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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US스틸 설립…노던퍼시픽 매집 사건 통해 철도 지배
JP모건⑥…금융으로 철도·철강산업 지배한 황제
2020. 07. 04 by 김현민 기자

 

20세기 초입부인 19001212일 뉴욕 맨해튼의 한 클럽에 미국 굴지의 기업인·금융인 70여명이 모였다. 미국 최대철강회사인 카네기철강(Carnegie Steel Co.)의 사장 찰스 슈와브(Charles M. Schwab)가 연단 위에 올랐다. 그는 35세의 나이에 카네기철강 사장에 오른 각광받는 젊은 기업인이었다.

슈와브는 내로라는 기업인들 앞에서 불쑥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철광석 채굴에서 완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하나의 지배구조 아래 편입하는 철강산업 트러스트 설립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 자리에 존 피어몬트 모건도 참석하고 있었다.

트러스트(trust)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경쟁업체들을 하나의 자본으로 결합하는 기업합병 방식으로,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다. 당시 미국 철강업계는 철도업계와 마찬가지로 난립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했다. 최대 기업인 카네기철강은 광산에서 제강까지를 작업했는데, 와이어와 파이프 등 제품 생산까지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2위 철강회사는 J.P.모건이 자본을 투자한 페더럴스틸(Federal Steel Co.)이었는데, 카네기철강이 제품 분야에 진출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었다.

슈와브는 철강 트러스트를 제의하면서 카네기와 피어폰트가 지배하는 트러스트가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피어폰트는 귀가 의심스러웠다. 카네기의 심복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공식적으로 철강 트러스트를 제의한 것이었다. 피어폰트는 연회가 끝나고 슈와브를 따로 불러 30분 정도 대화를 나눈후 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후 피어폰트는 파트너들과 의논하며 철강 트러스트 설립방안을 짰다.

 

US스틸 공장 /위키피디아
US스틸 공장 /위키피디아

 

얼마후 피어폰트는 슈와브를 불러 카네기철강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에게 회사를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슈와브는 카네기와 골프 회동하면서 매각 대금이 얼마나 되면 좋을지를 물어보았다. 카네기는 연필을 꺼내 종이 위에다 48,000만 달러를 쓰고 슈와브에게 주었다. 슈와브는 그 쪽지를 들고 피어폰트에게 갔다. 피어폰트는 쪽지를 본 후에 좋소. 이 가격을 받아들이겠소.”라며 즉석에서 대답했다. 이후 인수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변호사도 없었고, 서면계약서도 없었다. 피어폰트와 카네기는 15분간 만나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당시 48,000만 달러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카네기는 단숨에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그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자선활동으로 남은 인생을 보냈다.

 

US스틸 뉴욕 본사(좌)와 피츠버그 본사(우) /위키피디아
US스틸 뉴욕 본사(좌)와 피츠버그 본사(우) /위키피디아

 

피어폰트는 카네기철강을 손에 넣은 후 다른 철강회사에도 접촉했다. 아메리칸 틴 플레이, 아메리칸 스틸 후프, 아메리칸 시트 스틸, 아메리칸 브리지, 내셔널 튜브, 내셔널 스틸, 셸비 스틸 튜브, 레이크 슈피리어 콘솔리데이티드 마인스 등도 트러스트에 들어왔다.

참여를 주저하는 회사에게는 강압적인 수단을 썼다. 아메리칸 스틸 앤 와이어는 대주주들이 과도한 가격을 요구하자 피어폰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협상을 깨겠다고 나왔다. 그러자 대주주는 서둘러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나와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앤드류 카네기 /위키피디아
앤드류 카네기 /위키피디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철강 트러스트가 US스틸(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이다. 설립일은 190132, 슈와브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지 3개월도 못되어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피어폰트는 US스틸의 초대 사장에 카네기철강 출신의 슈와브를 올려 놓았다. US스틸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는데, 상장가가 14억 달러였다.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0억 달러가 넘는 회사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US스틸의 조강생산량은 미국전체의 3분의2를 차지했고, 영국과 독일의 전체 조강능력을 넘어섰다.

 

피어폰트는 금융 분야를 넘어 철도와 철강 등 산업을 지배하는 황제로 군림했다. 그는 어떤 도전도 허용치 않았다. 그에게 찍히는 기업인, 금융인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도전자들이 생겨났다. 바로 유대인 금융가였다. 19세기 후반들어 미국에 유대인 금융인들이 부쩍 성장했다. 유대인들은 양키 금융인들이 천하다고 손을 뗀 증권 브로커, 기업어음 할인 등에 뛰어들어 성장했다.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쿤 로브 등이 증권 브로커리지를 통해 뉴욕 금융시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양키자본의 대부 J.P.모건을 뛰어 넘을수는 없었다. 피어폰트는 유럽의 유대은행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기도 했지만 미국내 유대자본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런 J.P.모건에 대적하겠다고 덤빈 유대인이 제이컵 시프(Jacob Schiff)였다. 시프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온 유대인으로 쿤 로브(Kuhn, Loeb & Co.)라는 금융회사를 거느렸다.

