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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교황청 재무담당 은행으로 성장…교황 승계전에 참여해 고배 마시기도
메디치家①…교황과 결탁, 은행 창업자 지오반니
2020. 03. 09 by 김현민 기자

 

돈과 권력, 종교 이 세 가지를 지배했으면 중세유럽에서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할수 있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House of Medici)이 그런 집안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1400년대부터 1748년까지 350년동안 이탈리아 중부 투스카니(Tuscany) 주의 수도 피렌체(Firenze)를 통치하며 네 명의 교황을 배출하고 두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했으며,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은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유명한 미술가를 양성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를 지원하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 문화의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메디치 가문의 조상은 프랑크족 국왕 샤를마뉴 대제(재위 800~814, 또는 카를 대제)의 기사였던 이베라르도(Averardo). 전설에 따르면, 그는 로마로 진군하는 길에 피렌체 북쪽 무젤로 지방에서 흉포한 거인을 만나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격투 도중에 거인이 휘두르는 철퇴에 그의 방패에 여러 군데가 패였다. 샤를마뉴는 아베라르도의 용맹함에 감복해 방패에 패인 자국을 기념해 문장(紋章)에 금색 바탕에 빨간 공, 즉 팔레(palle)를 그려 넣도록 했다. 금색 바탕에 빨간 공(팔레) 다섯개가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메디치 가문은 원래 의사나 약종상이었으며, 약사업을 의미하는 메디코(medico)란 단어에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가문은 어느 시점에 무젤로에서 피렌체로 이주해 정착했으며, 1290년대에 피렌체 공화국 수반인 곤팔로니에레(Gonfaloniere)에 선출되기도 했다. 선대 메디치 가문은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고 겨우 귀족 가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정도였다고 전기작가들은 서술한다.

 

메디치 가문의 문장 /위키피디아
메디치 가문의 문장 /위키피디아

 

메디치 가문에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지오반니 데 메디치(13601429, Giovanni di Bicci de' Medici)가 얼마 받지 못한 상속 재산을 토대로 은행업을 급속히 팽창시키면서부터였다. 그는 친절하고 정직하며 판단력이 예리하고 빠르며, 처세술에 능란한 인물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도 은행 재산을 키웠으며 1421년에는 피렌체의 곤팔로니에레를 맡아 도시국가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의 은행업은 날로 팽창해 그는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피렌체는 도시민 12만명에 농촌인구를 포함해 인구 30만으로, 유럽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였다. 피렌체는 1348년 흑사병(페스트)가 돌아 도시인구가 절반이 줄기도 했지만 양모업을 중심으로 수공업 길드가 형성되어 남유럽의 수공업 중심지로 부상했다. 피렌체에는 메디치 가문에 앞서 몇몇 은행 가문들이 있었지만 유럽 왕가에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이는 바람에 파산지경에 놓여 있었다.

지오반니에 앞서 가문에서 금융업에 뛰어든 사람은 사촌인 비에리였다. 비에리는 베네치아와 제노바, 나폴리, 가에타에도 지점을 두었는데, 지오반니는 사촌 비에리의 견습사원으로 들어가 은행업을 배웠다.

피렌체는 알비찌 가문(Albizzi family)의 지배 하에 있었다. 알비찌 가문은 강압적으로 피렌체를 통치했다. 반대자는 체포, 추방, 재산몰수, 심지어 사형에 처했다. 하지만 알비찌의 강압통치는 피렌체의 영토를 확대시키는데 기여했다. 피렌체는 피스토이아와 볼테라 지방을 장악하고 피사(Pisa) 항을 얻었으며 제노바에게서 리보르노 지방을 매입해 항구를 열었다.

피렌체는 항구를 통해 국제교역에 나섰고, 도시의 은행 조합은 플로린(Florin)이라는 금화를 제작해 유통시켰다. 플로린 금화는 유럽 전역에 통용되는 국제통화였고, 피렌체 은행들은 전유럽을 상대로 하는 국제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1422년에 피렌체에는 72명의 은행가와 어음중개인이 도심을 차지하며 금융가를 형성했고, 그중 지오반니의 은행이 가장 번성했다.

지오반니는 모직 수공업장 두 곳을 소유하면서 주요 사업으로 금융업을 경영했다. 지오반니를 결정적으로 성공하게 한 요인은 모직 거래를 중매한 은행업이 아니라, 교황과의 유착 관계였다.

