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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
공동통화 창설로 대등한 금리 적용…재정수지에 기교 부릴 여지 남겨둬
유럽 재정위기②…불완전한 통화, 유로
2020. 12. 11 by 김현민 기자

 

199911일 아프리카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 해외영토 레위니옹(Réunion)에서 유로화가 첫 거래된 것을 계기로 유럽 11개국이 이날부터 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되는 2009년에 유로화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리스가 국가파산의 위기에 놓이고,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이른바 PIGS 국가들의 국가부채가 도마 위에 올랐다. PIGS는 국가부채가 많은 유럽국가의 이니셜을 딴 용어로, PIIGS 또는 GIPSI라고도 지칭했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 본질적으로 국제수지의 문제로 진단했다. 그는 유로화가 창조되면서 자본이 남쪽으로 흘렀고, 따라서 유럽 남부국가들이 과대평가되었다고 보았다.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을 유로화의 문제로 본 것이다.

미국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도 애초부터 유럽 통화제도에서 재정위기가 파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유로화는 불완전한 통화이고, 통화가치를 지탱할 안전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19991월 유로화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11개국의 통화는 각자 일정한 환율로 유로로 대체되었다. 처음에 유로를 사용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핀란드, 아일랜드였다. 그리스는 2년 후인 20011월에 유로로 통용했다.

유로화를 창시하는데 이론적 뒷받침을 한 독일의 경제학자 오트마르 이싱(Otmar Issing)은 유로화의 단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유로화가 통화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며, 정치 공동체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고 말혔다.

유로화는 정치적 동맹이 결여한 상태에서 창설되었다. 1992년에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Maastricht Treaty)에 의해 회원국들이 재정적자를 GDP3% 이내로 유지하고, 국가부채를 GDP60% 비율을 맞춘다는 전제하에서 유로화가 발행되었다.

국가경제를 운용하는 거시경제의 수단은 환율, 금리, 재정의 세가지로 대별된다. 이중 환율 수단은 공동통화를 채택했으므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금리는 유럽중앙은행(ECB)를 두었기 때문에 단일 금리가 적용되었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수단은 재정인데, 마스트리히트 조약 기준 내에서 운영이 가능했다.

 

유로존 국가 /위키피디아
유로존 국가 /위키피디아

 

하지만 이 시스템은 시간이 흐르면서 불균형이 발생했다. ECB는 회원국들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준수한다는 믿음에서 회원국들이 발행하는 국채를 자체 할인 창구를 통해 동일한 조건을 매입했다. 은행들은 회원국이 발행한 국채를 무위험 자산으로 판단하고 경제력이 취약한 나라의 국채도 매입했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른바 PIGS의 국채가 대량으로 매입되었고, 이들 나라도 보다 잘사는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수준으로 금리를 낮췄다.

자동적으로 돈이 PIGS 국가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PIGS 나라는 싼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메웠다. 이에 비해 독일은 통일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긴축재정 정책을 취했다. 독일과 PIGS 국가 사이에 재정건전성 격차가 벌어졌다.

이러한 불균형은 10년간 덥혀 있었다. 유로 가맹국들은 서로의 약속을 믿었고, 금융기관들은 그 약속에 도취해 대출을 해주었다. 동일한 금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독일에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반면에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선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저금리로 돈을 쓸수 있게 되면서 PIGS 국가의 주택 시장에 버블이 형성되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위키피디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위키피디아

 

조지 소로스는 유로존에 공동의 중앙은행(ECB)는 있지만, 공동의 재무당국이 없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회원국들은 통화를 같이 쓰고 단일 금리를 적용했지만 갂구이 재무부를 별도로 운용했다. 국가별 신용도가 달랐다. 하지만 자금의 융통에선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예컨대 유럽의 은행들은 스페인에 1,000억 유로를 공급했는데, 그 중 절반이 독일과 프랑스 은행에서 나갔다. 독일과 프랑스는 채권국, PIGS는 채무국의 상황이 누적되어 갔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재정구조가 취약한 나라에선 잘사는 나라와 대등한 구조인 것처럼 변해갔다. 유럽 단일시장은 성공한 듯 보였다. 21세기엔 유럽 국가들이 연합해 미국을 추월해 세계의 경제패권을 쥘 것이란 기대가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이런 기대와 희망은 20089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미국 금융시장의 결빙은 유럽금융시장에도 파급되었다. 전세계 금융시장에 빙하기가 닥쳐 왔다. PIGS 국가에 흘러가던 자금도 얼어 붙었다.

유럽에 공동 재무당국이 없는 문제점이 이때 드러났다. 유럽의 각 정부는 자국의 은행부실을 해결하는데 개별적으로 대응했다. 유럽 재무장관들이 모여 공동의 노력을 하지고 논의했지만 독일이 반대했다. 독일의 입장에선 자국 납세자가 낸 돈으로 남의 나라 은행 부실 해결에 쓸수 없었다. 독일은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했기 때문에 정부 돈으로 은행을 구제했지만 재정구조가 취약한 아일랜드, 그리스에서 은행들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 환율과 금리 조정 수단을 잃었기 때문에 PICS 국가들은 재정으로 경제를 추슬러야 했다. 그것도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범위 안에서 운용해야 했다.

 

유럽연합은 국가이기주의를 유지한채 경제적으로 통일을 시도한 연합체였다. 회원국들은 평등하지 않았다. 독일이 주도했고 프랑스가 협조하고, 그 외의 나라들은 따라가는 구조였다. 유럽연합은 경제원리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1, 2차 대전을 유럽 땅에서 치르면서 그들은 화해를 원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등장한데 대한 자구책으로 결성된 공동체였다. 각국에 인위적으로 재정 평준화를 요구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와 같았다. 침대 크기에 맞춰 재정을 운용해야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살짝 속이는 나라가 나왔다.

 

유로존 회원국들의 장기채(10년물) 금리 추이 /위키피디아
유로존 회원국들의 장기채(10년물) 금리 추이 /위키피디아

 

200910월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정부는 국가부채가 GDP12.7%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3% 기준을 크게 벗어난 것이다. 그동안 국가간 약속을 신뢰했던 뱅커와 투자자들이 그리스를 불신하고, 다른 나라의 채무상황도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 스스로 약속한 재정건전성 유지에 대산 신뢰가 깨지면서 유로는 출범 10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파판드레우 정부는 전정부의 거짓을 솔직하게 인정했지만, 오히려 그 유탄을 맞게 되었다.

EU통계국(Eurostat)이 그리스 재정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그 조사에서 그리스는 수년간 EU의 재정규칙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골드만 삭스와 여러 은행들이 재정적자를 덮어줄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해 그리스 정부에 소개했고, 그리스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중 하나가 크로스커런시스왑(cross currency swap)이었는데, 그리스의 채무를 달러나 엔화로 전환시켜 부채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 기준은 EU회계기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리스 위기는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유럽 은행은 물론 역외은행들도 그리스는 물론 채무과다국에 대한 대출을 회수하고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았다. 유로라는 공동통화를 통해 회원국들의 균형화를 이룰 것이란 가설은 깨지고 말았다.

 


<참고자료>

Wikipedia, History of the euro

Wikipedia, Maastricht Treaty

Wikipedia, Greek government-debt crisis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 조지 소로스, 지식트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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