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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붕괴
소련 해체④…1989년 동유럽에 동시다발로 비공산정권 수립
시나트라의 ‘마이웨이’처럼 일어난 동유럽 혁명
2021. 04. 20 by 김현민 기자

 

1989년은 동유럽에서 동시다발로 혁명이 일어난 해다. 이번 혁명은 공산혁명이 아니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이 해에 폴란드에선 자유노조의 결사체인 솔리다리티(Solidarity) 운동으로 비공산정권이 들어섰고,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에서 민주화시위로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중국에서도 텐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났다. 역사가들은 141년전 1848년에 전유럽에 동시다발로 일어난 ‘1848년 혁명’(Revolutions of 1848) 빗대 이 해의 혁명운동을 ‘1989년 혁명’(Revolutions of 1989)이라고 명명한다.

 

동유럽의 위성국가들은 소련에 비해 민주주의 전통과 민족주의 운동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들 국가는 2차 대전 때에 독일 나치에 짓밟혔다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전후 서방 자본주의 세력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동유럽 점령지를 완충지대(buffer zone)로 고려하며 공산화했다. 그 공산화 과정은 소련군에 의해 강제로 진행되었다. 소련은 서방세계의 NATO에 대응해 동유럽을 바르샤바조약기구(WTO)로 묶어 소련의 지휘 하에 두었다.

소비에트 지배체제에서 동유럽에선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지만, 소련은 군사력으로 제압했다. 자유의 공간을 열어두었던 흐루쇼프도 1956년 헝가리 민주화운동을 탱크로 진압했고, 브레즈네프도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짓밟았다. 브레즈네프는 소련의 원칙을 정리해 동유럽 국가가 소비에트 체제에서 이탈할 경우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임을 천명하는, 이른바 브레즈네프 독트린’(Brezhnev Doctrine)을 발표했다.

동유럽의 공산체제는 소련의 군사력에 의해 유지되었다. 1980년에 폴란드 솔리다리티 운동을 진압하는데 소련은 당시 돈으로 40억 달러의 군비를 지출해야 했다. 그나마 국제유가가 비싸던 때라 동유럽에 군대를 보낼 정도의 재정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1985년 고르바쵸프가 당서기장이 되었을 때 소련의 재정은 거덜이 나 있었다. 국제유가가 급락한데다 소련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련으로선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을 억누를 군사비가 큰 부담이 되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에 “고르비, 감사해요!”라고 쓰여진 구호. /위키피디아
1990년 베를린 장벽에 “고르비, 감사해요!”라고 쓰여진 구호. /위키피디아

 

동유럽의 혁명은 소련이 동유럽의 민주화운동을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발생했다. 막강한 소련군 탱크와 장갑차가 발이 묶였던 것이다.

198977일 고르바쵸프는 유럽위원회 연설에서 우방이든 동맹이든 다른 어떤 나라이든, 내정을 간섭하거나 국가주권을 제한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고, 21년전의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고르바쵸프의 선언에 붙일 언론 용어가 필요하던 차에 소련 외교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미국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웨이(My Way)에 빗대 시나트라 독트린(Sinatra Doctrine)라고 언급했고, 언론들이 이를 인용하면서 이 용어가 굳어졌다.

사니트라 독트린은 가사(I Did It My Way) 그대로, 동유럽국가들이 국내문제를 자기방식대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동유럽의 독재자들은 더 이상 소련군에 의지할수 없게 되었고, 국내 민주화 지도자들과의 타협을 강요받았다.

미디어는 열려 있었다. 서유럽에서 쏜 자유단파방송은 동유럽인들에게 시나트라 독트린의 사실을 알렸다. 가장 당황한 사람은 강경파 공산당지도자였던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였다. 동독 라이프찌히에선 수만의 군중집회가 열렸고, 호네커의 입장에선 소련군이 개입해주길 원했다. 그는 고르바쵸프의 선언이 사회주의 블록을 해체하는 길이라며 모스크바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 솔리다리티 의장과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1989년) /위키피디아
레흐 바웬사 폴란드 솔리다리티 의장과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1989년) /위키피디아

 

가장 먼저 공산정권이 붕괴된 나라는 폴란드였다. 폴란드에선 1980년대초에 레흐 바웬사(Lech Walesa)가 이끄는 자유노조운동(솔리다리티)이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지하로 잠복해 있었다. 솔리다리티 운동은 고르바쵸프가 던진 글라스토스트(개방)에 힘입어 다시 활력을 얻었다. 이들은 미국과 로마 카톨릭의 지원을 받았다.

19884월 솔리다리티는 임금인상, 구속자석방, 공산정권 타도를 외치며 전국적인 파업을 전개했다.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Wojciech Jaruzelski) 1서기는 모스크바에 SOS를 쳤지만, 고르바쵸프는 정치개혁을 단행하라고만 대답했다.

야루젤스키는 하는수 없이 19893월에 솔리다리티가 제시한 원탁협상에 나가 솔리다리티를 합법화하고 자유총선을 실시하기로 약속했다. 그해 64일 실시된 반()자유선거에서 솔리다리티는 상원에선 99%, 하원에선 허용된 의석 35%를 모두 차지했다. 공산정권은 약화되었고, 그해 9월 타테우시 마조베츠키(Tadeusz Mazowiecki)가 총리가 되었다. 공산진영 최초로 비공산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1989년 5월 헝가리 시위자들 /위키피디아
1989년 5월 헝가리 시위자들 /위키피디아

 

폴란드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면서 그 여파는 동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1956년 민주화 시위의 경험이 있던 헝가리에선 1989년말 총선에서 민주주의 정당이 압승해 나라의 이름을 헝가리인민공화국에서 헝가리공화국으로 바꿨다. 헝가리는 또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을 걷고 동독인들의 입국을 허용함으로써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가는 길을 터주었다.

동독에서는 198911 정치국 대변인의 말 실수로 동독인들의 자유여행이 허용되었고, 그 바람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독일 통일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선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이 반체제인사들을 조직해 시위운동을 벌여 자유총선을 얻어냈다. 그해 12월 그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권위주의적 경향이 강한 루마니아, 중국에서는 민주화시위를 탄압했다.

루마니아에선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다가 정권이 전복되는 바람에 총살되었다.

중국에선 같은해 5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천안먼(天安門)에 모여 민주 만세, 자유 만세, 부패 타도의 슬로건을 외치며 6주일동안 시위를 계속했다. 하지만 64일 새벽 중국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35대의 탱크를 동원해 텐안먼 광장의 학생 숙영지를 밀어붙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시위는 진압되었다.

 

공산권의 혁명운동은 이듬해인 1990년에도 이어졌다.

소련 다음으로 1921년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몽골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19907월 다당제 선거가 치러졌고, 헌법이 개정되었다. 캄보디아에서도 1993년 신헌법을 도입해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에티오피아, 남예멘, 앙골라, 베닌, 브라자빌 콩고, 모잠비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1990~1992년 사이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했다. 아울러 동유럽의 민주화 열풍은 소련내 14개 공화국의 독립운동을 촉발했다. 소련은 다른 위성국보다 늦게 1991년에 공화국들의 탈퇴로 해체되어 공산주의를 탈피했다.

그후 공산국가는 5개만 남았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 쿠바, 그리고 북한이다. 앞의 네나라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타협책을 모색했지만, 북한만은 유일하게 주체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Revolutions of 1989

New York Times, Gorbachev Spurns the use of Force in Eastern Euorpe

Wikipedia, Sinatra Doctrine

Wikipedia, Solidarity (Polish trade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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