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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전쟁
1차대전 후 중동에서 영-미-프랑스 격돌…생산, 판매 등 독과점
세븐 시스터스④…중동에서 석유 카르텔 형성
2020. 09. 18 by 김현민 기자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참전국들은 석유확보가 앞으로 국익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유럽인들은 중동에 석유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얼마나 매장되어 있는지는 몰랐다. 중동의 아랍세계는 1차 대전 직전까지 오스만투르크의 영토였다. 전쟁 기간에 영국은 이집트 총독을 통해 아랍세계를 지원했고, 전쟁 중이던 1916년에 프랑스와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을 체결해 중동을 분할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관들이 그은 영토분할에는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은 모술(Mosul)이 프랑스 관할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 직전인 1912년 오스만투르크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원유탐사를 위해 터키 석유회사 (TPC: Turkish Petroleum Company)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에는 영국의 앵글로-페르시아 석유(BP의 전신)와 로열더치셸, 도이체방크, 터키 국립은행이 투자했다. TPC는 전쟁기간에 탐사작업을 중단했다가 오스만투르크가 패전하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이 전리품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게 되었다. 1)

 

1920년 4월 25일 산레모 협정 체결에 참가한 외교관들 /위키피디아
1920년 4월 25일 산레모 협정 체결에 참가한 외교관들 /위키피디아

 

1919년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들은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만났다. 그들은 중동 석유를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였다. 협상에서 양국은 프랑스가 터키 석유회사의 지분을 25% 가지되, 모술을 영국에 넘기는 조건에 합의했다. 당시 프랑스는 중동에 병력을 파견할 여력이 없었고 석유를 정제할 능력도 부족했다. 영국은 TPC의 독일(도이체방크) 지분을 프랑스에 넘기는 조건으로 생색을 내고 풍부한 석유가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술을 확보한 것이다. 1920420일 영국의 데이비드 조지 총리(David Lloyd George),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밀랑(Alexandre Millerand) 총리가 참가한 가운데 산레모 조약(San Remo conference)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 체결에 미국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조약 내용에는 미국 석유회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교묘하게 미국을 배제시킨 것이다. 이유는 미국이 1차 대전에서 오스만투르크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세계 원유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했지만, 언젠가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해외석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산레모 조약에서 완전하게 따돌림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미국은 영국에 세계 석유시장을 독점하려 하고 있다고 엄숙하게 경고하고 미국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공헌했고, 따라서 전리품 나눠먹기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국 외무장관 커즌(George Curzon) 경은 영국의 석유점유율이 4.5%에 불과한데 비해 미국은 82%에 달하지 않느냐며 중동 석유는 영국의 것이라고 에둘러 반박했다.

하지만 미국은 집요하게 압력을 넣었다. 영국은 TPC 주식의 12%를 미국 석유메이저에게 주겠다고 했으나, 미국이 우겨서 20%까지 올렸다.

이렇게 해서 미국 석유회사는 중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미국 석유메이저 5개사는 컨소시엄을 형성해 이라크 유전개발에 참가했다. 컨소시엄에는 엑슨, 모빌, 걸프오일, 팬암석유( Pan-American Petroleum), 애틀랜틱 리치필드(Atlantic Richfield Co) 5개사가 참가했다. 2)

이라크 바바 구르구르의 영춴한 불꽃 /위키피디아
이라크 바바 구르구르의 영춴한 불꽃 /위키피디아

 

19271014일 마침내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근처 바바 구르구르(Baba Gurgur)에서 원유가 터졌다. 이곳은 구약성서 다니엘서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꺼지지 않은 불꽃이 지하 석유에 의해 타오르는 지역이었다. 키르쿠크 유전은 세계 다른 어느 유전보다 매장량이 많은 것으로 지질학자 연구에서 조사되었다.

TPC는 이라크 석유회사(IPC: Iraq Petroleum Company)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채굴에 들어갔다. 프랑스는 이라크에서 채굴된 석유의 25%를 꼬박꼬박 받아먹었다. 프랑스는 이 기름을 운용하기 위해 국영석유회사 CFP(Compagnie Française des Pétroles)를 설립했는데, 지금의 토탈사(Total SE).

