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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올림픽, 타이타닉, 브리타닉호에서 생존…타이타닉에선 아기 구해
세 번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은 바이올릿 제솝
2020. 05. 01 by 김현민 기자

 

바이올릿 제솝(Violet Jessop, 1887~1971)이라는 아르헨티나 여성이 있다. 그녀는 억세게도 운이 좋은 여성이다.

그녀는 미쓰 불침몰’(Miss Unsinkable)라 불린다. 그녀가 탄 배가 세 번이나 침몰했지만, 그때마다 살아났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비올렛 제솝 /위키피디아
바이올릿 제솝 /위키피디아

 

첫 번째는 영국 여객선 올림픽호(RMS Olympic)에서 여승무원으로 근무하던 1911920, 올림픽호가 영국 해군의 순양함 호크호(HMS Hawke)와 충돌해 선수 우현에 손상이 발생했다. 다행히 배는 침몰하지 않고 6주간의 수리를 거쳐 운항을 재개했다.

두 번째는 그 유명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RMS Titanic)에서였다. 제솝은 당시 그 배에 여승무원으로 일했는데, 타이타닉호는 출항 4일째인 1912414일 대서양상에서 빙산에 좌초되어 2시간 40분만에 침몰했다. 그녀는 침몰당시 갑판에 있었다. 그녀는 갑판에서 비영어권 승객들에게 탈출 방법을 도왔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구명보트를 발견하고 그위에 올라탔다. 제솝은 구명보트에 올라 어린아기를 받아 보호하던 중 카파시아호를 만나 구조되었다. 그는 타이타닉호의 생존인물 710명중 하나가 기록되었다.

세 번째는 브리타닉호(HMHS Britannic)였다. 이 배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병원선으로 동원되었다. 제솝은 당시 영국 적십자에 근무하면서 승무원겸 간호사로 근무했다. 19161121일 오전 812, 브리타닉호는 그리스 에게해의 케이스 섬을 지나던중 갑자기 우현에서 커다란 섬광과 함께 폭발음이 들렸다. 배수량 48,158톤의 거대한 선박은 엄청나게 요동쳤고 탑승한 부상병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배는 침몰하고 탑승인원 1,066명 가운데 30명이 사망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생존했다.

 

올림픽호 /위키피디아
올림픽호 /위키피디아

 

제솝이 탄 세척의 배는 모두 영국 화이트스타라인(White Star Line)이 선주였다.

화이트스타라인은 대서양을 운항하기 위해 올림픽급으로 세 척의 선박을 발주했다. 그 첫 번째가 올림픽호, 두 번째가 타이타닉호, 세 번째가 브리타닉호였다. 세척은 모두 할랜드 앤 울프라는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다.

화이트스타라인의 첫 번째 올림픽급 선박인 올림픽호는 1911614일 영국 사우스햄프턴을 떠나 뉴욕까지 무난하게 첫 항해를 했다. 그러나 5번째 항해를 하던 920일 영국 해군의 순양함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듬해 두 번째로 운항한 올림픽급 여객선이 타이타닉이다. 타이타닉은 출항 5일후에 침몰해 탑승인원의 70%1,514명이 사망하는 대 참사가 빚어졌다.

 

타이타닉호 /위키피디아
타이타닉호 /위키피디아

 

세 번째 배가 브리타닉이었다. 원래 이름은 자이간틱(Gigantic)이였지만 타이타닉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름을 브리타닉으로 바꾸었다. 브리타닉호는 자매함인 올림픽호와 타이타닉호보다 늦게 진수 되었는데 타이타닉의 침몰 이후 타이타닉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밀격벽 및 다른 부분에 설계를 바꾸어야 했기에 진수는 더 늦어졌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브리타닉은 영국 해군에 징발되어 병원선으로 개조되었다. 그 후 몇 번의 항해를 하였고 원인 불명의 폭발로 에게 해에서 침몰했다. 브리타닉호의 침몰 원인이 독일의 유보트(U-Boat)의 공격인지, 기뢰에 의한 폭발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독일의 공격에 의한 것임은 분명했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브리타닉은 급속히 가라앉았다. 선장 존 코로퍼(John Cropper)는 인근 케오스(Keos) 섬까지 항해한 뒤 배를 좌초시켜 침몰을 모면하려 했지만 결국 배를 포기하고, 승객들에게 하선을 명령했다. 환자와 의료인이 대부분이고, 승객들은 승조원들의 지휘로 일사불란하게 탈출했다.

브리타닉은 사고후 55분 만에 침몰했다. 승객 1,066명은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하지만 구명정이 내려갈 때까지 배가 이동했고, 이로 인해 구명정이 프로펠러 날에 산산조각이 나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4년 전 타이타닉의 침몰 때보다는 많은 사람이 생존할수 있었다. 타이타닉 침몰때의 뼈아픈 경험을 살려 구명정을 충분히 구비했기 때문이었다. 브리타닉호는 타이타닉호처럼 두 동강 나지 않았다. 1986년 에게해에서 브리타닉의 잔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브리타닉호 /위키피디아
브리타닉호 /위키피디아

 

제솝은 세 번의 사고를 당한 이후에도 화이트스타라인에 근무하다가 레드스타라인, 로열메일라인등 다른 해운회사에서 근무했다. 잠시 결혼도 했다고 한다. 그는 62세가 되던 1950년 은퇴해 영국의 한 마을에서 생활했으며, 1971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83세였다.

제솝은 어느 비바람치는 날,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는데, 그 여성은 자신을 소개하며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당신이 구한 바로 그 아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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