 

1493년의 피렌체 /위키피디아
1493년의 피렌체 /위키피디아

 

지오반니의 은행은 교황의 은행으로 확고한 위치를 잡았다. 앞서 알베르티, 리치, 스피니 등 피렌체의 은행 가문들이 교황청의 재정담당을 맡고 있었지만 메디치가는 교황청이 필요로 하는 돈을 제때 공급하면서 신뢰를 얻어 다른 가문들을 밀어냈다. 당시 교황청은 부패했는데, 교황직 매수자금도 메디치 은행에서 나갔다는 설도 있다.

그 시절, 교회는 분열되어 있었다. 당시에 프랑스 아비뇽과 로마에 두 교황이 대립했고, 이 시대를 대분열 시대’(1378~1417) 고 일컫는다. 1409년 피사에서 열린 대공의회는 이비뇽 교황인 베네딕투스 13세와 로마교황인 그리고리우스 12세를 모두 폐위하고 알렉산드르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아비뇽과 로마의 두 교황은 공의회 결의를 수락하지 않으면서 세명의 교황이 웅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알렉산드르는 곧바로 죽고 그 자리를 요한 23세가 이어받았다.

요한 23세는 발다사레 코싸(Baldassarre Cossa)라는 인물이었는데, 파렴치하고 돈과 여자를 좋아했다. 지오반니는 이런 사람에게 도박을 걸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지기스문트(Sigismund) 황제가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1414년 독일 콘스탄츠(Konstanz)에서 공의회 개최를 주도했다. 요한 23세는 콘스탄츠로 가는 길에 메디치 은행 대표를 재정 자문으로 동반했다.

공의회가 열리자마자 요한 23세는 탄핵을 받게 되었다. 이유는 이단, 성직 매매, 독직의 혐의였다. 게다가 전임 알렉산드르 5세 교황을 독살한 혐의, 볼로냐에서 2백명 이상의 여인들을 유혹한 죄를 지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요한 23세는 평복으로 갈아 입고 석궁 하나를 들고 간신히 콘스탄츠를 도망쳤으나 체포되어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에 투옥되었다. 콘스탄츠 공의회는 요한 23세 뿐 아니라 다른 교황들를 모두 폐위시키고 마르티누수 5(Martinus V)를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하고 교회를 통일했다.

 

지오반니 데 메디치 /위키피디아
지오반니 데 메디치 /위키피디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지오반니가 밀었던 요한 23세가 폐위되자 메디치의 은행업은 쇠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지오반니는 사악한 전임교황에 대한 의리를 버리지 않았다. 3년간 감옥에 갇혔던 요한 23세가 석방되자 지오반니는 그를 피렌체로 데려와 지낼 거처를 마련해 주고, 새 교황 마르티누스에게 부탁해 추기경 자리 하나를 얻어 노후를 보내게 했다.

퇴위한 교황에 대한 의리를 지속하는 것은 신임 교황에 대한 신임을 잃는 행위였다. 새 교황도 메디치와의 거래를 완전히 끊지 못했지만 메디치 은행은 교황청 재정에 대한 독점권을 잃게 되었다. 그 틈을 비집고 피렌체의 경쟁자 스피니 가문이 파고들었다.

그러던 중 지오반니에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1420년경에 스피니 가문은 사업에 실패해 갑작스럽게 파산하게 된다. 그는 다시 교황청 재정업무를 전담하게 되었고, 유럽에서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은행업을 영위하게 된다.

 

메디치 은행은 15세기에 유럽에서 최고의 은행이었고, 메디치 가문을 유럽 최고 부자로 만들었다. 메디치 은행은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했고, 피렌체 공화국의 비공식 재무조직으로 자리잡았다. 은행 역사상 복식 부기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메디치 은행은 오늘날 시중은행처럼 일반인을 고객으로 하지 않았다. 교회 성직자와 귀족, 도시국가 등 상류의 부자들만 상대로 한 머천트 뱅크(merchant bank)의 효시였다. 부자들을 상대로 어음증서를 거래하고 돈을 빌려주었다.

1429년 지오반니가 사망했을 때, 당시 피렌체 세무보고서에서 최고의 부자로 기록되었다. 그는 엄청난 재산을 장남 코지모(Cosimo de' Medici)에게 물려 주었다. 지오반니가 아들들에게 물려준 재산은 유럽 최상위권이었다.

그의 아들 코지모는 상속받은 재산을 활용해 피렌체의 국부가 되어 알비찌 가문을 누르고 피렌체의 사실상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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