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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붕괴
소련 70년⑨…종전 후 사상-문화 통제, 스탈린 우상화 강화
소련, 2차대전 점령지역에 공산정권 강요하다
2021. 04. 12 by 김현민 기자

 

1942~1943년의 겨울을 넘기는 동안에 스탈린그라드에선 혹독한 전투가 치러졌다. 수십만명의 전사자를 내고 수천대의 전투기와 탱크가 부서진 가운데 전세는 독일에서 소련으로 기울었다. 소련군은 기력을 회복해 서서히 독일을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서부전선에도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독일을 향해 조여갔다.

최초의 연합국 정상회담이 194311월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렸다. 미국의 F.D. 루스벨트, 영국의 윈스턴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참석해 옛 러시아제국의 영토에 대해 논의했다. 세 정상은 폴란드를 독립시키되 1919년 러시아 볼셰비키 정권과 폴란드 사이에 합의한 커즌라인(Curzon Line)을 경계로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또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을 소련과 합병하되, 국민투표를 실시해 결정한다고 약속했다. 스탈린은 속마음으론 테헤란 회담을 무시할 작정이었다.

 

커즌 라인 /위키피디아
커즌 라인 /위키피디아

 

스탈린은 점령지에서 곧바로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동유럽 국가들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반파시스트 우파정당을 모두 아우르는 연합전선 또는 민족전선을 꾸리도록 각국 공산당에 지시했다. 그 일환으로 19435월 국제공산의 기구인 코민테른(Comintern)을 해체했다. 소련이 해방 국가의 민족정부를 전복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다.

 

19447월 소련군은 폴란드 국경에서 독일군과 대치했다. 지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던 폴란드 우파진영은 소련군이 진입하기 전에 폴란드인 스스로 나치 독일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봉기군은 좌파진영의 동조를 얻어냈다.

81일 폴란드 국민군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초기에 국민군은 바르샤바 중심가 대부분을 점령하고 해방시키는데 성공했다.

곧이어 독일군의 무차별적 보복이 전개되었다. 독일군은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하고 진압에 나섰다. 63일간의 전투에서 폴란드 저항군 16,000명이 죽고, 6,000명이 중상을 입었다. 민간인은 15~20만명이 학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Warsaw Uprising)2차 대전 중에 벌어진 최대 잔혹사로 기록되었다.

이때 폴란드에 진입한 소련군은 구경만 했다. 스탈린은 런던에 있는 폴란드 망명정부를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보았고, 우파가 봉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로 군사적 지원을 거부했다. 스탈린은 나치군과 폴란드 봉기군의 전투에서 어부지리를 얻으려 했다.

소련군에 배속되었던 폴란드 제1군이 바르샤바에 진입한 것은 폭동이 진압된 후 19451월이었다. 소련군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바르샤바에 입성했다. 스탈린은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를 수립해 합법정부로 대우하고, 런던 망명정부의 요구를 무시했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임시정부와 망명정부를 포괄하는 자유선거를 실시해 폴란드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제시했고, 루스벨트와 처칠은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선거는 자유롭게 실시되지 않았다. 폴란드의 경찰은 소련 비밀경찰 NKVD의 교육을 받고 지시를 받았다. 폴란드 비밀경찰은 공산정권 수립에 반대하는 사람 4만명을 체포하고 강제수용소에 수감했다. 종전후 1946년의 국민투표와 1947년의 총선은 공산당 감시하에 실시되었고, 결국 폴란드는 소비에트 국가가 되었다.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 때 화염에 휩싸인 건물 /위키피디아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 때 화염에 휩싸인 건물 /위키피디아

 

19455월 독일이 항복한 이후, 소련군은 점령지에서 과거 나치에 부역한 공무원, 사업가, 지주, 민족주의자들을 솎아 냈다. 소련은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면서도 스스로 제국주의적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공산통치 또는 소련의 지배에 저항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은 체포하거나 처형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공산주의자보다 민족주의자들이 더 우세했다. 스탈린은 우선 공산당과 민족주의 정당의 연합 정부를 수립하도록 한 다음 점차 공산당 일당독재로 넘어가는 코스를 취했다.

 

헝가리에선 자작농민을 기반으로 한 소농당(Independent Smallholders Party)1945년 총선에서 57%의 지지율로 제1당이 되었고, 공산당은 17%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소농당과 공산당의 연합정부를 수립하게 하고, 반소비에트 세력을 파시스트 부역혐의를 씌워 제거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공산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 정권을 차지하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소련은 점령지에서 공산정부를 수립했다. 종전 이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소련 연방에 편입되고, 폴란드, 동독,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가가 공산권으로 떨어졌다. 유고슬라비아는 레지스탕스 운동의 자력으로 나치독일에서 해방되어 공산국가가 되었다.

 

1943년 11월 테헤란 정상회의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 /위키피디아
1943년 11월 테헤란 정상회의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 /위키피디아

 

19462월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리대사였던 조지 캐넌(George Kennan)이 국무부에 긴 전문’(The Long Telegram)을 보냈다. 당시 캐넌이 보낸 전문은 2차 대전 직후 소련의 공산화 전략을 경고한 것으로 미국의 대소련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캐넌의 보고 이후 나온 것이 트루먼 독트린이고, 마샬 플랜(Marshall Plan)이다.

마샬 플랜은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샬(George Marshall)의 이름을 딴 계획으로, 유럽 경제 재건을 목표로 유럽국가에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전쟁 복구를 위해 미국의 원조를 받겠다고 나왔다. 그러자 소련이 당황했다. 소련은 서둘러 폴란드와 체코에 협상 테이블에서 빠져나오라고 압박했다. 이리하여 마샬플랜은 서유럽 지역에 한정하게 되었다.

소련은 마샬플랜에 대항하기 위해 공산권국가로 구성된 코민포름(Cominform)을 구성했다. 각국의 정보기관을 소련의 지휘하에 두는 것으로, 소련의 직접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가 알바니아와 불가리아를 합병하고 소련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려 하자, 1948년 유고슬라비아를 코민포름에서 축출했다.

소련은 코민포름 가입국에 소비에트식 집단농장과 경제계획을 강요했다. 세계는 점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으로 갈라져 동서 냉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의 영향권 /위키피디아
2차 대전 직후 소련의 영향권 /위키피디아

 

스탈린은 전쟁에 유럽까지 다녀온 장교와 병사들이 서유럽 사상과 문화를 목격하고 소비에트 체제에 회의를 느끼는 것을 두려워했다.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 때 서유럽으로 진군한 러시아 장교들이 자유사상에 물들어 귀국한 후 데카브리스트 반란(1825)을 일으킨 전례가 되살아 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스탈린은 유럽 땅을 밟은 군인 270만명에 대해 귀국후 사상검증을 실시하고, 이중 사상적으로 불순한 군인 14만명을 추방하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냈다.

스탈린은 전쟁이 끝는후 사회적 통제를 강화했다. 강제노동수용소(굴락)의 수용인원이 전후 5년동안에 100만명 이상 늘어났다. 200만명에 이르는 독일 포로는 임금도 주지 않고 강제노역에 투입했다.

문화적으로 서구문화에 반대하는 예술운동을 벌였다. 즈다노프주의라는 문화운동은 국수주의로 치달았다.

스탈린은 2차 대전에 승리한 후 러시아제국 당시의 대원수(Generalissimus) 자리에 올랐다. 영웅화가 최고조에 이른 1953, 스탈린은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하직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Tehran Conference

Wikipedia, Warsaw Uprising

Wikipedia, Joseph Stalin

Wikipedia, History of the Soviet Union (19271953)

Wikipedia,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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