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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워싱턴 대행진의 명연설…50여년 지났건만 재개되는 흑백갈등
다시 새겨보는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
2020. 06. 02 by 박차영 기자

 

미국이 대혼란에 빠져 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라는 흑인 남자가 백인 경찰관에 의해 숨이 막혀 죽은후 백악관 상공에는 시위대를 저지가기 위한 군용헬기가 날아다니고, 뉴욕 맨해튼 상가에는 시위대가 깨뜨린 유리 조각으로 뒤덥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0만명 이상 죽은 가운데 이 나라는 흑백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다.

 

1963828,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광장에 20~30만을 헤아리는 엄청난 군중이 모였다. 구호는 자유(freedom)와 일자리(jobs)였다. 그날 링컨 기념관 발코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군중들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중략}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어제와 오늘 우리가 고난과 마주할 지라도,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략) I say to you today, my friends, so even though we face the difficulties of today and tomorrow, I still have a dream. It is a dream deeply rooted in the American dream.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n the state of Mississippi, a stat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injustic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oppression, will be transformed into an oasis of freedom and justice.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I have a dream today..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서 연설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위키피디아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서 연설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위키피디아

 

그가 연설을 한 링컨기념관은 남북전쟁 후 노예제도를 폐지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남북 전쟁으로 흑인들은 노예의 족쇄에서 풀려났지만, 100년이 지난 1960년대까지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억압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남부 주에서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 법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맹에 있는 모든 공공기관에서 합법적으로 인종간 분리하도록 규정했다. “평등하지만 분리한다는 이 규정으로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경제적 지위, 주거 등에서 열등한 대우를 받았고, 경제, 교육, 사회등에서 불평등 대우를 당했다. 미국 남부에서 흑백의 합법적 분리가 이루어졌다. 북부에서도 보이지 않는 규율에 의해 집 계약, 대출, 직업 대우에서 인종차별이 존재했다.

짐 크로법에 의해 공립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에서 인종이 분리되었고, 화장실, 식당, 식수대에서의 백인과 흑인이 결리되었다. 군대에서도 백인과 흑인은 나누어졌다.

 

이날 워싱턴 대행진은 아프리칸 미국인들의 시민적, 경제적 권리를 옹호하는 시위였다. 이 대행진에서 킹 목사의 연설은 대중적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워싱턴 대행진은 흑인 민권운동을로 발전했고,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으로 짐 크로 법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킹 목사는 1929년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목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마이클 킹 주니어였는데, 1934년 독일을 방문하면서 유럽 중세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에 영향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844일 멤피스에서 39세의 젊은 나이에 백인 저격범의 흉탄에 쓰러졌다. 미국은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의 날로 정해 그와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의 민권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킹 목사의 민권운동이 시작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인종차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50여년 전의 평화시위와 달리 폭력을 동반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도 문제지만, 폭력과 약탈을 자행하는 시위도 문제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 모인 군중 /위키피디아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 모인 군중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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