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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열전
지정학적 이유로 숱하게 주인 교체…1964년 영국에서 독립
소국탐방③…요한기사단의 거점, 몰타
2019. 04. 12 by 아틀라스

 

몰타(Malta)는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섬나라다. 인구가 43만명이고, 면적은 서울시의 절반쯤인 316에 불과하다.

이 섬을 차지하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는 지정학적 이점이 있기 때문에 늘상 유럽과 아시아의 패권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 섬과 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늘상 강대국이 군침을 흘리던 곳이다. 이곳을 손에 넣어두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내해(內海)인 지중해를 지배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몰타의 지정학적 중요성 /위키피디아
몰타의 지정학적 중요성 /위키피디아

 

몰타는 중세에 유명한 요한 기사단의 나라였다.

병원기사단, 로도스기사단, 몰타기사단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 기사단은 서기 603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하는 기독교 여행자들의 안전과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기사단의 진료소는 예루살렘 내에 세례자 요한의 묘지에 세워졌고, 이를 기념해 요한기사단이라고 했다.

십자군 전쟁 때에는 템플 기사단과 함께 이슬람 세력과 성전을 벌였으나, 십자군이 마지막 거점을 잃게 되자, 그리스의 로도스섬으로 후퇴했다.

로도스 섬으로 후퇴한후 이슬람 선박을 해적질하며, 오스만투르크와 싸웠다. 1522년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슐레이만 1세가 400척의 전함에 10만 병력을 이끌고 로도스를 공격했을 때 7,000명에 불과한 요한 기사단은 6개월간 격렬하게 저항했다. 대부분 전사하고 소수의 기사만 남았을 때 술탄 슐레이만은 그들을 장하게 여겨 목숨은 살려줄테니 나가라고 했다.

 

몰타의 기사단 요새 /위키피디아
몰타의 기사단 요새 /위키피디아

 

그들은 이탈리아 시실리 섬으로 돌아와 새로운 터전을 찾기로 했다.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요한 기사단을 가상히 여겨 이슬람 해적들을 격퇴하고, 오스만투르크의 서진(西進)을 저지하기 위해 지중해 한가운데 몰타섬을 내줄 것을 신성로마제국에게 요청했다.

이때 몰타의 주인은 스페인 아라곤(Aragon)의 영지였다. 아라곤은 카스티야와 합쳐져 스페인이 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스페인 왕을 겸하고 있었다. 카를 5세는 1530년 자신의 영지인 몰타 섬을 기사단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때 조건은 매를 공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사실상 무상증여나 다름 없었다. 이 때부터 나폴레옹 전쟁 때까지 약 300년 가까이 몰타는 요한 기사단의 영토가 되었다.

요한 기사단은 몰타 섬을 거점으로 이슬람 세력을 저지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로도스 시절에 기독교의 첨병이었던 기사단원들은 이슬람 선박과 해적선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해 오스만 투르크의 골치를 엄청나게 썩였다.

오스만투르크의 슐레이만 1세는 15652만명 이상의 군대를 보내 몰타 섬을 공격했지만, 기사단은 세 달에 걸친 공방전에도 버텨냈다. 당시 기사단의 방어병력은 500~600명에 불과했고, 용병을 합쳐도 6,000~8,000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승리로 몰타 기사단의 명성은 전유럽에 떨쳤다. 이 공방전 기사단 가입자도 늘고, 카톨릭국가인 스페인과 교황청이 물심양면으로 원조했다.

 

16세기 몰타 기사단을 재현한 행사(발레타, 몰타) /위키피디아
16세기 몰타 기사단을 재현한 행사(발레타, 몰타) /위키피디아

 

몰타는 BC 1,000년 그리스 상인들이 이 섬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며, BC 300년대 페니키아 식민지였던 카르타고가 점령했고, 카르타고가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이후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 시대에도 해적들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서기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라졌을 때 서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는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반달족, 동고트족, 비잔틴제국(동로마)가 번갈아 이 지중해 고도(孤島)를 차지했고, 동로마 멸망후 아랍권의 손에 떨어졌다.

그후 11세기에 노르만족의 공격을 받아 지배를 받았다. 12세기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점을 둔 카탈류냐의 지배를 받았고, 카탈루냐가 아라곤과 합병하면서 아라곤령이 되었다.

이 아라곤령을 요한기사단이 1530년 인수받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1798년 이집트를 원정갈때까지 지배했다.

 

몰타 /위키피디아
몰타 /위키피디아

 

나폴레옹은 이집트로 원정가는 도중에 몰타섬에 기착해 기사단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면서 기사단을 몰타섬에서 나가라고 했다. 기사단은 교황에 의탁해 로마로 갔다.

나폴레옹의 점령은 잠시였다. 나폴레옹이 몰락한후 1814년 영국군이 시칠리아 왕국의 요청으로 프랑스를 몰아내고 몰타를 점령한다. 이후 몰타는 영국령이 된다. 기사단은 영국에 섬을 내달라고 했지만, 영국은 그들을 내쫓았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 몰타는 영국 해군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몰타섬은 2차 대전 때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중해 해상보급로를 차단하고, 통신망을 감청하는 기지로 활용되었다. 이에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은 몰타 섬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전후에 몰타인들은 독립을 원했다. 1964921일 몰타인들은 영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즉 영연방내 국가로 남는 조건으로 영국과의 협상을 종결했다.

몰타 정부는 1972년에 영연방에서 탈퇴해 자유로운 국가가 되는 조건을 영국과 협상을 벌여 타결했다. 그 조건이 마무리되는 1979331일 몰타는 영연방에서 탈퇴해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정식 명칭은 몰타공화국(Republic of Malta)이며, 몰타·고조(Gozo) 등 큰섬 두 개와 부속도서를 합쳐 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인당 GDP3만 달러 정도.

2004년 EU에 가입한 유로존 국가다.

우리나라는 몰타와 196542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주 이탈리아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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