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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 플뤼쇼, 영국 감옥에 갇히고 스파이 혐의 받기도…남미 탐험가 활동
중국 칭다오에서 살아남은 독일 조종사의 귀국
2020. 08. 04 by 박차영 기자

 

군터 플뤼쇼 /위키피디아
군터 플뤼쇼 /위키피디아

 

1차 세계대전 때에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독일군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일본군의 점령 직전에 탈출해 독일로 귀국한 장교가 있다. 군터 플뤼쇼(Gunther Plüschow, 1886~1931)라는 인물이다.

그의 어릴 때 얘기에 대해 전해지는 게 없다. 플뤼쇼는 독일 식민지였던 칭다오 해군기지에서 중위로 근무하던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을 맞았다. 당시 일본은 연합국 진영에 가담해 독일에 적대국이었다.

19148월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형 순양함 6척에 23,000명의 보병을 싣고 칭다오를 공격했다. 텐진(天津)에 정박해 있던 영국 전함 2척도 일본 해군에 합세했다. 병력 규모에서 61의 비율로 독일이 절대적 열세였다.

칭다오 독일군은 타우베(Taube)라는 글라이더형 정찰기 2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개전 직전에 한 대가 추락하고 플뤼쇼가 조정하는 한 대만 남아 있었다. 112일 플뤼쇼는 마지막 정찰기를 몰고 하늘을 날아 일본 정찰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이때 독일 조종사 플뤼쇼는 일본 조종사를 권총으로 쏘아 격추시켰다. 역사상 첫 공중전이라고 기록된다.

하지만 116일 독일군은 포탄과 화약이 소진되어 일본군에 항복조건을 제시했다. 항복 직전에 칭다오의 독일 총독 알프레드 마이어-발데크(Alfred Meyer-Waldeck)는 플뤼쇼에게 비밀문서와 서한을 주며 정찰기를 타고 귀국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타우베 정찰기 /위키피디아
타우베 정찰기 /위키피디아

 

플뤼쇼는 누더기가 된 정찰기에 올라타고 칭다오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250km쯤 날아가다가 비행기는 중국의 어느 논에 쳐박혔다. 그는 그곳에서 비행기를 불태워 버리고 베를린까지 걸어갈 작정을 했다. 현지 중국인들이 그를 잘 대우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걷기도 하고 정크선을 타기도 하면서 난징(南京)에 도착했다.

난징에서 플뤼쇼는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체포 직전에 인력거에 올라타 기차역까지 갔다. 그는 중국인에게 뇌물을 주고 배편을 구해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에서 그는 베를린에서 알던 외교관의 딸을 만났다. 그녀는 그에게 스위스 여권을 마련해주고 선박 티킷과 여비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적국인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호놀룰루에 들른 다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는 미국 대륙을 관통해 19151월에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에서도 운 좋게 베를린에서 온 친구를 만나 여행서류를 만들어 130일 유럽으로 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탄 배는 악천후 속에 표류하다가 스페인 남단의 영국령 지브롤터에 기항했다. 그곳에서 그는 독일인임이 밝혀져 영국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칭다오의 유명한 조종사였음도 알려지게 되었다. 플뤼쇼는 51일 영국 본토 레스터셔(Leicestershire)에 있는 군 감옥에 갇혔다.

74일 그는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서 영국 감옥을 탈출해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서 그는 경찰 감시망을 피해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중에 대영박물관에서 남미 파타고니아(Patagonia) 지방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배편을 구해 중립국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는 어떻게 네덜란드로 건너갔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 그를 도와준 사람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플뤼쇼가 남미에서 조종한 수상비행기 /위키피디아
플뤼쇼가 남미에서 조종한 수상비행기 /위키피디아

 

플뤼쇼는 네덜란드에서 마침내 독일로 귀국했다. 독일 정부는 처음에 그를 영국의 스파이로 의심해 감옥에 가뒀다. 그는 자신이 칭다오에서 싸운 독일 조종사라고 밝혔는데도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그가 진정으로 독일을 위해 싸운 전사라는 사실이 일려지면서 감옥에서 풀려났다. 독일은 그를 칭다오의 영웅으로 미화하고 승진시켰다. 그는 다시 해군에 복무하며 라트비아 전선에 참여했다.

19166월 그는 라트비아의 격납고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틈틈이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엮어냈다. 1918년 출판된 칭다오에서의 항공모험은 무려 70만부나 팔려 나갔다.

 

플뤼쇼의 탐험선 포이어란트호 /위키피디아
플뤼쇼의 탐험선 포이어란트호 /위키피디아

 

1918년 전쟁이 끝나고 독일에 좌우익이 갈려 내전 상태에 빠졌을 때 우익 군사조직에서 그를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1919년 해군에서 전역했다. 그때 나이가 33살이었다.

전역 후 여러 일자리를 구하다가 남미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영국에서 도망중에 읽었던 파타고니아를 탐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남미 최남단 케이프혼(Cape Horn)에서 칠레 발디비아(Valdivia)까지를 탐험하고, 다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를 여행했다. 그는 남미 여행기를 담아 동화의 나라 여행’(Voyage to Wonderland)이란 책을 펴냈다.

서적 출간으로 번 돈으로 그는 다시 탐험에 나섰다. 192711월 플뤼쇼는 포이어란트(Feuerland)호를 구입해 칠레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를 여행했다. 그는 기술가와 함께 수상비행기를 구입해 배에 싣고 탐험에 나섰다. 그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대의 빙하지역에서 항공 촬영을 했다.

1930년 그는 파타고니아로 돌아와 탐험을 계속했다. 1931128일 그는 동료와 함께 항공촬영에 나섰다가 안데스산맥에 있는 아르젠티노 호수(Lake Argentino) 근처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가 탐험선으로 활용하던 포이어란트호는 2006년까지 남미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에서 활용되다가 독일로 건너가 역사문화 기념물로 등재되어 있다.

 

플뤼쇼와 그의 아들 /위키피디아
플뤼쇼와 그의 아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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