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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세계
프랑스에서 조선, 일본으로 넘어가…러일전쟁 발발후 군용철도로 건설
한반도 철도사③…러일 각축장이 된 경의선
2020. 12. 25 by 김현민 기자

 

일본이 경의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청일전쟁을 치르면서였다. 그들은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해 만주로 직행하는 철도를 놓아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할 구상을 하게 된다.

청일전쟁 도중인 1894년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한 상태에서 위압적으로 경부선 부설권을 가져갔지만, 경의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의선은 한반도 북부를 연결하는 지리적 특성상으로, 삼국간섭 후 영향력을 증대시킨 러시아의 견제가 컸다.

 

러시아는 1891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철도를 착공하면서 블라디보스톡에서 원산을 연결하는 함경선을 지선으로 깔아 원산항을 부동항으로 사용할 것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청일전쟁 이후 바뀌었다. 러시아는 삼국간섭 후 청나라로부터 동청철도와 남만주지선 부설권을 얻은 후 요동반도 남단 뤼순(旅順)을 종착역으로 할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로선 굳이 함경도에 철도를 건설해 원산항까지 연결할 필요성이 없어 지게 되었다.

대신에 러시아는 일본이 경의선을 부설하려는 시도를 저지하는데 주력했다. 18962월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파천하고 조선 백성들이 친일 관료 김홍집(金弘集)을 타살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러시아는 넝쿨째 굴러온 고종을 뒤에서 조종하면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경의선 건설에 러시아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 다만 삼국간섭의 또다른 축인 프랑스회사 피브 리유(Fives-Lille)에 경의철도 부설권을 주도록 압력을 가했다. 고종도 이에 응했다. 18967월 조선은 프랑스회사와 경의철도합동을 체결해 경의선 부설권을 양도했다.

그러나 리브 리유는 자본 조달에 실패했다. 계약기간 3년이 되도록 공사를 착수하지 못하자 프랑스회사는 부설권을 비싼 값에 매각하려 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프랑스가 제3의 회사에 매각하는 것을 반대하며 부설권 반환을 요구했다. 프랑스 회사는 철도건설에 필요한 물자를 자기네 회사에게서 구입혹 프랑스인 철도기사를 감독으로 고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프랑스측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1899623일 경의선 부설권을 회수했다.

 

경의선 일산역사(국가등록문화재 제294호) /문화재청
경의선 일산역사(국가등록문화재 제294호) /문화재청

 

이 무렵 국내 자본들도 철도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박기종(朴琪淙)이다.

박기종은 수신사 김기수의 역관으로, 일본에 따라가 신문물을 접하고 이를 조선에 도입하려고 했다. 그는 민족자본으로 국내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18985월 부하철도회사(釜下鐵道會社)를 창립했다. 박기종은 부산과 하단포(下端浦)를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을 추진했지만 자금난으로 사업을 계속할수 없었다.

박기종은 여기서 굴하지 않았다. 그는 민족자본가 10여명과 함께 프랑스 회사에게서 반환받은 경의선 부설권을 달라고 조정에 청원을 넣고, 18997월에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했다. 조선 조정은 경의선 부설권을 외국에 매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대한철도회사에 경의선 부설권을 허가했다.

그러나 대한철도회사는 자본을 조달하지 못해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19009월에 궁내부 내장원(內藏院)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이 기관에 경의선과 경원선 사무를 관할토록 결정했다.

서북철도국에는 이용익(李容翊)이 총재로 부임했다. 이용익은 자력으로 철도를 부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가 해관수입(관세)를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일본도 차관을 제공하겠다 했지만 거절당했다. 1마일이라도 자력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다만 그는 피브 리유에 기술만 지원토록 요구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19023월 서북철도국은 경의선 공사를 착공했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국가등록문화재 제78호) 문화재청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국가등록문화재 제78호) 문화재청

 

공사는 시작되었지만 경의선 부설권리는 여전히 대한철도회사에 있었다. 조선의 관리들은 당시 서구식 계약에 익숙치 않았다. 일본의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이 점을 착안했다.

일본의 공작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서북철도국이 진행하는 경의선 공사를 대한철도회사에 이관하도록 조선 조정에 대해 온갖 협박과 회유를 했다.

일본은 대한철도회사 간부인 박기종, 장현철, 홍긍섭에게 차관을 주는 조건으로 회유했다. 대한철도회사는 서북철도국의 철도부설권을 다시 맡겨줄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조정에 제출했다. 아울러 자금조달 계획과 철도공시 시행방법 등 22개 상세 내역을 담은 대한철도회사장정을 제출했다.

