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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7백년간 독일 영토, 2차 대전후 소련 땅…러시아 본토서 육로로 가려면 비자 받아야
섬처럼 고립된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의 소외
2020. 05. 31 by 박차영 기자

 

유럽 발트해 연안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러시아 영토가 있다. 이름하여 칼리닌그라드 주(Kaliningrad Oblast). 면적은 15으로 강원도 남한지역보다 약간 좁고, 인구는 94만명이다.

이 땅은 원래 독일 땅이었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의 동프로이센 지역이었는데,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면서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역외영토이며, 비지(飛地 , exclave)가 된다.

이 땅의 개척자는 1255년 독일인들로 구성된 튜턴 기사단(Teutonic Knights)이었다. 당시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였고, 그후 프로이센의 영지가 되었으며, 700년 가까이 독일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 1724~1804t)의 고향이기도 하다. 칸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본 적이 없다.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리투아니아가 독립하면서 1923년 이 지역의 일부를 합병하기도 했지만, 1938년 나치가 다시 원대복귀 시켰다.

하지만 1944년 소비에트 군대가 이 지역에 진주하면서 이 일대를 차지했고, 19458월 포츠담 합의에 의해 이 지역은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소련은 쾨니히스베르크에 살던 독일인을 죽이거나 추방하고 그곳에 러시아인들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소련은 독일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공산당 간부인 미하일 칼리닌(Mikhail Kalinin)의 이름을 따 도시와 주의 이름을 칼리닌그라드로 바꾸었다.

 

칼리닌그라드의 위치 /위키피디아
칼리닌그라드의 위치 /위키피디아

 

칼리닌그라드는 발트해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얼지 않는 부동항(不凍港)이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은 벨라루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연방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칼리닌그라드의 연결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91년 발트3국이 독립하고 벨라루스도 소련에서 이탈했지만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영토로 남았다. 그런데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와 육로로 연결되는 지점이 없는 월경지(越境地)가 되었다.

 

칼리닌그라드 주 /위키피디아
칼리닌그라드 주 /위키피디아

 

러시아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와 비자 없이 지나갈수 있도록 협정을 맺었다. 따라서 러시아 본토에서 칼리닌그라드로 육로로 이동하는데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폴란드와 라트비아가 2004년에 EU에 가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셍겐조약(Schengen acquis)은 회원국 국민들에게는 역내에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지만 역외국가 국민에 대해 비자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국민과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은 그 중간지대를 경유할 때 비자를 받아야 하게 되었다.

칼리닌그라드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영토 욕심이 나서 갖고는 있지만 이 월경지를 지원할 여력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도 이 곳을 찾기 위해 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찾기가 힘들다. 군사적 지위도 약화되어 러시아의 주둔 병력이 줄어들어 군부대가 떨구는 효과도 사라지고 있다. 2017년 기준 1인당 소득은 7천 달러 수준으로 러시아인들의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1991년에 러시아 역내의 독일인들의 이주를 받았다. 우선 볼가강 유역의 독일인과 카자흐스탄 독일인을 받았다. EU의 중심국인 독일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다. 2005년에는 쾨테르스베르크 성립 750주년 기념식을 열어 독일 관광객들을 유치했다.

독일은 2차 대전 패전국으로 더 이상 칼리닌그라드를 요구하지 않는다.

 

칼리닌그라드의 러시아정교 교회 /위키피디아
칼리닌그라드의 러시아정교 교회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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