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아틀라스뉴스
뒤로가기
유럽사
스웨덴과 러시아의 각축장…18세기에 귀족층 중심으로 독립사상 대두
핀란드 역사①…아시아계 종족, 13C에 스웨덴령
2021. 04. 18 by 김현민 기자

 

핀란드는 유럽 북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로, 면적은 338,455, 우리나라보다 3.3배 넓지만 인구는 552(2020)에 불과하다. 북위 60~70°에 위치, 한냉대 기후권을 유지하며, 수도 헬싱키의 기온은 겨울에 영하 30°C까지 내려가고 여름엔 10°C에 머문다. 그야말로 겨울의 나라다. 핀란드는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가 168,000개나 되며, 국토면적의 10%를 호수가 차지한다. 섬도 18만개나 있다.

인구의 92%는 핀족(Finns)이며, 나머지를 유럽인, 아시아인이 차지하고 있다. 핀어와 스웨덴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핀어는 어족(語族)으로 분류하면, 우랄어족에 속해 있고, 포괄적 개념으로 한국어가 포함된 우랄-알타이어계에 속한다. 따라서 핀족은 우랄산맥 근처에 살던 아시아계로 분류된다.

 

814년 경의 북유럽 인종분포 /위키피디아
814년 경의 북유럽 인종분포 /위키피디아

 

12세기까지 핀족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역사통계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핀란드 지역의 인구는 1150년에 2~4만명에 불과했고, 1550년에 30만명, 1750면에 56만명 정도였다고 추측된다. 거주민은 아시아계 핀족이었다.

핀란드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2~13세기에 교황청의 지시로 발트해 지역의 왕국과 공국들이 십자군을 조직, 이교도인 핀족을 교화시키기 위해 원정하면서였다. 가장 먼저 덴마크 왕국의 십자군이 1187, 1191, 1202년에 핀란드를 공격했고, 이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지역의 기사단이 리보니아 십자군(Livonian Crusade)을 조직, 1207년과 1215년에 핀란드를 원정했다. 교황청 문서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왕도 1241년에 야만 지역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종적으로 핀란드를 점령한 나라는 스웨덴 왕국이었다. 스웨덴은 1249년에 핀란드를 공격, 남부 해안을 식민화하는데 성공했다. 핀족은 내륙으로 이동하며 스웨덴에 저항했다.

 

스웨덴 왕국은 핀란드 해안지역을 공작령으로 만들었다. 핀란드 공작은 16세기말에 대공(Grand Duchy)으로 승격한다. 스웨덴의 바이킹족은 핀족을 야만인으로 다뤘다. 핀족은 이교도였고, 개종과 수탈의 대상이었다.

13세기초에 토마스(Thomas)가 최초로 핀란드 주교로 임명되어 파견되었다. 슬라브족의 노브고로드 공화국(Novgorod Republic)이 그리스정교 사제를 파견해 핀족 거주지는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로 이분되었다. 노브고로드는 12~15세기에 핀란드 서부에서 러시아 북부에 걸쳐 있던 그리스정교의 나라로, 공화국 체제를 유지했다.

스웨덴 왕국과 노브고로드는 1323년 국경조약을 맺어 핀란드의 경계를 확정지었다. 이후 핀란드의 서쪽 카렐리아(Karelia) 지방은 노브고로드를 거쳐 러시아 영토가 된다.

스웨덴 왕국은 핀란드 남부에 3개의 성을 쌓고 투르쿠(Turku)를 핀란드 수도로 삼았고, 13세기에 투르쿠에 성당을 세웠다.

1380년대에 바이킹 왕국 간에 전쟁이 벌어져 덴마크의 마르가레트 1(Margaret I) 여왕이 패권을 차지하고, 1389년에 칼마르 동맹(Kalmar Union)을 체결했다. 덴마크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지배했는데, 핀란드도 130년간 덴마크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후 스웨덴 왕국이 덴마크로부터 독립하면서 핀란드는 다시 스웨덴에 복속했다.

15세기말에는 모스크바 공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노브고로드를 제압하고 핀란드 서부를 위협했다.

