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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민권운동가들의 노예 복귀운동에서 출발…축구선수 출신 위아가 대통령
라이베리아, 미국계 흑인 노예들이 건설한 나라
2020. 01. 17 by 김현민 기자

 

라이베리아는 1847년 미국 흑인노예들이 건너가 건국한 나라다. 나라 이름인 라이베리아(Liberia)는 해방, 자유를 뜻하는 라틴어 '리베르'(Liber)에서 나왔다. 자유의 나라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처음 독립한 공화국이다.

언어는 영어(20%)가 공용어이고 16개 토착어가 사용된다. 면적은 111,400로 한반도의 절반이며, 인구는 2012년 기준 420만명이다. 1인당 GDP2010년 기준으로 227달러로 가난하다.

수도 먼로비아(Monrovia)는 미국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재임 1817~1825.)에서 따왔는데,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에 미국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되돌아가는데 적극 협력하고 라이베리아 독립을 지원한 인물이다.

 

라이베리아 /위키피디아
라이베리아 /위키피디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선언을 하기 앞서 미국에선 백인 인권운동가들이 노예 해방은 물론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 1816년 로버트 핀리(Robert Finley)라는 사람이 주동이 되어 미국식민협회(ACS: American Colonization Society)를 창립했다. 이 협회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되돌리자는 운동을 벌였고, 아프리카 서부 후추 해안(Pepper Coast)의 지역, 지금의 라이베리아를 흑인 귀향지로 정했다.

협회는 1821~1822년 사이에 해방 노예를 중심으로 후추 해안으로의 이동 운동을 벌였다. 흑인 운동가들 중에선 미국내에서 노예해방운동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지,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협회는 아프리카 귀향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미국에서 노예로 살기보다 아프리카로 돌아가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흑인들이 협회의 귀국운동에 따랐다.

1847726일 후추해안으로 이주한 흑인들은 독립을 선포했다.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 이전에는 라이베리아를 승인하지 않았다. 1822년에서 미국에서 노예가 해방된 1862년까지 이주한 흑인은 15,000명이었다. 게다가 카리브해에 살던 흑인들도 자유를 찾아 라이베리아로 이주했다.

미국 흑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식민지를 건설하려다가 포기했다.

미국계 흑인들이 노예에서 풀려나 이주해 원주민들에 대해 오히려 갑질을 하는 사태기 빚어졌다. 현재 라이베리아 인구의 90는 골라·크펠레·바사·크루·크란골라족 등의 16개 토착흑인 부족이고, 10만 미국 등지로부터 이주한 흑인이다.

 

라이베리아에선 건국후 해방 노예들이 창당한 트루 휘그당(True Whig Party)의 일당통치가 계속되다가 1980년 쿠데타로 이 정당은 해산된다. 19861월 도에(Doe)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0년 도에가 피살된 뒤에 내전이 전개되다가 19958월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1997719일 대통령 선거에서 7년간의 내전을 주도해온 군벌 출신의 지도자 찰스 테일러가 당선됐다. 2003년 내전 종식되었고, 2005년에 아프리카 최초로 여성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Sirleaf)가 당선되었다. 설리프 대통령은 201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7년 대선에서 축구선수 출신인 조지 웨아(George Weah)가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수도 몬로비아 극빈촌에서 태어나 1990년대 유럽 프로축구 리그에서 맹확약을 펼치며 흑표범이라는 별명을 얻은 축구 스타였다. 그러던 그가 2011년 부통령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2014년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25대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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