이병철 회장의 장녀)에게, 신세계백화점과 자회사인 대전민자역사()는 이 회장의 동생인 이명희씨(고 이병철회장의 5)에게 각각 배분, 독자적인 경영권을 부여했다.

이어 1992521일 조선호텔을 그룹에서 분리, 지분 50%를 이인희씨가 행사하도록 돌려줬다. 삼성그룹의 분가는 199369일 사장단 회의에서 제일제당을 이 회장의 형수인 손복남씨에게 인도키로 결정, 새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다.

삼성은 계열사를 분리할 때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완화 요구에 부응하고 그룹의 경영력을 전자·중공업·석유화학등 제조업에 집중, 업종전문화를 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의 계열사 분리는 고 이병철 회장의 유언에 의한 형제·자매간 분재임은 이맹희씨(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의 회고에서도 나타났다.

선친이 살아 계실 때 우리 3형제(맹희·창희·건희)에게 무엇무엇은 누가 맡고 하는 말씀이 있었는데. 다만 내 입장에서 본다면 선대 회장의 유지대로 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삼성그룹과 달리 한국화약그룹의 재산나누기는 형제간 싸움으로 번져갔다.

19923월게 서울의 각 언론기관에는 출처 미상의 우편물이 배달됐다. 그 안에는 김승연 한국화약그룹을 비방하는 내용으로 가득찼다. “김 회장의 사생활에는 문제가 많고적자도 아닌 상태에서운운하며 극히 감정적인 용어로 김 회장을 맹비난하는 내용이었다.

해외출장중이던 김 회장은 괴문서가 서울의 언론기관에 배포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서울과 전화 연락을 취했다. “적자가 아니라는 말이 뭔 뜻인가.” “장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김 회장은 동생인 호연씨 측의 소행으로 직감하고 무척 진노했다. 호연씨 측은 그런 일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으나 김 회장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해 34일 한양유통 주주총회에서 한국화약그룹은 경영부실화 책음을 물어 김호영 사장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에 호연씨 측은 413일 서울지법에 김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 재산 분배를 둘러싼 형제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제벌 2세 총수의 분가는 한일그룹·동아건설·동양그룹에서도 진행됐다.

한일그룹은 91년 김중원 회장과 동생 중건·중광씨의 재산분배를 매듭지었다. 이들 형제는 상호지급보증 및 출자해소 작업을 통해 중건씨와 중광씨가 경남모직·부국증권·한효개발에 대한 경영권을 갖도록 했다.

재벌 1세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대와 한진그룹은 6공화국 후반기에 들어와 주식이동 등을 통해 재산 분배를 촉진하는데 이들 두 그룹은 국세청 세무조사의 타깃이 됐다.

6공화국 말기 재벌들의 재산 분할에 대해 빅필수 상공부장관은 이렇게 평가했다. “업종전문화 시책이 재벌기업의 분가를 가속화시켰습니다. 재벌의 분가는 또한 재벌의 세대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전문경영을 수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일본에서처럼 오너가 3대에 가면 소유자체의 개념이 사라질 것입니다.

6공화국 후반에 집중된 재벌의 분가와 계열사 분리 및 합병 작업은 시대의 흐름과 여론의 요구를 재벌이 수용한 것이며, 정부는 92년 정권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신산업정책을 구상, 대재벌정책의 고삐를 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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