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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동양풍의 스트립 댄서…독일의 간첩 협의로 프랑스에서 체포돼 사형
마타 하리, 독일 스파이인가 전쟁 희생양인가
2020. 07. 24 by 김현민 기자

 

마타 하리(Mata Hari)는 팜므 파탈(femme fatale), 미녀 간첩의 대명사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Margaretha Geertruida Zelle), 마타 하리는 예명이다.

그녀는 정말로 스파이였을까. 이 여인의 범죄 사실은 전쟁이 끝난 후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녀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에 관해 숱한 영화로, 소설로 만들어졌고, 고향인 네덜란드 레이와르덴 박물관에는 그녀의 소장품을 전시한 전시실과 상()이 세워져 있다.

 

검은 머리에 올리브빛 피부, 커다란 갈색 눈, 아름다운 몸매의 마타 하리는 동양풍이 물씬 풍기는 서양 미인이었다. 그는 파리 물랑루즈에서 스타 댄서로 활동했다. 많은 남성들, 특히 군인들의 그녀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고향은 네덜란드 북부 레이와르덴(Leeuwarden)이다. 187687일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어려서 매우 어렵게 살았다.

 

마타 하리 /위키피디아
마타 하리 /위키피디아

 

그녀는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가 필요했고, 신문에 난 구혼광고를 보고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자바(인도네시아)에 주둔하던 장교 루돌프 맥레오드(Rudolf MacLeod)와 결혼해 자바에서 생활했다. 그녀는 자바에서 두 아이를 낳고 7년을 살다가 이혼했다. 정확한 이혼 사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20살 연상인 남편의 바람기와 구타, 알콜 중독이 원인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맏아이는 병으로 일찍 죽고 딸을 데리고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녀는 전남편의 보조 없이 어렵게 살았다.

1903년 그녀는 파리로 갔다. 그녀는 파리에서 서커스단에서 말을 타는 기수을 맡기도 했고, 화가들의 모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용수로 나서게 되었다. 그녀의 춤은 밸리 댄스였는데, 동양적이고 자극적이서 파리 사교계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가 춘 춤은 노출이 심한 의상과 자극적인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스트립 댄스에 가까운 것이었고, 유럽의 남성들은 그녀의 춤에 열광했다.

 

마타 하리의 댄스 /위키피디아
마타 하리의 댄스 /위키피디아

 

이때부터 그녀는 이름을 마타 하리로 바꾸었다. 마타 하리란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란 뜻이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 이력을 감추고, 자신이 자바 섬의 왕족으로 네덜란드인과 혼혈인 인도네시아 공주라고 둘러댔다. 인도의 여사제라고도 했다.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남자들은 그 말을 믿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유럽 사교계의 남자들이 넘쳐났다. 힘께나 쓰는 남자라면 그녀를 유혹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프랑스 군부와 고위층, 재계 인사, 네덜란드 정치인, 독일 왕가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쟁이 없었다면 그녀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무대의 댄스 스타로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38살 되던 19147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은 군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대다. 모든 사물과 행동, 사건이 군대의 시각에서 조명된다.

그녀의 주변에 다가왔던 남성들은 고위층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패를 갈라 전쟁을 했다.

 

1차대전에서 네덜란드는 중립국이었다. 그녀는 네덜란드 국적이었기 때문에 여행이 자유로왔다.

 

영국의 첩보기관이 그녀를 스파이로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1차 대전이 일어날 무렵, 베를린에 머물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1차 대전 직전에 독일 빌헬름 황태자 앞에서 7차례나 공연한 사실도 의심을 받게 했다.

 

독일의 적성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그녀를 의심했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 독일에서 프랑스로 건너왔다. 영국의 정보기관은 외교통신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마타하리의 스파이 행위를 잡아내고 프랑스 정보당국에 알려주었다.

1917213일 아침 그녀는 파리 샹젤리제의 한 호텔에서 체포되었다. 그녀는 이때부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다. 그녀는 고급 매춘부에게 필요한 사후 피임 용품으로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녔는데, 심문관은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잉크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경찰은 그녀가 암호명 'H21'의 독일 스파이로 프랑스 정관계의 고급정보를 독일 측에 팔아 넘겼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심문 과정에서 마타 하리는 스파이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19177월 재판에서 그녀는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관은 "마타하리가 빼낸 군사 기밀은 연합군 병사 5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판시했다.

19171015일 아침, 그녀는 파리 뱅센의 사형집행장에 이송되었다. 그녀는 처형당할 때 눈가리개도 거부하고 사수들 앞에 당당히 섰다. 곧이어 형이 집행되엇다. 나이 41세였다.

 

그녀는 전쟁 전에 한때 유럽 뭇남성들의 연인이었으며, 미모를 바탕으로 한 스파이 행각으로 죽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마타 하리의 스파이 활동에 대해 입증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들이 정치적 발언권이 전혀 없었던 시대에 고위층이 연루된 사건을 빨리 뒤엎으려는 정치인들과 옐로 저널리즘의 희생양인지 모른다.

 

마타 하리 /위키피디아
마타 하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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