 

노던퍼시픽(좌상), 그레이트노던(좌하), 시카고-벌링턴-퀸시(우)의 노선 /위키피디아
노던퍼시픽(좌상), 그레이트노던(좌하), 시카고-벌링턴-퀸시(우)의 노선 /위키피디아

 

발단은 시카고에서 시애틀까지 미국 북서부를 연결하는 노던퍼시픽 철도(Northern Pacific Railway)였다. 이 철도는 남북전쟁 전후해 채권으로 돈을 번 제이 쿡(Jay Cooke)의 소유였는데 경영난으로 파산위기에 처했다가 J.P.모건의 도움으로 회생과정을 거쳐 피어폰트의 지배 이래 들어와 있었다.

피어폰트는 노던퍼시픽의 경영을 제임스 힐(James J. Hill)에 맡겨 놓았다. 힐은 시카고 지역에서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시카고-벌링턴-퀸시 철도(Chicago, Burlington and Quincy Railroad)를 매입했다. 이 철도는 미시시피 텍사스까지 연결되었는데, 노던퍼시픽과 연결하면 미국 중부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노던퍼시픽의 노선확장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 유니언퍼시픽 철도(Union Pacific Railroad)를 위협했다. 유니언퍼시픽의 경영자 에드워드 해리먼(Edward H. Harriman)은 피어폰트와 힐을 찾아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노던퍼시픽과 유니언퍼시픽의 영업권 분쟁은 금융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해리먼이 손잡은 사람은 J.P.모건에 도전하려는 유대금융인 시프였다. 해리먼과 시프의 반모건 연합은 피어몬트와 해리먼의 노던퍼시픽을 적대적 인수를 통해 빼앗기로 작전을 세웠다.

19014월 해리먼과 시프는 노던퍼시픽 주식 7,8600만 달러 어치를 매집했다. 당시까지 미국 증권 역사상 최대의 매집이었다. 피어폰트는 당시 휴가차 이집트에 있었다. 갑자기 매수주문이 들어오면서 노던퍼시픽 주가가 뛰어 올랐다. 얼마 동안 J.P.모건측이나 노던퍼시픽측에서 주가 상승의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그 비밀이 밝혀졌다. 반모건파 진영의 누군가가 노던퍼시픽의 CEO 힐에게 해리먼과 시프에 의해 적대적 M&A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힐은 급히 주채권은행인 J.P.모건에 사실을 전했다. J.P.모건이 음모를 확인한 날은 190154일 토요일이었다. 당시는 토요일에도 증권시장이 열렸다.

프랑스에 있던 피어폰트는 전보로 소식을 전해듣고 J.P.모건 파트너들에게 노던퍼시픽 주식을 무조건 매집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현재 해리먼-시프 진영이 확보한 주식은 과반수에서 4만주 모자라는 선이었다.

또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랍비 가문 후손으로 독실한 유대교도였던 시프는 이날 시나고그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에 예배한다. 그 바람에 시프의 쿤 로브는 경영권을 장악하기 직전에 추가 주식을 매집하지 못했다.

월요일인 56J.P.모건의 직원들은 노던퍼시픽 주식을 사려고 곳곳을 쑤시로 다녔다. 쿤 로브 직원들도 주식을 찾아 다녔다. 주가는 3일 사이에 70달러에서 200달러로 세배 이상 폭등했다.

내막을 모르는 증권브로커들은 주가가 급등하자 이젠 내려갈 것으로 보고 공매도(short sale) 물량을 쏟아냈다. 공매도는 다른 사람의 주식을 빌려 거래하기 때문에 실물이 필요했다.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공매도를 친 사람들은 실물을 찾아 돌아다녔다. J.P.모건과 쿤 로브가 경쟁적으로 주식을 사려 덤벼들었고, 공매도를 친 증권사들이 실물을 찾아 나서면서 주식시장에 대혼란이 빚어졌다.

수요일인 58일 노던퍼시픽의 주가는 한때 1,00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4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주식시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주식물량이 나오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멱살을 붙들고 치고받았다. 이러다간 증시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결국 두 진영은 화해를 했다.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J.P.모건과 쿤 로브는 공매도 세력에게 주당 150 달러에 주식을 매입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는 바람에 사태는 진정되었다. 곧이어 19016월 피어몬트는 노던시큐리티스(Northern Securities Co.)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해 노던퍼시픽과 그레이트노던, 시카고-벌링턴-퀸시 철도를 지배했다. 이 거대 철도회사에 힐과 해리먼이 동시에 이사로 선임되었다.

 

증권시장에 대형금융기관과 철도회사가 맞붙어 아귀다툼이 벌어졌는데도 워싱턴의 윌리엄 맥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은 자유방임의 시장원리를 존중한다며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해 96일 버펄로에서 열린 박람회에 참석하던 중에 저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를 이어 부통령이던 시오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대통령이 되어 피어폰트의 트러스트에 칼을 댔다. US스틸과 노던시큐리티스는 반트러스트 셔먼법(Sherman Antitrust Act)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나는 조금만 경쟁하는 걸 좋아해”라는 피어몬트의 말을 꼬집은 만평 /위키피디아
“나는 조금만 경쟁하는 걸 좋아해”라는 피어몬트의 말을 꼬집은 만평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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