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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세계
일제의 한반도 침략 수단으로 착공…토지매입, 자제조달에 약탈적 수탈
한반도 철도사②…경부선 부설에 조선인 저항
2020. 12. 24 by 김현민 기자

 

일본에 최초로 건설된 철도는 1872년 도쿄 신바시에서 요코하마까지 짧은 구간이었다. 조선의 수신사 김기수가 1876년에 타고 깜짝 놀란 것도 이 철도였다. 이후 일본은 철도라는 신문물의 우수성을 확인하게 된다. 일본인들은 열도 전역에 철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한반도 참략의 수단으로 철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일본인들이 경부철도 건설에 앞서 한반도를 정탐한 것은 1880년대였다. 일본인 마쓰다 고조(松田行藏) 등은 1885(고종 22)에 조선에 들어와 4년에 걸쳐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세·교통·민정 및 경제 상황을 은밀히 조사하고 돌아갔다.

일본군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1892년에 군대군수품 등의 수송을 위해 서울~부산 사이에 철도를 부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첩보전의 귀재인 가와카미는 부산주재 총영사 무로다 요시후미(室田義文)에게 경부노선 예정지를 답사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내한한 일본인 철도기사 고노 덴바(河野天端) 등은 사냥꾼으로 가장해 서울부산 간 철도부설 예상지역을 면밀히 답사했다. 이들이 답사한 코스는 서울~용인~청주~문의~상주~대구~밀양~삼랑진~부신진이었다. 비밀 답사팀은 측량 도면과 함께 보고서를 작성해 본국 정부에 제출했다.

이 시기에 러시아는 유럽에서 극동 블라디보스톡까지 시베리아 철도 건설에 착수했고, 중국은 영국에서 차관을 얻어 베이징에서 만주 봉천(奉天)에 이르는 경봉철도(京奉鐵道)를 추진했다. 일본은 한반도에 영향권을 확대하기 위해 경부선 부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경부선 남부 기공식(1901년 9월 21일) /위키백과
경부선 남부 기공식(1901년 9월 21일) /위키백과

 

곧이어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 청나라와 일본군이 조선에 진주하고, 청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청일전쟁 발발과 동시에 일본군은 18947월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정권을 수립했다. 820일 일본과 친일 정부 사이에 조일잠정합동(朝日暫定合同)이라는 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은 경부선과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했다.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 야전사령관들은 조선에서 철도부설, 특히 경부철도의 부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에 파견된 일본군 사령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는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부산에서 경성(서울)을 지나 의주에 이르는 철도의 중요성을 보고했다. 경부철도에서 경의철도까지 연장개념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야마가타는 일본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주권선과 이익선이란 개념을 설정했다. 야마가타는 이익선의 초점을 조선에 두고 각국의 행위가 일본에 불리하게 작용할 때에는 일본이 책임을 느끼고 이를 배제해야 하며, 부득이한 때는 무력을 사용해 일본의 의지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는 조선이 위태로워지면 일본의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경부철도 부설권을 얻은 후 청일전쟁 기간인 189410월에 4개 팀으로 나눠 서울~인천, 영등포~청주, 청주~대구, 대구~부산 간을 답사했다.

 

경부선 구간 /위키백과
경부선 구간 /위키백과

 

1895년 일본은 경부·경인철도 세목협정 교섭안을 조선 조정에 제출했는데, 그 안에는 철도의 소유권은 조선 정부가 갖되, 일본이 지불한 건설비용을 모두 상환할 때까지 최소 50년간 일본이 철도 영업권을 장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소유권을 형식적으로 조선에 주기로 한 것은 조선인들의 저항을 피해보자는 것이었다.

일본의 조선 철도 독점권에 영국, 미국, 러시아, 독일 등 서구 열강들이 반발했다. 이들 국가는 18955월에 조선 조정이 일본에게 철도부설 배타권을 양도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1898년에 러시아는 조선에서 일본의 상업상·공업상 우위를 인정하게 된다.

1898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에게 철도문제 해결을 건의하고, 그해 9월 조선과 일본은 경부철도합동(京釜鐵道合同)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에는 경부선 부설에 일본의 독점적, 패타적 권리를 인정했다.

