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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상황을 페스트 창궐 상황에 대입…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의지
전염병과 전쟁을 동일하게 그린 카뮈의 ‘페스트’
2020. 04. 25 by 박차영 기자

 

경험하지 못한 일을 소설로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페스트라는 역병의 펜데믹을 겪어보지 않고서 소설 <페스트>(La Peste)를 썼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었다. 그가 전쟁 기간에 겪은 경험을 역병 창궐의 가상의 상황에 대입해 1947<페스트>를 출간했다.

1939년 아돌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카뮈의 조국 프랑스는 독일군의 군화에 짖밟힌다. 카뮈는 직가수첩에 이렇게 썼다.

전쟁이 터졌다. 어디에 전쟁이 있는가. 마땅히 믿어야 할 소식들과 마땅히 읽어야 할 벽보들 이외에 그 부조리한 사건의 징조들을 대체 어디서 발견할수 있었단 말인가.……

그가 작가수첩에 쓴 상황은 소설 <페스트>에 그대로 녹아 있다. <페스트> 1부에 페스트임을 단언하지 못한 채 부조리한 사건을 불신하거나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부조리한 분위기는 전쟁 발발 초기의 상황과 유사하다. 페스트라는 상황이 2차 대전의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Dr. Bernard Rieux)가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페스트가 기승을 부릴 동안에는 전기를 내내 제한할 모양이지?“ ”아마 그럴 거예요

페스트와 전기공급은 전혀 상관이 없다. 2차 대전중에 전력시설이 공습으로 파괴되어 전기 공급이 제한된 사실을 카뮈가 페스트라는 상황에 대입한 것이다.

카뮈는 전쟁이 시작되자 신문기자를 했다. 그 인물이 페스트에서 아내를 찾아 탈출을 추구하는 레이몽 랑베르(Raymond Rambert)로 등장한다.

 

알제리의 도시 오랑 전경 /위키피디아
알제리의 도시 오랑 전경 /위키피디아

 

배경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Oran)시다. 오랑시의 현재 인구는 150만이고 외곽지역까지 합치면 350만 정도다. 아마 카뮈가 소설을 쓸 당시에 오랑의 인구는 지금의 절반쯤 되었을 것이다.

실제, 1940년대에 알제리에는 페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카뮈는 1940년대 어느해, 416일에 알제리 오랑에 죽은 쥐 한마리가 나타나고, 페스트가 발생한 것으로 가정하고 소설을 시작했다.

의사 리유는 친구 타루와 협력해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페스트 침략군에 저항한다. 자원봉사단은 일종의 레지스탕스다.

역병 창궐이라는 상황, 즉 전쟁의 상황에서 인간군상들의 내면적 모습이 드러난다.

소설 '페스트' 초판 /위키피디아
소설 '페스트' 초판 /위키피디아

 

파눌루(Paneloux) 신부는 설교를 통해 페스트 재앙의 상황을 신의 징벌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던 신부도 리유와 타루의 헌신적인 노력을 보면서 자원봉사대에 참가한다. 신부는 재앙과의 싸움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그도 결국 페스트에 걸려 죽고 만다.

리유의 친구 잔 타루(Jean Tarrou)도 마지막에 페스트로 쓰러진다. 페스트의 기세가 꺾이고 조만간 종식될 조짐을 보이던 때 타루는 역병에 걸리고 만다. 타루도 끝내 사망하고 리유는 그가 남긴 기록과 함께 이 질병과 싸운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려고 결심한다.

해피엔딩하는 유일한 인물은 신문기자 랑베르다.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봉쇄가 풀리던 날 그의 아내와 만나 뜨겁게 포옹한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어린아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대목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모두 출연해 어린아아의 죽음을 목격한다. 의사 카스텔이 만든 혈청을 어린아이에게 시험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회생하지 못했다. 아이의 연약한 뼈대가 운명과의 싸움에서 꺾이고, 신열의 바람에 삐걱거리는가 하면 돌풍이 물러가면서 그 아이를 축축한 모래사장에 던져버렸다. 아이의 몸이 약간 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어린애는 몸을 바싹 오그리고 전신을 태워버릴듯한 불꽃의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 어린아이는 한마디의 비명,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로운 불협화음의 항의로 방안을 가득채우고 숨졌다. 이 어린아이는 대체 무엇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카뮈는 기독교에 저항했다. 파눌루 신부는 격렬한 어조로 내뱉는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페스트는 리유와 타루를 중심으로 레지스탕스들의 저항운동에 의해 종식되지 않았다. 어느날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소설은 다만 인간들이 연대를 하면서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부조리한 재앙에 대항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페스트, 즉 전쟁의 상황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 아무런 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 봉쇄가 풀렸을 때의 희망과 기쁨을 그렸다. 즉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 싸우는 인류의 연대가 행복을 향한 의지라는 것이다.

 

카뮈는 <페스트> 마지막 문장에서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리유의 말로 끝을 맺었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와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잇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항상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수도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 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 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잇었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위키피디아
알베르 카뮈 /위키피디아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시기에 맞물려 재조명받고 있다. 그가 설정한 페스트의 상황들은 작금의 코로나 상황과 일치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일부 대목에선 전염병의 상황과 전쟁의 상황을 지나치게 동일시한 것 같다. 예컨대 봉쇄가 풀리는날 시민들이 환호를 하며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2차 대전 종전 후의 모습이지 전염병 종식 때의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의 소설은 전염병이 전쟁의 상황과 다름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수만명이 죽는 상황은 전쟁 이외에는 있을수 없다. 전쟁이 집단적 통제를 요구하듯이 전염병 상황도 국가와 정부기구의 통제를 유발한다.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초래한다. 정부는 명령하고, 국민이나 시민은 복종해야 한다. 경계망을 탈출하려다 총을 맞는 소설의 상황과 국경통제라는 코로나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

 

2020년초, 지구촌은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 전쟁이다. 실제의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만, 전연병과의 전쟁은 모두가 패자다. 다만 최선으로 방어를 한 자와 최악으로 방어를 한 자로 나뉜다. 지도자의 평가도 거기서 구분된다. 초기에 집단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었지만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조기에 극복한 한국의 지도자는 총선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이에 비해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가진 미국의 지도자는 수만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올해 연말 선거에서 그나라 지도자는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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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호 2022-05-16 21:53:5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