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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몽상적 관념으로 아랍 봉기에 관여, 제국주의에 환멸
아랍 독립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영국인 로런스
2020. 08. 02 by 김현민 기자

 

영화 아라바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국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homas Edward Lawrence)는 실제인물이다. 영화는 그가 아랍 독립군을 이끌고 오스만 투르크군을 무찌르고 아랍의 독립을 달성한 인물로 그렸지만, 실제의 그의 역할은 영화에서 과장되었다는 게 역사기술자들의 평가다. 하지만 그는 고고학자이자 작가로서 아랍 봉기를 자세하게 기술했고, 그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였던 것은 사실이다.

 

T E 로런스는 어려서부터 몽상가적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웨일즈의 귀족이었는데, 본처를 버리고 하녀와 결혼해 다섯 아들을 낳았다. 로런스는 그중 둘째였다. 하지만 본처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 법률적으로는 사생아인 셈이다.

어려서 운동을 좋아하고, 역사 유적지 방문을 즐겼다. 옥스퍼드대 사학과에 입학해서 박물관장이던 데이비드 조지 호가스(David George Hogarth)의 총애를 받아 아랍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아랍어를 배우고 아랍 문화를 익혔다. 그는 스승 호가스를 따라 20대 중반에 중동에서 생활하며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두루 탐방했다.

 

히타이트 유적지 발굴에 참여한 로런스 /위키피디아
히타이트 유적지 발굴에 참여한 로런스 /위키피디아

 

1914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런스는 카이로의 육군 정보부대에 입대해 시나이 반도에서 첩보활동을 했으며, 1916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이 무렵 아랍민족주의가 고조되어 아랍인들이 터키로부터 독립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메카를 지배하던 부족장(셰리프)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가 아랍국가의 독립을 꾀하며 영국과 제휴를 모색하고 있었다.

T. E. 로런스  /위키피디아
T. E. 로런스 /위키피디아

 

로런스는 카이로 주둔 영국 사령관의 지시로 메카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후세인 빈 알리의 아들들을 만났다. 그는 알리(Ali, 후에 헤자즈 왕), 압둘라(Abdullah, 후에 요르단 왕), 파이잘(Faisal) 가운데 파이잘이 아랍 독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파악하고, 영국 정부에 그를 천거했다. 영국은 파이잘과 협력해 터키에 대항하기로 했다.

로런스는 영국인으로선 이단아였다. 그는 진정으로 아랍을 사랑했고, 아랍 독립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로런스는 영국 군복을 벗어던지고 아랍인 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그의 진정성은 아랍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랍 독립세력은 영국군과 함께 터키군에 대항했다.

 

191776일 아랍과 영국의 연합군은 홍해의 북쪽 끝에 있는 아카바(Aqaba)를 장악했다. 드디어 1918101일 영국군과 아랍 독립군은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그날 아침 9시 영국군의 지휘를 받는 호주 제10 경기병 여단이 다마스쿠스에 진입해 터키 주둔군의 항복을 받아냈고, 로렌스와 아랍 독립군이 그 뒤를 따랐다. 아랍인들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후 파이잘을 임시정부 수반으로 세우고, 아랍 국가(Arab State)를 수립했다.

 

1919년 파리평화회의 기간 베르사이유에서 촬영한 사진. 가운데가 파이잘 국왕,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로런스다. /위키피디아
1919년 파리평화회의 기간 베르사이유에서 촬영한 사진. 가운데가 파이잘 국왕,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로런스다. /위키피디아

 

파이잘이 아랍민족주의를 토대로 세운 시리아는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포함), 시나이 반도를 합친 대시리아를 의미했다.

이때 로런스는 나이는 30세였다. 하지만 이 젊은 영국인은 곧 실망을 한다. 로런스는 영국과 프랑스가 2년전에 비밀조약을 체결한 사실을 알게 된다.

19165월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François Georges-Picot)가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이 협정은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지역을 둘로 나눠 차지한다는 내용이었.k 영국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 해안 지역 일부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의 B구역을 가져가고,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 일부와 시리아, 레바논의 A구역을 차지하기로 했다.

 

영국정부의 지시로 아랍인을 지원했던 로런스는 모국의 이율배반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영국 정부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자신이 약속한 아랍의 독립에 배치되며, 그런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191810월 연합국과 오스만 투르크 사이에 휴전 조약이 체결된 이후 영국·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대립했다. 곧이어 프랑스가 다마스쿠스를 침공하고,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하자 로런스는 환멸에 빠졌다. 그는 영국 국왕(조지 5)에게 훈장을 반납해 버리고,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했다.

 

로렌스는 저술작업에 들어가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옥스퍼드 시절에 일생 동안 단 한 번쯤은 새로운 아시아를 건설하는 일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고백했는데, 그의 꿈은 몽상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의 모국이 행한 제국주의의 앞잡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대령으로 제대한 로렌스는 1922년 가명으로 다시 공군에 입대했다가 이듬해 발각되어 제대해야 했다. 곧이어 다른 이름으로 육군 전차부대에 입대했다가 쫓겨났다. 그는 이름을 바꿔가며 군 생활을 하려 했는데, 그는 과거의 로런스와 헤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25년엔 영국 정부도 그에게 공군 복귀를 허락해 10년간 근무하다가 제대했다. 군대를 네 번 입대하고 제대한 사나이다.

 

오토바이를 탄 로런스 /위키피디아
오토바이를 탄 로런스 /위키피디아

 

그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배웠다. 그는 전속력으로 오토바이를 달리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던중 1935512일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그는 아랍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의 실제 스토리는 1962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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