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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고립된 섬…출생억제 금지하자 인구 팽창, 결국 다른 섬으로 이민
유아살해, 독신강요 등 티코피아 섬의 인구억제
2020. 03. 08 by 이인호 기자

 

우리나라에선 인구증가율이 감소한다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는 인구를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곡물 생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가 늘어나면 굶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때문에 식구가 많은 집안에선 풀칠할 입을 줄이는 게 큰 걱정이다. 고려시대에 나이 여순이 넘으면 장례를 치렀다는 고려장의 설화는 일종의 인구억제책이라 할수 있다.

인류학적으로 인구억제(Population control)를 사용한 곳이 있다. 남태평양의 티코피아(Tikopia)라는 섬이다. 섬의 면적은 5, 여의도의 두배쯤 된다. 인구는 12백명으로 남태평양 군도의 인구밀도보다 높다.

화산이 분출해 생긴 티코피아는 1606년에 포르투갈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고, 현재는 영연방 국가인 솔로몬군도 소속이다. 이 섬은 위치상으로는 멜라네시아인데 주민은 폴리네시아인이고, 언어도 폴리네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공위성으로 본 티코피아섬 /위키피디아
인공위성으로 본 티코피아섬 /위키피디아

 

티코피아 원주민은 크게 두곳에 밀집되어 살고 있으며, 4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개의 마을이 해변에 분산되어 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4개 부족은 각각의 부족장에 의해 통치되고, 남자 가계로 가문이 내려온다.

이 섬은 인근 섬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섬의 주요 업종은 농업이다. 농사를 지어 추수한 식량이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공급받을 곳도 없다. 따라서 주민들은 자연환경이 주는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해왔다.

인류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1600년 경에 주민들은 합의 하에 섬의 돼지들을 전부 도살했다. 인간이 먹을 식량을 돼지가 너무 많이 먹어치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부업으로 어업을 선택했다. 농사를 짓고, 부족한 식재료는 바다에서 구한 것이다.

1928~1929년 사이에 뉴질랜드 인류학자 레이먼드 퍼스(Raymond Firth)가 이 섬에 살면서 주민들의 문화를 연구했다. 그는 이 섬에서 놀랍게도 인구억제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조사해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티코피아에서는 유아살해, 청년의 금욕적 독신생활, 전투, 항해 등을 통해 인구를 억제했다. 피임도구와 약품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 섬은 제로인구성장(zero popultion growth)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유아를 살해하거나 가난한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가뭄이 들면 자살을 택했다. 섬에서 생산되는 식량과 그 식량을 먹을 인구의 균형을 맞추어 온 것이다. 전투와 항해도 젊은이들의 생명을 희생시켜 적절한 인구를 줄이는 방법으로 선택되었다.

생리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2005년 발간한 문명의 붕괴'(Collapse)에서 티코피아 섬이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된 섬으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인구억제 정책을 사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티코피아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티코피아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이 섬에도 서구화의 물결이 불어 닥쳤다. 1858년에 영국 국교회 선교사가 섬에 도착했다. 섬에서는 선교사 입도(入島)를 금지하고 종교적 전환을 인정하지 않다가 1950년대에 영국국교회를 받아들였다.

기독교인들은 비인륜적인 출생억제책을 금지시켰다. 그랬더니 인구가 급증했다. 1920년대 12백명이었던 인구는 1950년대에 18백명으로 팽창했다. 인구를 부양할 식량의 생산이 제한된 곳에서 인구가 팽창하면서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군도의 다른 섬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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