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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보유 않고, 해외에 빼돌리고, 달러로 대금 회수, 대출로 기업 인수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떼돈 번 스티네스
2020. 08. 15 by 박차영 기자

 

1921~1923년 사이에 독일에서 벌어졌던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엄청난 재산을 불린 사람이 있다. 후고 스티네스(Hugo Stinnes, 1870~1924)라는 기업인이다.

타임지 커버스토리 /위키피디아
타임지 커버스토리 /위키피디아

 

그의 비법은 단순하다. 그는 절대로 독일 마르크화를 보유하지 않았다. 또 은행에서 막대한 돈을 차입해 기업이라는 실물자산을 사들였다. 게다가 대금을 회수할 때에는 당시 유일하게 금으로 태환되던 미국 달러로 받았다. 번 돈을 중립국인 네덜란드로 빼돌렸다.

이렇게 해서 스티네스가 불린 기업의 가치는 당시 독일 경제 전체보다 높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극에 치달았던 19233월 미국의 타임지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싣고 독일의 새로운 황제’(The New Emperor of Germany)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업수완이 좋았다. 독일 석탄산지인 루르 지방의 뮐하임(Mülheim)에서 태어난 그는 광산업을 하는 할아버지 마티아스에게서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유산을 씨자금으로 23살의 나이에 광산, 해운, 철강산업에 진출했고, 독일 함부르크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영국 뉴캐슬에 지사를 세워 사업 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혔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그는 전기회사, 조선소를 인수해 거대한 콘체른(Konzern)을 형성했다. 그의 기업집단은 베스타팔렌, 라인란트, 룩셈부르크에 펼쳐져 있어 전쟁과 함께 군수물자를 보급하기에 적합했다. 그는 루르의 왕이라 불리었다.

 

전쟁은 그에게 좋은 사업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전쟁 기간에 그는 독일군의 실세였던 참모차장 에리히 루덴도르프와 밀착해 전쟁물자를 팔았다. 그는 적국인 프랑스에게도 비밀리에 석탄을 팔았다고 한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그는 벨기에 공장주들에게 일방적인 계약을 강요해 헐값으로 기업을 빼앗다시피 했다. 그는 벨기에 기업에서 가혹하게 노동력을 착취해 물자를 생산케 하고 그것을 독일의 자기 기업으로 실어갔다. 독일군이 러시아의 베사라비아를 점령하자 그는 가장 먼저 달려가 괜챦은 공장들을 압류했다.

 

독일이 패전한 이후 그가 해외에서 탈취한 기업들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몰수되었다. 그는 몰수된 기업에 대한 보상금을 독일 정부에 요구해 3억 마르크 정도 받았다.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패전 직후부티 서서히 시작되었다. 바이마르 정부가 좌파 복지정책을 실행하면서 재정을 팽창시켰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스티네스는 자신과 기업이 보유한 현금 모두를 네덜란드로 빼돌렸다. 연합국 감시단과 독일 국세청이 스티네스의 기업을 뒤졌지만 그와 그의 회사에는 돈이 없었다.

 

전쟁후 그는 정치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군부 출신인 루덴도르프와 함께 독일인민당 창당 멤버로 참여했고,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그는 노동조합과 하루 8시간 근무제 협약에도 경영자 대표로 나섰다. 그는 정치 활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베를린과 뮌헨의 유력지들을 인수해 그 신문들을 통해 베르사이유 조약 파기를 주장했다. 그는 당시 독일 신문의 40%를 장악했다.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시기의 지폐 교환비율 /위키피디아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시기의 지폐 교환비율 /위키피디아

 

1921년부터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자 그는 정치력을 동원해 은행에서 돈을 차입해 기업 인수에 나섰다. 그의 타깃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었다. 그는 헐값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그는 은행 차입금을 가능한 늦게 상환했다. 마르크화의 가치가 하루가 달리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늦을수록 상환액이 줄어들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기업 경영도 수월했다. 인플레이션이 임금상승보다 몇배로 높았기 때문에 인건비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초인플레이션 기간에 그는 미친 듯이 기업인수를 추구해 1,555개 회사를 소유했고, 2,888개 공장에 이권을 갖게 되었다.

그의 기업지배 방식은 수직계열화였다. 원료 생산에서 가공, 완성품 제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공정에 이르는 모든 기업을 소유했다. 신문사를 사면 제지회사도 샀다. 조선소를 사면 후판회사도 인수했고, 자신의 제철소에서 후판회사에 핫코일을 공급했다. ‘루르의 왕이 포괄한 산업 범위는 초기 분야였던 석탄, 철강, 조선에서 은행, 신문, 내륙 수로, 상선, 외환 취급, 화학 및 폭발물 회사, 제지, 인쇄, 필름, 구리제품, 자동차, 유전, 수출회사, 호텔을 아울렀다. 회사는 독일에서 그치지 않고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 폴란드, 루마니아로 뻗어나갔다.

그가 문어발식 기업확장의 무기로 동원한 것은 인플레이션이었다. 그의 재산에 관해 믿을만한 수치가 전해지지 않는다. 한 통계에 의하면, 그의 재산은 전쟁 직전에 4,000만 마르크였는데, 1923년말에는 4,200,000,000,000,000,000,000,000 마르크였다고 한다. () 단위를 넘어 경(), (), ()라는 실생활에 사용되지도 않는 단위를 동원해야 읽을수 있는 규모였다. 당시 미국 달러로 계산하면 1,000만 달러에서 10억 달러에서 불어났다고 한다. 이런 숫자도 개력적인 수치일 뿐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시기에 그의 재산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알수 없다.

 

어쨌든 그는 제품을 팔아 대금을 회수할 땐 반드시 미국 달러화로 받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했을 때에 스티네스는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에 돈이 모자란다. 산업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인플레이션은 기업을 확장시키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의 운명은 인플레이션이 멈추면서 끝이 났다. 1924410, 그는 담낭 수술을 받은후 사망했다. 그가 죽을 때 그의 회사는 4,000개였고, 공장은 3,000개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1년도 넘기지 못하고 그의 제국은 무너졌다. 재산을 물려받은 두 아들간의 다툼과 무능으로 스티네스 콘체른은 해체되고 말았다. 현재 독일에 도이체반(Deutsche Bahn)이라는 교통 및 물류회사와 라인-베스트팔렌 전기(RWE)가 스티네스가 운영하던 회사의 후손들이다.

 

후고 스티네스 /위키피디아
후고 스티네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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