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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차례 내전에 미국, 영국, 독일 개입하면서 분리…동서 사모아 냉랭한 관계
태평양 섬나라④…분단된 채 독립한 사모아
2019. 05. 11 by 김현민기자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Samoa)는 인종과 언어를 함께 하는 섬들이 동서로 나뉘어 한쪽만 독립한 나라다. 서쪽의 사모아는 196211일부로 서사모아 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Western Samoa)라는 명칭으로 독립했지만, 동쪽의 사모아(American Samoa)는 미국의 미편입 영토(unincorporated territory)로 남아 있다.

서사모아는 두 개의 큰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면적은 2,842로 제주도보다 넓고, 동사모아는 199로 진도보다 약간 크다. 인구는 서사모아에 196,000, 동사모아에 55,000명 정도다. 독립한 서사모아가 더 넓고 더 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 하지만 1인당 GDP에선 미국령 동사모아가 13,000달러로, 독립한 서사모아 6,000달러보다 두배 이상이다. 아무래도 미국이 자국령에 자금 지원을 많이 했을 터다.

통화단위도 다르다. 미국령 사모아는 미국 달러를 통용하는데 비해 독립한 서사모아는 탈라(Tala)라는 독자적 통화를 쓴다.

서사모아는 199774일 나라 이름에 ’(Western) 자를 떼고, 사모아 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Samoa)으로 바꾸었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국령 사모아에 골을 지른 셈이다. 당연이 동사모아측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미국은 사모아를 아직도 서사모아라고 부르는데, 인터넷 도메인과 ISO 국제표준 등에서 사모아독립국은 WS 또는 ws의 기호를 부여받고 있다.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음은 불문가지다. 미국은 동사모아 주민들이 독립을 원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미국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동서 사모아를 합친 사모아 군도 /위키피디아
동서 사모아를 합친 사모아 군도 /위키피디아

 

원래 동-서 사모아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그런데 18세기말에 추장들 사이에 두차례의 내전이 발발했다. 여기에 독일과 영국, 미국등 식민세력이 어느 한쪽 편을 들면서 개입하면서 갈라졌다.

1차 내전은 1886~1894년 사이에 8년간 치러졌다. 추장들 사이에 왕위 다툼이 벌어졌는데, 영국과 미국은 한편을, 독일은 다른 편을 각각 지원하면서 내전은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독일이 상대방 부락을 포격하면서 미국인 재산을 파괴했고, 이에 맞서 미국도 참전했다. 3국의 해군이 1889315일 사모아 군도의 수도인 아피아(Apia) 항에 대치해 있을 때 태풍(사이클론)이 몰아쳐 독일과 미국 전함 6척이 침몰했다. 3국은 급히 모여 더 이상 전투를 벌이지 말고, 말리에토아 로페파(Malietoa Laupepa)를 국왕으로 옹립하기로 합의했다. 그후 사소한 전투가 더 벌어졌지만, 확전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1898822일 로페파 국왕이 사망했다. 그 후임을 누가 차지하는지가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로 되었다. 동양식 왕조국가라면 선왕의 아들이 후임국왕이 될 터인데, 사모아 군도는 국왕 선임에 관한 구체적 관습이 없었다. 이에 1차 내전때 숙청되었던 추장 마타파 로세포(Mata'afa Iosefo)가 반기를 들었고, 독일이 그의 편을 들었다. 미국과 영국은 선왕의 왕자를 밀었다.

추장들 간 내전에 또다시 강대국들이 끼어들었다. 반란군이 공격을 개시하자, 아피아 항에 정박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 전함을 반란군 부족에 포격을 가했다. 전투는 영미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과 영국, 독일은 종전 회담을 열어, 사모아 군도에 군주제를 폐지하고, 섬들을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서사모아는 독일이 갖고, 동사모아는 미국령으로 하되, 영국은 사모아 군도에 영유권을 포기하되 아프리카에서 독일령을 넘겨받기로 했다.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1914년 서사모아는 영연방 국가인 뉴질랜드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서사모아인들의 독립 요구가 거세지면서 1962년 영연방 국가로 독립하게 되었다.

사모아가 열강의 영토분쟁에 휩싸인 것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가 컸다. 18세기에 포경선과 무역선들이 망망대해에서 물과 휴식을 위해 쉬어갈 곳으로 사모아 군도를 찾았다. 먼저 대양을 제패한 영국, 뒤늦게 뛰어든 미국과 독일이 이 섬을 차지하려고 뒤엉켰다.

 

사모아인들 /위키피디아
사모아인들 /위키피디아

 

독립 후 이나라의 국체는 군주제인지, 공화제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 헌법상으로는 유럽식 의회공화제를 채택하지만, 대추장을 국가수반으로 모시는 군주적 관례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총리들은 대추장 가문에서 나왔고, 총리를 오랫동안 역임한 후 국가수반(head of state)에 상징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국가수반이 반드시 한명은 아니다. 어느 특정 부족이 섬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모아독립국 국기(왼쪽)와 미국령 사모아 기 /위키피디아
사모아독립국 국기(왼쪽)와 미국령 사모아 기 /위키피디아

 

사모아 군도는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할 때 가장 먼저 정주한 곳으로, 1722년 네덜란드 항해가 로게렌(Jacob Roggeren)이 탐방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유럽인들이 처음 사모아를 방문했을 때 식인 문화가 있었고, 부족간 전투에서 적을 죽이면 목을 잘라 추장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2017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다.

1970년 영국연방에, 1976년 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동쪽의 미국령 사모아를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다. 정식 국가 명칭에 독립국(Independent State)이란 표현을 넣은 것은 동사모아가 아직 미국 식민지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2009년에는 자동차 운행 방향을 우측통행에서 좌측통행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미국령 사모아에서 수입하는 차량을 줄이고, 같은 방향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차를 들여오기 위해서다. 국민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밀어붙였다.

20111230일에는 전격적으로 날짜변경선을 바꾸어 하루를 없애버렸다. 이렇게 되면 미국 하와이나 로스앤젤레스와 날짜를 맞추지 않고 호주와 뉴질랜드와 날짜가 대체로 맞게 된다. 당연히 미국령 사모아와 하루의 차이가 난다. 따로 살자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과 시간대를 30분 차이를 두고 변경한 것과 다름 없다.

 

사모아독립국의 섬들 /위키피디아
사모아독립국의 섬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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