영국은 국제연맹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위임통치했는데, 이라크 정부에 압력을 넣어 2000년까지 IPC의 석유이권을 갖는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IPC의 지배회사는 영국이며, 영국인이 CEO를 맡게 되었다. 이라크에겐 원유 1톤당 4실링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이 악마와 같은 조약에 이라크 정부 각료 2명이 항의 조로 사임했다.

 

1930년대 이라크 석유 파이프라인  /위키피디아
1930년대 이라크 석유 파이프라인 /위키피디아

 

중동에 석유가 난다는 사실이 현실로 입증되자, 국제석유메이저들이 19287월 벨기에 오스텐드에서 만났다. 이때 IPC에 지분 5%를 갖고 있던 아르메니아 석유사업가 칼루스트 굴벤키안(Calouste Gulbenkian)이 붉은 연필을 꺼내 들고 중동지도에 선을 그었다. 그가 그은 선 안에는 쿠웨이트를 제외하고 이라크, 시리아, 터키, 사우디 아라비아가 포함되었다.

굴벤키안은 일찍부터 티그리스 하류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 터키 석유회사를 설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후에 IPC로 이름을 바꾸었을 때도 5% 주주로서 발언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가 그은 붉은색 선은 IPC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그해 731일 레드라인 협정(Red Line Agreement)으로 구체화된다. 협정에 따르면 IPC 주주들은 레드라인 안에서 독자젹인 탐사와 개발을 하지 못하고, 이익을 공유하도록 되어 있다. 참여자는 미국의 엑슨과 모빌, 영국의 BP, 영국-네덜란드 합작사 로열더치셸, 프랑스의 토탈이다. 이 조약은 한 마디로 담합에 참여한 석유메이저들이 자기네들끼리 국경선을 그어 미래의 중동석유를 함께 나눠 먹자는 것이다. 이 협정은 석유메이저들의 최초 국제 카르텔로 기록된다. 3)

하지만 이 경계 내에 들어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독립국이었고, 이라크 석유회사가 다른 나라의 경계를 넘나들며 석유생산을 독점하자는 합의는 억지였다.

 

1928년에 그어진 레드라인 협정 /위키피디
1928년에 그어진 레드라인 협정 /위키피디

 

1차 대전 직후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석유개발에 나섰다.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소련 공산당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름을 양산했다. 멕시코도 석유를 증산했고, 베네수엘라에서도 석유가 발견되었다. 전후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산업 부흥기를 맞으며 석유수요가 늘어났지만, 공급이 늘 수요를 초과했다. 국제유가는 원가 이하로 떨어졌다.

1928, 미국 엑슨의 CEO 월터 티글(Walter C. Teagle)BP의 캐드먼(John Cadman), 로열더치셸의 디터딩(Henri Deterding)을 스코틀랜드의 아크나캐리 성으로 불렀다. 그들은 한적한 성터에서 2주간 사냥도 하고 회담을 했다. 그해 917일 초 티글과 캐드먼, 디터딩의 세 CEO는 하나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들은 합의 내용에 대해 비밀을 지켰다. 이 비밀은 24년후인 1952년에 밝혀졌는데, 이 세 석유메이저의 협정을 아크나캐리 협정(Achnacarry Agreement) 또는 현상유지(As-Is)에 합의했다 해서 애즈이즈 협정(As-Is Agreement)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아크나캐리성 /위키피디아
스코틀랜드의 아크나캐리성 /위키피디아

 

이들이 합의한 비밀 협정의 골격은 생산할당제다. 생산 과잉은 지나친 가격경쟁을 유발한다, 가격 인하는 원유생산업자에게는 파괴적이다, 따라서 세 회사는 원유 생산과 판매에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7개 조항에 합의했다. 현재 각사의 영업 규모를 용인하고, 장차 생산량을 늘릴 경우 현재의 비율을 기준으로 배분한다, 설비를 증설할 경우 수요 증가를 고려해 소비자에게 효율적으로 공급하는데 필요한 만큼에 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4)

 

석유메이저들이 1920년대에 설정한 레드라인 협정과 아크나캐리 협정은 국제석유카르텔의 시초다. 이 카르텔의 원칙들은 2차 대전 이후 산유국들이 OPEC을 결성한 이후 국제석유시장을 컨트롤할 때 그대로 적용되었다.

 


1) Wikipedia, Iraq Petroleum Company

2)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앤써니 심슨, 책갈피(2000), P101

3) Wikipedia, Red Line Agreement

4)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앤써니 심슨, 책갈피(2000), P10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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