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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
실패한 차베스의 실험③…법절차 무시한 헌법개정, 장기독재의 틀 형성
집권 첫해 헌법 개정하고 사법부 장악한 차베스
2021. 03. 17 by 김현민 기자

 

199922, 우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가 취임후 가장 먼저 한 것이 헌법을 뜯어 고치는 일이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나는 신과 인민 앞에 맹세한다. 새 정부는 이 죽어 가는 헌법을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새 시대에 맞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차베스는 우선 핵심 권력기관에 자기 사람을 심었다. 정보기관 수장, 수도 카라카스 주지사에 1992년 쿠데타 동지들을 지명했다. 야당에선 편가르기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차베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999년 2월 2일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우고 차베스 /위키피디아
1999년 2월 2일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우고 차베스 /위키피디아

 

차베스는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다. 무리하게 개혁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지지층을 확대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차베스는 집권 초기에 경제문제에 당분간 현체제를 유지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중도 내지 중도좌파 기조를 유지하면서 중산층의 지지기반을 얻기 위해서였다. 우선 경제부처와 석유공사 수장에는 전임 칼데라 정권 사람들을 유임시켰다. 그는 IMF의 조건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히고,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방문해 외국인 투자를 호소했다. 차베스의 등장을 우려하던 외국자본가들에게 신자유주의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IMF의 간섭 하에 있던 경제를 안정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빈민들에게 다가갔다. 집권 23일째 되던 날에 그는 볼리바르 2000 계획’(Plan Bolívar 2000)이란 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군대라는 효율적인 집단을 활용했다. 그는 군대가 더 이상 인민탄압의 도구가 아니라 인민해방의 수단으로 본 것이다. 육해공군 7만명을 도로와 병원 보수, 하수도 개량에 동원했다. 빈민들에게 의료혜택 지원과 백신 제공을 보장하고, 싼 가격으로 식량을 공급할 것임을 약속했다.

차베스는 언론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매주 일요일 아침에 대통령입니다’(Aló Presidente)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민들에게 다가갔고,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TV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는 기관지를 만들어 자신의 정책을 시민들에게 홍보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그는 시민의 질문에 대답하고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하면서 소통을 했다.

 

차베스의 눈을 그린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베네수엘라 군대 /위키피디아
차베스의 눈을 그린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베네수엘라 군대 /위키피디아

 

집권 첫해에 그는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조성해 권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에 나섰다.

그는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를 거치지 않고 국민투표라는 수단을 동원했다. 그는 제헌의회 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차베스는 그해 4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71.8%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곧이어 7월에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야당은 총력을 다해 선거에 참여했다. 1,171명의 후보자 가운데 야당후보가 900명에 달했다. 투표율은 38%로 저조했다. 한해 전 대선 투표율 64%에 비하면 기권자가 많았다. 선거결과 차베스를 지지하는 좌파 연합이 131석중 121석을 얻었고, 기존 정당은 7석밖에 얻지 못했다. 3석은 인디오 원주민의 몫으로, 차베스를 지지했다.

 

2개의 의회가 병존했다. 차베스 정권은 기존 의회 의원들의 의사당 사용을 금지시켰다. 야당의원이 의사당에 들어오면 군인들이 내쫓았다. 차베스는 제헌의회만을 정식의회로 인정했다.

새 헌법만 제정하기로 한 제헌의회가 의회를 대신하면서 괴물이 되어 갔다. 차베스는 제헌의회를 앞세워 자신의 정부를 견제하는 기구와 조직을 눌러버렸다. 권력구조의 견제와 균형은 무너졌고, 차베스는 감독기구의 수장들은 부패 혐의로 해임했다.

제헌의회의 역할에 대한 헌법재판이 열렸다. 제헌의회는 사법비상령(judicial emergency)을 선언하고 대법관들을 교체했다. 대법원은 제한적으로 국민투표와 제헌의회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러자 대법원장 세실리아 소사(Cecilia Sosa Gomez)법원은 살해되기를 두려워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며 법원을 통렬히 비판하며 사임했다. 이후 베네수엘라 사법부의 자율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차베스 정권은 기존 의회를 해산할수 없다고 한 대법원 결정도 무시하고 제헌의회에 전권을 위임했다.

 

제헌의회는 신헌법을 제정했다. 새 헌법은 환경, 소수종족 보호,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의 거창한 조항을 대량으로 집어 넣어 조항이 350개나 되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차베스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늘리고, 연임할수 있게 했다. 종전의 헌법에는 대통령은 단임 5년이고, 재선에 나가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또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었다. 의회기능을 약화시킨 것이다.

나라 이름도 뜯어고쳤다. 그전엔 베네수엘라 공화국(Republic of Venezuela)이었는데, 새 나라 이름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Bolivarian Republic of Venezuela)으로 변경되었다.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개정 헌법도 국민투표에 붙여졌다. 199912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50%에도 미치지 못한 투표율에도 72%의 지지를 얻었다.

 

새 헌법에 맞춰 대통령 선거도 다시 해야 했다. 이번 대선의 상대는 야당이 아니라 혁명동지인 프란시스코 카르데나스(Francisco Arias Cárdenas)였다. 카르데나스는 차베스보다 4살이 많았고, 차베스처럼 사관학교를 졸업해 장교로 근무하던 중에 1985년 차베스의 비밀조직 MBR-200(Revolutionary Bolivarian Movement-200)에 가입했다. 그도 1992년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구속되어 칼데라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급진좌파 라디칼코스(Radical Cause) 당의 후보로 1995년 술리아(Zulia)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해방신학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신학 문제로 차베스와 여러번 의견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카르데나스는 차베스의 독주를 비판하며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20007월에 실시된 대선의 결과는 59.8% 37.5%로 차베스의 압승이었다. 20011월부터 차베스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었다.

 

차베스가 2003년 브라질의 한 포럼에서 1999년 헌법 소책자를 들고 있다. /위키피디아
차베스가 2003년 브라질의 한 포럼에서 1999년 헌법 소책자를 들고 있다. /위키피디아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면서 차베스는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돈독히 했다. 차베스는 피델 카스트로와 협정을 맺어 쿠바에 하루 9만 배럴의 원유를 저가에 공급하되, 쿠바의 의료진과 선생 4만명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하는데 합의했다. 베네수엘라의 낙후한 의료시설을 개선하고 문맹율을 낮추기 위한 조치였다. 쿠바도 덕분에 미국의 금수조치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되었다.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밀착은 미국을 긴장시켰다. 미국은 안방이라 생각하는 카리브해에 거대한 좌파동맹이 맺어지는 것을 불쾌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에 미국에서 20019·11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소굴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모든 반미국가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차베스만이 성난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차베스는 자신의 TV쇼에 나와 미군의 공격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 사진을 들고 나왔다. 그는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비난할 자격이 없다.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학살하는 그들이 테러와 싸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미국 국무부는 업무상 협의라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주재 대사를 불러들였다. 뭔가 베네수엘라에 조치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Hugo Chávez

Wikipedia, History of Venezuela (1999present)

BBC, Top Venezuelan judge resigns

Amid Bennaim. The Death of the Autonomous Venezuelan Judiciary, 2020

Wikipedia, Francisco Arias Cárde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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