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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1등공신, 청해 이씨 시조…이성계 도와 역성혁명 지원
조선의 여진족 개국공신 이지란…이성계의 의제
2020. 05. 22 by 김현민 기자

 

여진족 출신인 이지란(李之蘭, 1331~ 1402)은 한국 역사드라마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지란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의형제를 맺어 이씨 성을 받아 청해(青海) 이씨의 시조가 된다. 이지란의 여진족 이름은 퉁두란(佟豆蘭)으로, 성은 퉁()이고, 이름은 두란(쿠란투란티무르, 古倫豆蘭帖木兒).

 

이성계와 이지란이 의형제가 된 일화는 흥미롭다. 이성계의 선조는 고려에서 쫓겨나 몽골()의 지배 하에 있던 함경도 지방에서 장수로 활약했다. 이성계는 어느날 사냥터에서 몽골의 지배하에 있던 이지란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어느날 활쏘기 경합을 벌였는데, 이성계의 활솜씨가 월등히 뛰어나 이지란이 이성계를 형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지란은 이성계보다 나이가 네 살 많은데도 의제(義弟)를 자처한 것은 활솜씨 때문이라고는 하나, 양측 군사력의 우열에 의해 서열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려는 원()의 요구에 따라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 영토를 원나라에 내어주었고, 몽골은 함경도 영흥 일대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해 지배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원나라 장수로 출발했다. 이지란의 아버지도 몽골에서 천호(千戶)의 벼슬을 얻은 족장이었고, 그 자리를 이지란이 물려받았다.

 

이성계와 이지란의 결합은 원나라가 고려에서 빼앗아 설치한 쌍성총관부와 여진족의 전략적 결합이었다. 원나라 말기에 이성계와 이지란은 몽골에 등을 돌려 고려에 영토와 군사를 데리고 고려에 귀부했다.

이지란은 독자적인 지배영역과 종족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운 군벌로서의 위치를 유지한 것 같다. 이성계로서도 쌍성총관부 휘하 병력만으로 고려 조정에서 권력을 도모하기 힘들어 이지란 부족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었고, 의제 이지란의 지원이 이성계의 권력 탈취에 결정적 힘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조선 초기에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의 여진족 지역을 우리 강력으로 포함시키는데도 이지란의 도움이 컸다고 할수 있다.

 

이지란은 고려 공민왕 20(1371) 고려에 투항했고, 이후 이성계 휘하로 들어갔다.

그는 고려말 왜구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380년 이성계를 따라 황산대첩에 참여해 지리산 근교 운봉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구를 대패시키는 공을 세웠다.

고려사에 따르면 황산대첩 당시 왜구 장수 아지발도를 칠 때, 창을 든 왜병 한 명이 이성계에게 몰래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영공, 뒤를 보십시오"하고 거듭 외쳤지만 이성계가 미처 듣지 못하자, 이지란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몸소 활을 쏘아 그 왜병을 죽였다. 또한 온몸에 갑옷을 두른 아지발도를 죽이기 위해 이성계가 먼저 화살을 쏘아 아지발도가 쓴 투구 꼭대기를 맞혀 투구를 벗겨내고, 그 틈에 이지란이 활을 쏘아서 아지발도를 죽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성계와 함께 왜구토벌이 여러차례 종군했다.

 

이지란 초상화 /청해이씨 종친회
이지란 초상화 /청해이씨 종친회

 

이지란이 결정적으로 이성계를 도운 것은 위화도 회군이다.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 왕조를 열자 그는 1등공신으로 올라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이지란은 태조가 물러난후 정종 때에도 벼슬을 하다가 이방원이 즉위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는 말년에 전쟁터에서 자신이 죽인 수많은 영혼에게 속죄하기 위해 불가에 귀의했다. 그의 불교 법명은 식형(式馨)이다.

태종 2(1402) 497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방원에게 "신은 본토(本土)의 사람으로 타국(他國)에서 죽게 되었으니 내 시신을 태워 본토에 장사지내어 본토의 풍속을 따르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조심조심 덕()을 닦아 영원히 조선을 보전하시라"는 당부했다고 한다. 태종은 이지란이 죽자 사흘 간 조회를 정지하고, 그의 청대로 장사지냈으며 시호를 양렬(襄烈)이라 했다.

 

그의 둘째 아들 화영(和英)은 세종 임금때 우군부판사가 되었고 7세손 인기(麟奇)는 선조 때 중추부동지사가 되었다.

이지란의 후손은 청해 이씨를 이루고 있다. 청해는 지금의 함경도 북청군 청해리 일대다. 청해 이씨 종친회는 이지란이 중국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경기도 포천시 장수면 주동리에 이지란과 그의 후손 이중로(李重老)를 제향하는 청해사(靑海祠)가 있다.

 

포천 청해사 /청해 이씨 종친회
포천 청해사 /청해 이씨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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