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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레콩키스타 직후 유대인 추방명령…또다른 디아스포라
알함브라 칙령의 비극…유대인, 스페인 떠나다
2020. 08. 25 by 김현민 기자

 

1492331, 스페인의 공동국왕 페르디난도 2세와 이사벨라는 스페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4개월 내에 떠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국왕은 페르디난도 2세는 정략결혼을 한 이후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해 국토를 수복한 후 통일왕국을 수립한 직후였다.

후세에 알함브라 칙령(Alhambra Decree)이라 불리는 유대인 추방령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지 1492년째가 되는 해의 331, 우리의 도시 그라나다에서 이 교서를 반포하노라. 유대인들은 빈부와 귀천, 남녀노소, 거주지역, 현지 출생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 떠나라.”

당시 스페인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지는 견해가 다양하다. 53,000가구, 25만명에 이른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지만, 10만명에서 80만명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다. 분명한 것은 스페인에는 유럽 어느나라보다 유대인 인구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1492년 스페인 법원 대심문관이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에게 알람브라 칙령에 서명을 요청하고 있는 모습. (에밀리오 살라 作, 1889년) /위키피디아
1492년 스페인 법원 대심문관이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에게 알람브라 칙령에 서명을 요청하고 있는 모습. (에밀리오 살라 作, 1889년) /위키피디아

 

스페인에 유대인이 많이 살았던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팔레스타인의 유대국가가 고대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세계 각지에 유랑하던 유대인들에게 랍비들은 근거도 없이 스페인을 새로운 약속의 땅이라고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예언서 오바댜서예루살람에서 스바랏으로 잡혀 갔던 사람들은 남쪽 유다의 성읍들을 차지할 것이다고 했는데, 그 스바랏(Sephrad)이 스페인 지역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유대인들을 세파르디(Sephardi)이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솔로몬 시대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유대인들이 살았다는 설도 있지만 유대인들이 많아진 시기는 유대국가가 멸망한 2세기 이후다.

두 번째 이유는 스페인을 차지했던 이슬람 왕국이 유대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유대인들은 게르만 민족 이동 시기에 기독교로 개종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서고트왕국의 모진 박해를 참고 지내다가 이슬람 왕국이 들어선 이후 차별을 받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마드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우대하라고 가르쳤고, 레콩키스타 이전의 이슬람 왕국은 유대인에게 관대했다. 이슬람 통치 시절에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들에겐 말 대신에 노새를 타야 하고, 노란색 터번이나 띠를 둘러야 하며, 요란하게 종교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비교적 느슨한 차별을 받았지만, 그마저 지켜지지도 않았다.

이슬람 왕국인 코르도바 왕국에서 유대인들은 외무장관을 비롯해 고위직까지 진출했고, 이슬람 세력이 쪼개진 이후에 더 큰 기회를 얻었다. 각 세력마다 학식을 갖춘 인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라나다 왕국에선 군 총사령관을 지낸 유대인도 있었다.

이슬람 치하에서도 11세기에 유대인 박해가 있었지만 유대인의 발전은 멈추지 않았다. 이편 저편 오갈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잊혀 졌으나, 스페인에선 유대인들이 아라비아어로 번역되어 있던 고대 의학과 철학 서적을 히브리어와 라틴어로 번역했다. 아라비아 수학과 기하학도 스페인 유대인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유대인들은 집과 땅을 소유할수 있었고, 상업과 농업은 물론 어떤 직업도 가질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흘러 들어 인구가 늘어났다. 덕분에 스페인에선 유대인들에 의해 세파르딤(Sephardim) 문화가 꽃피웠다.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당대 어느 곳에 있던 유대인들보다 부유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평균소득은 동유럽과 독일 지역의 유대인 아쉬케니지(Ashkenazi)의 소득보다 40배나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알함브라 칙령 이전의 스페인 유대인 시나고그 /위키피디아
알함브라 칙령 이전의 스페인 유대인 시나고그 /위키피디아

 

레콩키스타 직후 스페인 왕국의 알함브라 칙령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공동국왕 페르디난도 2세와 이사벨라는 추방의 이유로 종교를 들었다. 그들은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두 국왕은 유대인들이 사악한 신앙과 음탕한 관습, 율법을 고집하며 성스러운 기독교에 해악과 오욕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부부 국왕에겐 경제적 계산도 있었다. 칙령은 유대인들의 모든 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반출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단서조항으로 금과 은, 화폐의 반출을 비롯해 국가가 정한 품목은 금지한다고 못박았다. 부동산은 4개월의 짧은 시간에 팔리지 않았다. 혹여 사는 사람이 있더라도 헐값이었다. 유대인들은 재산을 거의 잃었다. 두 국왕의 의도는 여기에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영주와 기사들에게 나눠줄 재화를 유대인들에게서 뺏아 마련하려 한 것이다.

 

유대인들에겐 시간이 촉박했다. 추방시한은 7월말이었다. 칙령에는 기일 이후에 머물러 있거나 되돌아오는 유대인 또는 잠시 방문하는 유대인은 법 절차 없이 극형에 처하고 재산은 국고에 귀속한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빈털터리로 쫓겨났다. 또다시 디아스포라가 벌어졌다. 이주하는 과정에서 2만명이 바다에 빠지거나 병들어 죽었다.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스페인에 남아 있던 유대인이 있었는데 위장 개종의 혐의를 받아 처벌되는 바람에 결국은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금과 은을 가져갈 수 없었으나 보석은 가져갈수 있었다. 그들은 후에 네덜란드에서 대규모 보석상으로 성공하게 된다.

 

알함브라 칙령 이후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위키피디아
알함브라 칙령 이후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위키피디아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가장 선호한 나라는 이슬람 국가였다. 유스만 투르크에 9만명, 오늘날 모로코 지역에 2만명, 알제리에 1만명이 몰려 들었다. 이슬람이 기독교보다 유대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는 경험칙이 그들의 목적지 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오스만투르크의 수도 이스탄불에는 이들로 인해 유대인 타운이 형성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페인의 이웃나라 포르투갈을 선택한 유대인들이 6만여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이다. 포르투갈은 당시 해양 개척에 관심이 많았는데, 돈이 필요했다. 포르투갈은 유대인 1명당 1두카트씩 받고 입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얼마후 스페인과 같은 이유로 유대인들을 추방했다. 포르투갈에 간 유대인들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자리잡았다. 그들은 16~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당시 포르투갈에 거주하면서 동족의 이산을 지켜본 유대인 학자 이삭 아브라바넬(Isaac Abrabanel)은 알함브라 칙령에 대해 반박문을 남겼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쳤는가. 당신들을 돕고 거들었을 뿐이다. …… 그렇다. 왕과 여왕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는 비록 떠나도 영혼만큼은 결고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부당한 박해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떠난다. 그러나 이날은 잊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이 떠난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금은 보화로 일시적으로 융성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대신에 유대인들이 이주한 네덜란드는 상업을 일구며 스페인이 내놓은 세계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500년이 지난 2015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알함브라 칙령의 역사를 반성하며, 유대인들에 대해 국적 회복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국외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자신이 세파르디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스페인·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하고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유대인 추방을 명령한 1492년 알람브라 칙령 /위키피디아
유대인 추방을 명령한 1492년 알람브라 칙령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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