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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열전
한때 1인당 GDP 5만불의 부자 나라…인광석 바닥나며 난민 수용으로 연명
소국탐방④…저주받은 낙원, 나우루
2019. 04. 13 by 아틀라스

 

남태평양 적도 바로 남쪽에 나우루라는 나라가 있다. 공식 국가명칭은 나우루공화국(Republic of Nauru)이다. 면적은 21로 서울 용산구와 도봉구 정도로, 바티칸 시국, 모나코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나라다. 단일 섬으로 되어 있다. 인구는 201811,200.

이 나라 국기는 적도를 표시하는 노란선에 나우루를 표시하는 별이 그려져 있고, 별에는 12갈래의 빛이 있는데, 12개 부족을 의미한다.

 

나우루 국기 /위키피디아
나우루 국기 /위키피디아

 

남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와 폴리네시아인들이 살던 이 곳이 서양에 알려진 것은 1798년에 영국인 탐험가 존 피언 선장(John Fearn)에 의해서다. 존 피언은 이 섬을 쾌적한 섬’(Pleasant Island)이라 명명했다. 그후 고래잡이 배나 화물선이 물을 구하러 이 섬에 들렀다. 서양의 선원들은 물과 식량을 얻는 대가로 토착인들에게 술과 무기를 공급했다.

1878년부터 10년간 이 좁은 섬에 부족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으로 500명이나 사망했다.

곧이어 1888년 독일이 점령하고, 1900년경 영국의 지질탐사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Fuller Ellis)가 이 섬의 최대 자원인 양질의 인광석을 발견해 1906년에 영·독 합자회사에 의해 채굴이 시작되었다. 노천 채굴이어서 캐기도 쉬웠다. 크레인으로 파내기만 하면 되었다.

1차 대전 직후 1914년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가 이 독일령을 점령해 위임통치를 하다가 2차 대전때 일본군이 점령했다. 전후 1947년에 영국·호주·뉴질랜드 3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가 1968131일에 독립했다.

 

나우루 위치 /위키피디아
나우루 위치 /위키피디아

 

나우루는 독립하면서 인광석 채굴권을 넘겨받았다. 독립직후 1970~80년대에 나우루는 인광석을 팔아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1인당 GDP5만 달러에 이르러, 석유부국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소득이 높았다. 당시 통치자들은 인광석을 판 돈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져 1만여명의 백성들이 떵떵거리며 살았다.

나우루인들은 너도 나도 각종 가전제품에 고가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기껏해야 최대길이 18km에 간선도로 하나밖에 없는 섬에 여객기만 9, 주유소가 29가 있었고,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있는 마트에 차를 몰고 갔다. 인광석 캐는 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겼고, 빨래나 청소도 외국인 하녀를 썼다. 먹고 마시기만 하다보니 비만 인구도 늘었다. 그야말로 지상 천국이었다.

 

나우루 전경 /위키피디아
나우루 전경 /위키피디아

 

하지만 인광석은 하염없이 있는 게 아니었다. 1990년대 들어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바닷가에 어항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국민들이 고기잡이 하는 방법도 잃어버렸고, 일하기도 싫었다.

나우루 정부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 광산 채굴량을 줄이고 해외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에 나섰지만, 국내 소비를 감당할수 없었다. 국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나우루의 인광석 광산. 다 캐고 석회석 암반이 드러났다. /위키피디아
나우루의 인광석 광산. 다 캐고 석회석 암반이 드러났다. /위키피디아

 

인광석이 고갈되자, 나우루는 조세피난처의 사업을 벌이고, 돈만 주면 여권을 내주는 사업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해외 마피아들이 국적을 얻어 합법적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테러리스트들도 나우루 국적으로 버젓이 활동하게 되었다. 전세계의 검은 돈도 나우루로 들어왔다. 1990년대엔 그나마 인광석이 조금은 있었고, 해외에 투자한 부동산이 있어 그럭저럭 부유한 나라의 축에 끼어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나우루의 몰락은 눈에 띠게 나타났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자 나우루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었다. 나우루 은행에 예치된 예금이 대량으로 인출되고, 국제적으로 경제 제재를 받게 되었다. 해외에서의 송금도 막혔다. 순식간에 최빈국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우루가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난민 수용이었다. 이웃 강국인 호주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지의 난민을 받아 나우루로 보냈다. 대신에 나우루는 호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그런데 난민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난민들은 기초 생활을 하기 위해 나우루 정부에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나우루 정부가 모른척 했다. 호주가 주는 돈으로 난민을 넉넉히 지원하기 모자랐기 때문이다. 섬 분위기가 험악해 졌다. 좁은 섬에 원주민도 살기 힘든데 난민 숫자가 더 많아졌으니, 문제가 터지지 않을수 없었다.

호주의 인권단체와 기자들이 입국을 요구했지만, 나우루 정부는 입국을 거절했다. 그러다 20041월에 나우루에 입국이 허용되었을 때 그들이 본 것은 대통령 청사가 불타고 있는 장면이었다. 2013년에도 난민수용센터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1980년대에 흔하던 자가용 비행기는 사라졌다. 200512, 섬과 바깥을 잇는 항공사였던 나우루 항공이 운행을 중단했고, 20061월부터 9월까지 나우루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200610, 중국의 재정지원을 받아 아워 항공이란 이름으로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나우루의 비만인구 비율이 세계서 가장 높다. /위키피디아
나우루의 비만인구 비율이 세계서 가장 높다. /위키피디아

 

한때 부자국의 흔적은 국민들의 비만에 남아 있다. 나우루는 세계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성인의 90%BMI 지수가 평균 이상이다. 또 당뇨병 발병률이 40%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신장 질환과 심장병도 흔하다.

나우루는 대통령 중심제 나라이며, 국무총리가 없다. 대통령은 18명의 호선으로 진출한다. 의회는 단원제다. 군대는 없고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를 담당한다. 1999UN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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