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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
실패한 차베스의 실험⑤…소수의 손에 작악된 석유대금을 대중에게
유가 고공행진에 취한 베네수엘라의 복지정책
2021. 03. 19 by 김현민 기자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1783~1830)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대항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나마,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독립시킨 남미 독립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우고 차베스는 육사 생도 시절에 볼리바르에 감명을 받고 후에 그의 정치적 신조로 볼리바르주의(Bolivarianism)를 내걸었고, 그의 정치개혁을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차베스는 이 정신을 헌법에도 명문화하고, 나라 이름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Bolivarian Republic of Venezuela)으로 개명했다.

 

차베스의 볼리바르주의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념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19세기 초에 남미 독립지도자들은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하지 않았다. 볼리바르도 혼혈인 크레올(Creole) 계급을 대변해 스페인 대지주의 폭압에 항거했지만, 경제적 평등주의는 내세우지 않았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볼리바르의 이름을 앞세워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토대로 하고 남미 좌파들의 실천적 개념을 혼합해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정립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좌파 정치인이었던 에스키엘 사모라(Ezequiel Zamora)와 시몬 로드리게스(Simón Rodríguez)의 정치이념을 볼리바르주의에 녹였다. 차베스는 또 남미 좌파인사로 콜롬비아의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Jorge Eliécer Gaitán),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체 게바라(Che Guevara),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등을 존경하며 그들의 정치철학과 실천을 도입했다.

차베스는 또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가 전체주의로 빠진 오류를 답습하지 않고,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도 점점 독재의 경향에 빠졌지만, 대중에게서 올라오는 민주적 요구가 사회주의를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보았다. 따라서 볼리바르주의는 구공산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고 현대 남미의 좌파실험을 종합한, 베네수엘라적 사회주의라고 할수 있다. 남미 특유의 협동조합주의를 실현하려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차베스는 두 번째 임기 초기에 시민들의 저항과 쿠데타 시도를 제압한 이후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지정책을 시행했다. 그의 복지정책은 지지기반인 빈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볼리바르 미션(Bolivarian missions)이란 선전구호로 시작되었다. 이 미션은 사회정의 실현, 사회복지 확대, 빈민구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정책을 집행하는데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었는데, 차베스는 운이 좋았다. 국제유가가 치솟기 시작해 기름 생산에서 충분하고 넉넉한 재원이 조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력한 저항을 제압하면서 국영석유회사(PDVSA)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돈 줄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차베스 집권기(1998~2013)의 국제유가 추이 /위키피디아
차베스 집권기(1998~2013)의 국제유가 추이 /위키피디아

 

차베스 정권이 시행한 복지제도는 소소한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웬만한 선진국에서 이미 하고 있는 정책들이다.

- 자원봉사단을 선발해 성인들에게 읽기와 쓰기, 수학을 가르친다.

- 야간학교를 개설해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에게 고교 교과과정을 이행하도록 한다. 2003년에 이 과정에 60만명이 등록했다. 야간학교에서는 문법과 지리학, 2외국어를 가르쳤다.

- 성인들에게 고급교과과정을 무료로 제공한다.

- 에너지 소모적인 전등을 친환경적인 형광등으로 교체한다.

- 저소득층에게 기초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 학대받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사육한다.

- 빈민용 주거단지를 조성해 건설하고 학교등 지원시설을 제공한다.

- 식량, 유제품, 육류 등을 저가로 보급한다. 2007년 이후 식재료 가격이 폭등하자, 차베스 정권은 가격제한 정책을 취했다.

- 전국민에게 신분증을 발급했다. 이 신분증은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에 활용되었다.

- 소수종족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거주지역에 대한 자원파괴를 억제한다.

- 대지주와 대기업 소유의 토지 가운데 휴경지를 빈민에게 배분한다.

-도시 실업자와 빈민을 농촌에 돌아가게 해 농촌경제를 활성화한다.

-숲의 나무를 무단으로 벌목할수 없도록 한다.

-연구자료와 실험실, 소프트웨어를 공개해 40만명의 과학인재를 양성한다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정책과 새마을 운동을 보는 것 같다. 이 정도의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할수 있을까. 인민대중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글자를 가르치고, 의료혜택을 주는 것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의무다. 차베스는 그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경제발전계획을 동반하지 않고 기름값 상승에 의존해 그 수익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만 급급했다.

기름값이 오르는 한 차베스의 복지정책은 성공을 보장받았다. 차베스 집권초기에 배럴당 30달러 대였던 국제유가는 집권말기인 2010년대초반에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정치인과 석유사업자가 독점했던 석유이익의 혜택이 차베스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에 골고루 돌아갔다.

 

베네수엘라 극빈층 비율 추이 /위키피디아
베네수엘라 극빈층 비율 추이 /위키피디아

 

차베스의 복지정책은 분명한 효과를 냈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가늠케 하는 지니계수가 1998495에서 201139로 떨어져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캐나다 다음에 위치했다. 문맹률도 떨어져 15세 이상 인구 중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95%에 달했다. 빈곤률은 199948.6%에서 201332.1%로 떨어졌다.

대중은 환호했다. 기름이 쏟아지는한 정부에서 주는 복지예산을 쓰기만 하면 된다. 국민들은 질 좋고 값싼 외국 제품을 수입해 마구 썼다.

차베스는 기름값 상승에만 신경썼다. 산업화를 추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OPEC의 주도멤버로 감산정책의 강경파였다. 원유 감산정책으로 기름값을 올려 그 수익금을 빨아들여 복지에 쓸 생각만 했다.

 

마르가리타 섬의 베네수엘라 원유시설 /위키피디아
마르가리타 섬의 베네수엘라 원유시설 /위키피디아

 

베네수엘라 경제는 이른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 걸렸다. 네덜란드는 1960년대에 북해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가스 수출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수출대금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기업들은 투자위축을 겪고 결국 경기불황에 빠졌다. 자원보유국이 갖는 이런 현상을 네덜란드 병이라 하는데 베네수엘라도 그 병에 걸린 것이다.

차베스 집권 당시에 석유산업이 GDP에 차지하는 비중이 51~54%에 달했다. 수출에 석유비중이 199777%에서 200689%로 늘어났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면서 외국산 상품이 베네수엘라에 밀려 들어왔다. 국제유가가 내려가면 재정에 적자가 났다. 차베스는 그 부족분을 통화발행으로 메웠다. 차베스 정권에서 이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835.8%, 200112.5%, 200331.1%로 치솟았는데, 그나마 남미 국가 가운데서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다.

물가 가운데 정치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식량 가격이다. 베네수엘라의 식량가격이 치솟았다. 차베스는 빈민들에게 나눠줄 식량과 채소 등 식료품에 가격통제를 실시했다. 그의 복지주의는 말기에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Bolivarianism

Wikipedia, Bolivarian missions

Wikipedia, Hugo Cháv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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