 

스웨덴 통치시절의 투르크 성 /위키피디아
스웨덴 통치시절의 투르크 성 /위키피디아

 

헬싱키가 건설된 것은 1550년이었다. 덴마크에서 독립한 스웨덴의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 왕은 당시 독일의 한자(Hansa) 동맹에 가입한 탈린(Tallinn, 현재 에스토니아 수도)에 대항하기 위해 어촌이었던 헬싱포르스(Helsingfors)를 상업도시로 개조했다. 구스타브 왕은 부르죠아들을 헬싱키로 이주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핀란드인들은 스웨덴 왕국에서 일어나는 내전, 전쟁에 동원되었고, 세금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의 종교개혁 시기에 독일의 루터파가 핀란드에 유입되었다. 중세 말기에 핀란드 중부 지역에서 타르(tar, 액체 원유)가 채취되었는데, 선박의 목재 보호용으로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타르 채굴업이 발달했다. 타르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권분쟁이 발생해 루터파 교인들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7세기 이후 핀란드는 루터파의 지역이 되었다. 1640년 투르쿠 왕립아카데미(Academy of Turku)가 건립되었고, 이는 후에 헬싱키 대학으로 변신한다. 1642년에는 성경이 핀란드어로 번역되었다.

 

초기의 헬싱키 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초기의 헬싱키 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핀란드가 러시아와 스웨덴의 각축장이 된 것은 18세기부터다. 러시아 제국은 핀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1714~1721, 1742~1743년 두 차례에 걸쳐 핀란드를 공격해 스웨덴 왕국과 전쟁을 벌였다. 두차례의 전쟁에서 최대의 피해는 핀란드인이 겪어야 했다. 헬싱키가 러시아군에 점령되어 불탔고, 젊은이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핀란드 귀족층 사이에 스웨덴에 복속하는 것보다 러시아에 붙는 것이 낫다는 여론이 생겼다. 지배자가 누군들 무슨 소용인가, 더 큰 쪽에 붙어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 가운데 하나가 스프렝트포르텐(Georg Magnus Sprengtporten)이었다.

스프렝트포르텐은 핀란드 태생으로 스웨덴 군의 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1772년 구스타프 3(Gustav III)의 쿠데타를 도와 스웨덴 왕이 되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그는 찬밥 대우를 받았다. 핀란드인은 스웨덴 왕국에서 아무리 잘해도 승진할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무렵 러시아 차르 카트린 2세가 유혹의 손짓을 보냈다. 그는 페테르스부르크로 가 러시아 왕실의 따듯한 대접을 받았다.

스프렝트포르텐은 프랑스에서 갓 독립한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핀란드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핀란드 대공을 스웨덴 왕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핀란드로 돌아와 비밀결사를 조직하던 중에 그 사실이 발각되어 반란 계획은 무산되었다.

스프렝트포르텐의 두 번째 계획은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핀란드 독립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비밀리에 러시아 관료들과 만나 지원을 호소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구스타브 3세 스웨덴 국왕은 국내 반대파를 제압하기 위해 1788년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핀란드 내부에선 귀족 야거호른(Johan Anders Jägerhorn)을 중심으로 또다시 핀란드 독립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스웨덴-러시아 전쟁이 일어나자, 스프랭트포르텐은 러시아 사령관이 되어 핀란드내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해 스웨덴에 저항했다. 전쟁은 3년간 계속되었지만 어느쪽도 승리하지 못했다. 스프랭트포르텐의 계획도 무산되었다.

 

스웨덴 왕국의 판도 /위키피디아
스웨덴 왕국의 판도 /위키피디아

 

이 시기에 핀란드 독립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 형성되었다. 다만 독립운동은 핀란드 귀족계급에 그쳤다. 농민들은 스프랭트포르테를 반역자로 단죄한 스웨덴 법정의 판결을 지지했다. 핀란드 독립운동이 대중화하는 것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후부터였다.

러시아가 1809년에 스웨덴령 핀란드를 공격해 차지하면서 600년간의 스웨덴 지배를 종식시켰다. 하지만 러시아도 결코 핀란드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핀란드 시인이자 작가인 아르비드손(Adolf Ivar Arwidsson)은 러시아제국령일 때에 유명한 말을 남긴다. “"우리는 더 이상 스웨덴인이 아니다. 우리는 러시아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핀란드인이고 싶다

 


<참고자료>

Wikipedia, Finland

Wikipedia, Livonian Crusade

Wikipedia, Finland under Swedish rul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