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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과 전쟁
전비확충 위해 정부 지출 팽창…완전고용 달성, 산업시설 풀가동
실패한 뉴딜정책⑤…2차대전 발발에 대공황 종식
2020. 05. 15 by 김현민 기자

 

불행하게도 1929~1939년 사이 10년에 걸쳐 진행된 세계 대공황이 끝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였다. 선진국 간의 전면적인 전쟁은 정부의 지출을 극대로 증가시켰고, 군수산업이 모든 산업 수요를 빨아 당겼다. 교전국에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모든 사람이 생산활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장기불황은 마침내 종식되었다. 이에 대해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공황이 2차 대전을 유발했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2008~2009년 세계경제위기는 전쟁을 치르지 않고 각국의 금융정책으로 극복되었다. 전쟁이라는 경제외적 상황이 존 메이너드 캐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주장한 유효수요 확대의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지구촌엔 곳곳에서 전운이 감돌았다. 1935년 이탈리아는 재차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1936~1939년엔 스페인에선 내전이 벌어졌다. 1937년엔 일본이 베이징을 점령하면서 중일전쟁이 확전되고 1938년 독일 나치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곧이어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고 193910월 폴란드에 선전포고하면서 세계는 둘로 갈라져 2차 대전에 돌입하게 된다.

유럽 각국은 1930년대 후반기에 군비를 증액했다. 독일은 1936년부터 군비확장 4개년 계획을 수립했고, 영국은 1937년부터 5년 계획으로 군비 확장에 돌입했다. 일본은 중일전쟁을 치른 1938년에 완전고용을 실현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8년말에 조용히 상무장관을 해리 홉킨스(Harry Hopkins)로 교체해 2기 뉴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대기업들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대기업의 지지가 필수적이었다. 연방정부는 미배당 기업이익에 대한 세금을 무효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기업활동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부자와 대기업을 자극할 새로운 개혁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았다.

1938년말부터 미국 경제는 서서히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 그해 여름 2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연말에 17%로 떨어졌고 이듬해 14%로 하락했다. 유럽에서 전쟁물자 수요가 몰려오면서 내구재 생산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중인 1942년 여성 근로자가 작업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2차 대전중인 1942년 여성 근로자가 작업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1차 대전 때와 달리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전환했다. 루스벨트는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일본에 대해 석유금수조치를 내렸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의회에 특별회기를 요청해 중립국 법을 폐기했다. 곧이어 미국은 유럽전쟁에 참여하고 1941년 진주만 피습 이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태평양전쟁에 돌입했다.

 

1939년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미 연준은 대대적으로 통화공급을 늘렸다. 193912월부터 194012월까지 달러 공급을 15.2% 늘렸고, 이듬해에 다시 13.9%, 그 다음해에 연속으로 26.2%, 24.4%로 팽창시켰다. 193912월부터 194312월까지 화폐공급량은 80% 가까이 늘어났다.

연준의 달러 공급 확대는 연방정부의 부채를 상환해 주었다. 루스벨트 정부는 막대한 전비 조달을 위해 세금을 증액해야 했는데, 연준이 연방정부의 부채를 많이 덜어 주었기 때문에 세금 증액에 따른 압박을 크게 완화시킬수 있었다.

또 법을 바꿔 연준 소속 은행들에게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단기국채를 매입할수 있게 했다. 단기채권은 이자가 붙기 때문에 현금보다 수익성이 높았다. 연준은 재무부와 합의해 90일 만기 단기국채(TB)의 수익률을 0.375%를 유지하도록 해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채권을 사들였다. 전쟁 기간에 중앙은행이 달러 공급을 늘리고 국채를 발행하고 세금을 올린데 힘입어 루스벨트 정부는 든든한 재정적 실탄을 가지고 전쟁에 참여했다.

 

미국의 통화공급량 추이 /위키피디아
미국의 통화공급량 추이 /위키피디아

 

2차 대전 기간에 미군 병사들은 유럽 전선에서, 태평양 전선에서 죽음과 맞싸워야 했지만 미국 시민들은 초유의 번영을 구가했다. 미국 실직자는 1940812만명에서 1941556만명, 1942266만명, 1943107만명으로 빠르게 줄었다. 군수물자 생산에 인력이 모자라 여성들도 참여했다.

모든 생산이 통제되었다. 기업들은 연방정부로부터 군수물자를 생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대부분의 물자가 전쟁터로 보내졌다. 민수용의 생산은 제한되었다. 역설적으로, 전쟁은 루스벨트가 1기 뉴딜 정책에서 시도하다 실패했던 계획경제, 통제경제를 실현하게 했다.

 

1929년에서 1939년까지 전개된 대공황은 세계 자본주의 꽃으로 성장하던 미국 경제를 완전하게 후퇴시켰다. 가진자들의 탐욕과 무절제가 비판되었고, 가난한자들의 분노가 솟구친 기간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사회적 약자의 분노에 바탕을 두어 자본주의 경제를 수술하기기 위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1933년에서 1937년까지 실시된 제1, 2기 뉴딜정책은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실패했다. 그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 2차 대전이었다. 미국 경제는 1940~1941년에 대공황에서 회복되기 시작해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의 주도국으로 부상했다.

 

1935년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 /위키피디아
1935년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 /위키피디아

 

그러면 전쟁이 미국 경제를 공황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게 한 비결은 무엇일까.

대공황 이전에 경제학계를 지배한 이론은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 시장경제 원리였다. 상품 공급자와 수요자가 시장에서 만나 가격이 형성되고, 시장 가격에 의해 기업의 최대이윤과 소비자의 최대효용이 추구된다. 대공황 초기에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맞아 공급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는 수급관계 조정에 매달렸다. 관세율을 올리고 생산을 제한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정책이 이런 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한 조치들이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기 정책들이 실패한 것도 이 이론이 갖는 한계 때문이었다.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1936<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경기침체기에 완전고용을 이루는 방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전개했다. 그는 총수요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지출 등의 총수요가 줄어 들었을 때 경기가 후퇴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불경기에 소비와 기업 투자가 위축되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적극 늘려야 한다고 케인즈는 주장했다.

1834528일 케인즈는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루스벨트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케인즈는 루스벨트에세 재정확대를 취하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지론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케인즈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고, 거시경제학이란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미국 실업자 수 추이 /위키피디아
미국 실업자 수 추이 /위키피디아

 

전운이 감돌면서 루스벨트 정부는 케인즈가 일찍이 요청했던 총수요 확장 정책을 이행하게 되었다.

미국이 군비가 빠르게 증가했다. 연방정부의 지출액은 1940150억 달러에서 1941362억 달러로 한해 사이에 2.4배 증가했고, 1942년에 989억 달러, 1943년에 1,478억 달러로 급팽창했다. 4년 사이에 연방정부의 지출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실업률은 194014.6%에서 19431.9%로 떨어져 완전고용이 달성되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케인즈 이론을 입증한 것이다.

2차 대전 후에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안나 슈워츠(Anna J. Schwartz)와 같은 화폐경제학자들은 대공황이 은행 위기에서 출발했으며, 미국의 은행 3분의1이 도산하고 통화량이 35%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황기에 통화량을 늘려 수습할 것을 제안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시의 벤 버냉키(Ben Bernanke), 2020년 코로나 사태에서의 제롬 파월(Jerome Powell) 등 연준 의장들이 취한 파격적인 금융완화정책은 화폐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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