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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세계
인류 역사에 권력이자 경제력, 생활의 도구…근대 세계사는 철의 전쟁
철강산업은 국력의 원천…산업의 근간
2019. 03. 01 by 아틀라스

 

경주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 가운데 덩이쇠를 흔히 볼수 있다. 고대 임금이나 귀족이 죽으면 덩이쇠(鐵鋌)를 함께 묻었는데, 그것은 바로 화폐였기 때문이다.

()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금속이다. 한강철교, 남산 중계탑, 지하철, 선박은 물론 아파트와 고층건물도 그 근간에는 철재로 이뤄져 있다. 너무나 흔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그 효용성을 잊기 쉬운 것도 또한 철이기도 하다.

쇠는 인류의 오랜 역사 과정에서 곧 권력이요, 경제력이요, 생활의 도구였다. 고대 중동의 히타이트가 철기로 문명을 제패하고,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원동력은 가야의 쇠를 손에 넣어 군사력을 키우고 생산력을 높인 덕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철은 국제정치의 주요 현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에 주요국을 상대로 철과 알루미늄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쇠락하는 미국 철강산업을 되살린다는 목표보다는 국가안보를 내세웠다. 철강은 탱크, 대포, 소총, 전함을 만드는 원재료이고, 알루미늄은 항공기의 소재다. 지금처럼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을 허용할 경우 미국의 금속산업이 붕괴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 무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유럽이나 일본은 미국의 주장이 엉뚱하다고 반박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주장은 오히려 솔직했다. 세계 패권을 쥔 나라가 철강재를 자체로 만들지 못한다면 전쟁을 할수 없다는 사실을 펜타곤이 인정한 것이다.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유럽연합(EU)도 원래는 철강산업에서 출발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독일의 철강 및 석탄 산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지 못하자 유럽 국가들이 철강과 석탄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들었고, 이 조직이 50여년간 발전되면서 오늘날의 EU가 탄생한 것이다.

근세 이후 철은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철이 곧 국가였다. 철을 많이 생산한 나라가 강대국이었으며, 철 광산과 석탄 산지를 뺏기 위한 공업국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엔 철강산업이 있다. 보불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알사스-로렌 지방을 독일에게 할양했다. 독일이 알사스-로렌 지방을 빼앗은 것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과 인접한 루르지방의 철강산지를 결합해 최대의 철강국가로 부상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독일어를 사용하던 알사스-로렌 지방 학교에서는 더 이상 프랑스어 수업을 할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17세기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유럽 대륙에서 지진아였다. 앞서 산업혁명을 치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공업국으로 변신해 팽창을 거듭하고 있을 때 러시아는 우랄 산맥 서쪽의 봉건 농업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1697년 왕위를 계승한 표트르 대제는 뒤쳐진 러시아를 서구화하는 첫걸음으로 철강산업을 육성했다. 러시아 차르는 산업화를 이룩하기 위해 우랄 산맥 일대의 철강 산업을 일으켰고, 러시아는 대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철강산업의 중심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철강생산은 전쟁 전후에 4배나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1차 대전 때의 철강업자가 전쟁이 끝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이 바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다.

군국주의 시절에 일본도 철강산업을 중시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철강산업이 취약했던 일본은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견제로 철강 수입이 중단되는 변고를 겪게 되었다. 그후 일본은 일본제철을 비롯해 철강 산업을 육성시켰고, 일본군은 이들 공장에서 만들어진 대포와 총으로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2차 대전에 승리한 미국이 일본에서 한 조치는 철강산업을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철강회사를 전쟁 주범으로 일본 제일의 철강회사 일본제철을 야와타와 후지로 분할했다. 철강회사를 눌러 군사 대국화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핵무기의 원료인 우랴늄, 항공기의 원료인 알루미늄이 과거 대포와 탱크의 원재자였던 철강을 대체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로 이끌었던 유에스 스틸은 전쟁 직후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부상했지만, 1970년대에 세계 14위로 주저앉았다.

이제 철강산업이 더 이상 전쟁을 위한 산업이 아니며, 대형 벌크선이 개발되면서 양질의 대규모 석탄 및 철광산지가 없는 나라에서도 철강산업이 발전할 토대가 형성됐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철강산업은 산업의 기초소재로 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철강산업이 경제개발과 함께 출발했다. 오늘날 우리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전자, 중화학공업이 세계적 굴지의 산업으로 성장한데는 철강산업이 큰 버팀목 역할을 했음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다.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된 삼화제철소 고로. 1993년 포스코가 인수해 원형을 복원한 뒤 2003년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된 삼화제철소 고로. 1993년 포스코가 인수해 원형을 복원한 뒤 2003년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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