대한철도회사는 일본 제일은행(第一銀行)과 차관계약을 체결해 40만원을 융통했다. 박기종 등은 온갖 인맥과 자금을 동원해 조정가 접촉했다. 그들은 황실에 매년 5만원의 보조비를 상납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조선황실은 19037월 서울~평양간 철도건설을 대한철도회사에 맡깉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어 다음달에 대한철도회사와 서북철도국 사이에 대한철도회사전담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이미 진행중인 서울~개성간 철도공사는 대한철도회사가 계승하게 되었고, 서북철도국은 감독관청으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어 19039월에 일본은 제일은행을 내세워 대한철도와 경의철도차관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경의선 부설권은 일본 자본에 놀아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자본을 앞세워 술책을 보리는 교활함이 드러났지만, 대한제국 황실의 무능함도 동시에 보였다.

 

경의선은 민감한 철도였다. 일본은 경의선을 통해 만주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고, 러시아는 이 철도가 자국의 영향권에 든 만주를 턱밑에서 찌르는 창끝과도 같았다.

일본이 경의선을 노릴 때, 러시아도 경의선 부설권을 자국에게 양도할 것을 조선에 요청했다. 경의선 부설권이 일본에 넘어갈 무렵, 러시아는 북위 39도 이북을 중립화하자면서 경의선을 평양까지만 놓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경의선을 만주 철도와 연결할 것을 러시아에 요구했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의 철도문제를 놓고 일본과 러시아는 6개월 동안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되었다. 두 나라의 팽팽한 대립은 결국 전쟁으로 비화했다.

 

1909년 1월 31일 경의선 정주역에서 승차하고 있는 순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 /문화재청(순종황제의 서북순행)
1909년 1월 31일 경의선 정주역에서 승차하고 있는 순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 /문화재청(순종황제의 서북순행)

 

190424일 일본은 어전회의를 열어 러시아와 전쟁을 결의했다. 전쟁의 28일 일본 해군의 뤼순항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군대와 군수물자 수송을 명분으로 경의선을 군용철도로 부설할 것을 결정했다. 개전 2주후 일본은 대한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했다. 한일의정서에 의거해 일본은 한국에서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징집했고, 서울~의주간 군용철도 건설에 착수했다.

일본은 서둘러 경의선 건설에 착수했다. 1904221일 일본은 경의선 군용철도 부설을 위해 임시 군용철도감부를 설치하고 34일 철도대대를 상륙시켜 경의선 부설에 착수하였다. 대한제국은 312일 군사상 필요하다는 일본의 강요에 50년간의 임대 조약을 맺고 일본에게 경의선 부설권을 부여했다.

일본은 철도부설권을 빼앗다시피한 후 공사를 급속도로 진행시켰다. 실제 답사를 통한 정밀한 조사를 하지 못한 채 5만분의1 지도만으로 측량을 했다. 1904312일 용산개성 사이, 49일 개성평양 사이, 625일 평양신의주 사이의 노반공사에 착수해 1028일 용산임진강 사이에 철도건설을 위한 임시 열차가 운행되었다.

 

워낙 급하게 공사를 하다보니 반발도 심했다. 경의선은 전쟁 중에 부설되었기 때문에 토지수용의 규모와 잔혹함은 경부선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경기, 황해, 평안도에선 철도부지에 편입된 전답과 민가에 3일내에 모두 철거하라고 요구해 주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보상가액도 시세의 10분의1도 되지 못했다. 이 가격으로 가옥을 새로 마련하거나 분묘를 이장할수도 없었다.

조선인들의 저항도 강렬했다. 고양군에서는 열차운행을 방해했고, 고양군과 교화군에서는 군민들이 역부 모집에 항의해 관사에 난입해 일본인들을 살상했다. 저항이 극에 달하자 일본은 철도를 파괴하는 자에 대해 군율에 따라 사형, 감금, 추방, 곤장 등을 집행하는 등 혹독하게 조선인들을 다뤘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05126일 평양신의주 간의 철도가 완성되었고, 329일 대동강철교가 준공되었으며, 428일 청천강·대령강의 두 철교를 제외하고 전노선이 준공되었다. 그후 1906325일 최대 난공사였던 청천강철교가 준공됨으로써 전구간에서 열차가 운행되었다. 경의선 건설에는 총 733일이 소요되었으며, 하루 평균 730m의 선로를 부설한 초특급 건설공사였다.

 


<참고자료>

박종철, 한반도 철도부설과 제국주의의 경쟁과 음모, 2008, 리북

이수석, 일본제국주의 정책과 한반도 철도건설의 역사, 2008, 리북

이철우, 일본의 철도부설과 한국민족주의의 저항, 2008, 리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의선

문화원형백과,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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