 

경부선 개통식 (1905년 5월 25일) /위키백과
경부선 개통식 (1905년 5월 25일) /위키백과

 

일본은 경부선을 건설하기 위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8967월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155명의 발기인이 조직되고, 발기 위원 8명이 발기인총회를 열어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0010월 총회에서 가정관이 의결되고 19016월 자본금 2,500만 원으로 경부철도주식회사가 정식 설립되었다. 자본금 조달은 주식회사 간부들이 애국 공채를 파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외자 도입 없이 달성할 수 있었다.

 

1899년 경부철도주식회사는 또다시 답사에 나섰다. 첫 답사는 서울~노량진~수원~공주~논산~진산~금산~영동~대구~밀양~부산에 이르는 총 294마일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충청도를 우회하는 긴 노선을 구상했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경부선의 직선화를 요구했다. 서울~부산을 최단거리로 이동해야 하고, 경의선이 건설되면 만주까지 곧장 군대와 물자를 수송한다는 게 군부의 주장이었다. 1900년 이후 답사는 직선거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경부선 기공식은 1901820일에 서울 영등포에서, 다음날인 921일에 부산 초량에서 이틀에 걸쳐 열렸다.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관민은 거세게 저항했다.

일본은 철도 부지를 매입하는데 민간 토지를 거저 빼앗다시피 했다. 경부철도주식회사는 일본인 소유지에 대해서는 평당 70~120, 외국인 소유지는 17월으로 평가한데 비해 조선인 소유지는 7전으로 평가해 매입했다. 조선인들은 시가의 10분의1 또는 20분의1에 불과한 가격으로 보상을 받고 삶의 터전에서 내몰렸다.

일본은 또 철도공사에 조선 농민들을 저임금으로 동원했다. 일본인 인부에게는 하루 130전을 지급한 반면에 조선인 인부에게는 20전을 지급했다. 심지어 현금 수송이 어렵다는 이유로 환전증표나 군용수표를 지급해 나중에 휴지조각이 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철도 부자재인 침목을 구입하는데도 일본은 삼림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산주의 허락도 없이 목재를 징발했다. 또 농가의 소나 말을 징발하고 목초를 수탈했다.

이렇게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마구 수탈했기 때문에 일본의 철도건설비는 국제적으로 최저의 비용을 기록하게 되었다. 19세기말 1마일당 철도건설비용은 세계평균 16만원이었으나, 경부경의선 철도건설비는 31,000원에 불과했고, 일본 군대의 운용비용과 소송비를 감안해도 61,000에 지나지 않았다.

 

이같은 징발에 조선인들의 반발도 컸다. 철도 연변의 주민들은 정거장을 공격하고 파괴하기도 했다. 경부철도 관통예정지인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지에는 토지 침탈에 대한 동학 농민군의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서울에서는 남대문정거장(서울역) 예정지 근처의 주민 500여명이 가옥과 분묘 철거에 반대해 한성부에 집단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부산에서는 부산진과 초량 정거장에서 소요가 벌어지기도 했다. 천안 소정리역에는 의병들이 역사를 불태우기도 했고, 오산역과 진위역도 의병의 공격을 받았다.

 

서울역사 /문화재청
서울역사 /문화재청

 

이같은 저항으로 1902년 말까지 북부에서는 51.5, 남부에서는 53.1만이 완성되었다. 이에 일본은 조선 조정을 압박해 고종은 19031228일에 경부철도를 1904년까지 완공하라는 경부철도 속성칙령(速成勅令)을 발표하기도 했다.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일제는 군사상의 필요에 따라 공사를 서둘러 강행했다. 경부철도는 조선인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착공 3년여 후인 19041227일 완공되었다. 190511일을 기해 전 노선이 영업을 개시했는데, 그 해 5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서울역) 광장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경부선이 개통되자 해 911일에는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을 매체로 경부철도와 일본철도를 연결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박종철, 한반도 철도부설과 제국주의의 경쟁과 음모, 2008, 리북

이수석, 일본제국저의 정책과 한반도 철도건설의 역사 2008, 리북

이철우, 일본의 철도부설과 한국민족주의의 저항, 2008, 리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부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경부선 부설

위키백과, 경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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