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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불가‘ 극언에 브뤼셀 회담 결렬 앞장…여론에 이끌리다 차기 정권으로 이관
노태우 시절③…미숙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2020. 02. 03 by 김현민 기자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고 쌀시장 개방에 대한 연차적인 스케줄이 잡히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과 함께 소용돌이에 빠졌다. 학생운동과 연계한 농민들의 조직적 시위가 격화했고, 농촌 문제가 문민정부의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내용중에서 쌀 시장개방에 대한 논란은 이미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때는 정부 당국자나 정치권 모두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론만 강조했을 뿐 개방의 필요성이나 대비책에 대한 사회적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업보는 다음 정부에 전가될 수밖에 없었다.

199012월초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4년 동안 끌어오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각료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한국대표들은 농산물 개방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우리측 대표는 마지막 회의 석상에서 우리는 받아들일수 없다.(We can not accept it)"란 말을 거침없이 강조했다. 외교 협상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한국대표의 발언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주도하던 미국 대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브뤼셀 회담에서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결렬됐다.

회의가 끝난후 미국 대표가 워싱턴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우리 대표에게 귀뜸했다. 브뤼셀 회담이 끝나고 얼마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EU(유럽연합)와 일본·한국을 지적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 실패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공식외교 채널을 통해 친서를 우리 정부에 보냈다.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받은 청와대는 당황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가 바뀌어 1991년 새해 벽두가 되면서 노 대통령은 긴급경제장관회의를 소집,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는가 하면 발언에 대한 진사 사절을 급파하도록 지시했다.

19911월초 정부는 체코주재 대사에게 제네바로 즉각 가라는 내용의 긴급전문을 보냈다. 그는 바로 제네바의 GATT 본부로 가 미국 대표에게 우리 정부의 공식 사과를 전달했다. 일종의 진사사절이었다.

다자간 협상으로 진행됐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특정국가에 진사사절을 보내면서가지 협상에 나설 정도로 외교에 미숙했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부 내에서조차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특히 쌀시장 개방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말과 91년초의 외교 해프닝은 오히려 통상 창구를 둘러싼 정부 부처간 해묵은 갈등만 노출시켰다. 그 중에서 외무부와 농림수산부의 대립은 더윽 심했다. 외무부는 농림수산부의 협상태도를 두고 가만히 있어도 어치피 결렬될 회의에 우리가 앞장서서 망신만 당하고 더 큰 손해를 보게 됐다외교의 기본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농림수산부측은 회담장에서의 발언문구를 만드는데 외무부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했다며 외무부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어느 쪽이 옳든, 당시 정부가 GATT 협상에 대응하는 공식창구조차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으나 누가 공식창구가 되느냐는 문제로 신경전을 펴야 했고, 이 논란은 농산물시장 개방전략에 대해 정부 내에조차 합의된 견해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노출시켰을 뿐이다.

정부 실무자들은 사석에서 끝까지 농산물을 지키려다가 다른 분야에서 훨씬 큰 손해를 보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하긴 했지만, 공식 상에서는 여전히 쌀시장 개방 절대 불가를 외쳤다. 누구도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드러내 놓고 말할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농민후계자 대표가 제네바 GATT 본부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지방자치제 선거등 정치일정을 눈 앞에 둔 정부나 집권당의 입장에서는 쌀시장 개방 불가피론을 시인할 수 없었다.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 /유튜브(대한뉴스)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 /유튜브

 

우루과이라운드 위협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7월초였다. 농산물 협상에서 타결의 실마리를 찾으면서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전에는 우루과이라운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청와대가 경제부처에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책과 함께 현황과 대책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종합대책을 급조,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된다.

1990717일 노 대통령은 발등의 불인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처하기 위해 경제장관 전원을 참석시킨 가운데 긴급회의를 주재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책이 소홀하다며 이승윤 부총리 등 경제부처 장관들을 질책했다. 국제적으로 우루과이협상이 관심사로 등장한지 3년이 지나도록 태연하기만 하던 정부에 비상이 걸리고 우루과이 리운드 협상의 파장은 6공화국 후반기 우리사회에 찬반 논쟁을 넘어 농민시위 등으로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대책이라는 것도 주먹구구였다. 19908TNC(무역협상위원회) 회의에 앞서 어떤 품목을 지킬 것이냐에 대한 입장을 최종 정리하는 과정에서 관계부처 실무자회의가 열렸다. ·보리는 물론 옥수수··감귤을 포함한 9개 품목을 NTC(비교역 관심사)로 선정해 이는 개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안을 GATT에 제출한다는 것이었다. 품목이 너무 많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골고루 포함시키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게다가 일부 부처 실무진은 자기 부처 장관들의 입장을 지레 짐작해 예컨대 감자는 강원도 출신 조순 부총리, 감귤은 강진성 농림수산부 장관의 눈치를 보다보니 예외품목에 포함됐고, 그러다보니 품목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개방 논쟁이 뜨겁게 가열되던 19909월께였다. 노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농산물 시장이 개방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있느냐며 경제 비서실에 대비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 작업을 이석채 비서관이 맡았다. 김종인 경제수석의 지시에 따라 경제기획원과 농림수산부 관계자들로 특별반이 구성돼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몇 달간의 작업 끝에 우루과이라운드 이후의 농정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이 없는한 우리 농업의 가망성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통일벼의 생산중단 유통구조 개선 등에 관한 획기적인 대책이 포함돼 있었다. 한때 검토됐던 추곡수매 차액보상제도 이 보고서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 자료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후 발표된 농어촌 발전 종합대책의 기초가 된다.

정부가 종합대책을 만들면서 대농민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달아오르는 농민의 반대시위는 강도를 더해갔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농수산물 개방에 집중되면서 금융·지적재산권등 다른 분야는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뒷전이었다.

학자들까지 반대에 앞장섰다. 한국농어촌문제연구소 박진도 소장을 주관으로 벌어진 서명운동에 전국의 대학교수·강사·연구소 박사등 3천명이 참가했고, 변형윤·유인호씨등 유명교수들도 우루과이라운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정치권은 우루과이라운드 반대에 앞장섰고, 행정부 내에서도 개방불가피론 설득에 소극적이었다. 민주자유당 내에서도 우루과이라운드 대책특위가 설립돼 정부에 쌀시장을 개방해서는 안된다고 요구하는 한편 의원들은 제네바로 날아가 이 요구를 전달하기도 했다.

국내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다보니 당시 제네바에서 협상을 하고 있는 외교관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제네바 대사로 부임한 이상옥 대사는 미스터 라이스라는 별명을 들어가면서 쌀 이야기만 하고 돌아다녀야 했다. 그에 이어 제네바 대사로 부임한 박수길 대사는 서울에 와서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가 여론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정부로서도 협상의 타당성이나 타결 가능성을 검토하기보다는 국내 반발을 무마하는 게 급선무였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쌀시장 개방과 등식관계였고,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은 상황에서 6공화국 정부는 쌀개방 문제를 다음 정부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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