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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봉학 설득에 아몬드 소장, 북한주민 승선 명령…한국의 쉰들러
흥남철수 작전에 기적을 이뤄낸 통역관 현봉학
2020. 11. 19 by 박차영 기자

 

서울역 앞 연세세브란스빌딩에 현봉학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현봉학(玄鳳學, 1922~2007)6·25 때 흥남철수 작전에서 피난민 98,000명을 구한 인물이다.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는 그는 함흥고보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했다. 해방 후 가족과 함께 38선을 넘어 월남했고, 1947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일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립의대에 유학, 2년 후 임상병리학 펠로우십을 수료했다.

1950628일 서울 함락 때, 부산으로 피난해 현지에서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통역관으로 미 제10군단장 에드워드 M, 아몬드의 민사부 고문으로 활동했다. 흥남 철수 작전 당시인 19501223일에 그는 아몬드 소장에게 북한 주민의 승선을 간곡히 설득했다. 아몬드 소장은 그의 설득에 닥터의 말은 알아들었다. 나는 피난민 문제와 관련한 닥터의 말에 전면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북한 피난민들의 승선을 허락했다.

이때 북한 피난민 98,000명이 미군 군함을 타고 남하하게 되었다.

당시 흥남부두는 미군과 한국군 105,000명과 피난민 9만명으로 혼잡한 상태였다. 미국 군함과 비행기가 중공군에 폭격을 하는 동안 군함과 상선 약 200척이 흥남 철수 작전에 동원됐다. 당시 피난민이 함께 승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현봉학은 자신이 승선하고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P. 라루 선장에게 최대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을 태워 구출해 달라 간곡하게 요청했고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령했다.

피난민들도 자신의 짐을 버리고 승선해 2,000명이 정원인 배에 모두 14,000명이 탔다. 피난민이 승선하는 동안 미 육군 3사단은 후방을 방어하다 3명이 죽었으며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8시간 동안 항해해서 부산항으로 이동했다. 음식과 물, 이불, 의약품이 모두 부족했으며 선원들은 옷을 벗어 여성과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하루 뒤인 12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난민으로 가득찼다는 이유로 입항이 거절됐고, 하는 수 없이 50마일을 더 항해해서 크리스마스인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들을 하선시켰다.

이틀간의 철수 과정 중 피난민들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선박 구석구석뿐 아니라 차량 밑, 장갑차 틈에서 서로의 웅크린 몸에 의지하며 버텼던 지옥같은 시간이었지만 '모세의 기적' 처럼 홍해를 건너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었다고도 회고한다.

이 철수 작전 이후 현봉학은 '한국의 쉰들러'라고 불리었다. 이틀간의 항해 도중 아기 5명이 태어났다.

 

서울역 앞 연세 세브란스 빌딩 앞의 현봉학 동상 /박차영
서울역 앞 연세 세브란스 빌딩 앞의 현봉학 동상 /박차영

 

그는 그후 펜실베이니아에서 레지던트를 거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에서 병리전문의로 일했고, 1961년부터 1962년까지 뉴저지주 플레인필드에 있는 뮐렌버그 메디칼센터의 병리전문의로 일했고,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병리학 및 혈액학 교수로 재직했다. 연세대 의대 객원교수도 역임했다.

그는 20071125일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별세했다.

20161219일 서울 세브란스 빌딩 1층에서 현봉학 선생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대표는 부모님이 그 날 흥남부두 철수선에 오르지 못했다며 오늘의 나는 없었다현봉학 박사님으로 인해 수많은 피난민이 자유를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상 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미 제10군단장 아몬드 소장은 현 박사와 포니 대령의 설득으로 군수물자 대신 피란민 전원을 태워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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