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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열전

이상 추구하며 공해상, 산호초 등에 국가를 세우지만 주권국 반대로 좌절

가상의 나라 마이크로네이션을 시도하는 사람들

2021. 05. 29 by 박차영 기자

홍길동이 세웠다는 나라 율도국(栗島國)은 어디일까. 지은이 허균(許筠)은 바다 건너 대양의 한 섬에 가상의 나라를 세웠다. 현실이 아닌, 수평선 너머의 신비의 섬.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기생이라는 이유로 서자로 태어는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가족에게 버림을 받아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다가 마침내 율도국을 점령해 새 나라를 세웠다는 스토리다.

허균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역모 혐의로 죽었다. 그의 호 가운데 하나가 교산(蛟山)이다. 교(蛟)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한다. 허균은 이무기의 인생을 살았지만, 홍길동을 통해 용이 되고 싶었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 아닐까.

가상화폐의 시대에 가상국가도 있다. 이를 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이라고 한다. ‘작다’(micro)라는 단어와 ‘나라’(nation)라는 단어가 조합된 용어다.

허균은 가상의 공간에서 나라를 세운 것처럼, 실제로 가상국가를 세운 경우가 있다.

197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부동산 부자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가 몇몇 후원자와 함께 남태평양 산호초에 미네르바 공화국(Republic of Minerva)을 선포한 적이 있다. 그들은 호주에서 흙을 실어와 산호초를 영구적 섬으로 만들고 거주희망자를 이주시켰다. 미네르바 공화국은 주변에 있는 호주, 뉴질랜드, 통가, 피지, 나우루, 사모아, 쿡 제도 등에 독립국 선포를 알리고, 모리스 데이비스(Morris C. Davis)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네르바는 세금과 보조금, 복지, 규제가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자유주의 국가를 지향했다. 동전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인공섬과 가장 가까운 통가(Tonga) 왕국이 그 산호초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통가가 군대를 파견하기 전에 산호초 위에 세워진 나라는 스스로 깃발을 내렸다. 국가를 수립하려면 전쟁도 불사해야 하는데, 그런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1982년에도 미국인들이 그 산호초를 점유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통가 군대에 의해 쫓겨났다.

앞서 1968년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변에 세워진 로즈아일랜드공화국(Republic of Rose Island)도 마이크로네이션이다. 조르지오 로사(Giorgio Rosa)라는 볼로냐 출신의 한 엔지니어가 해안에서 11km 떨어진 공해상에 400㎡ 넓이에 9개의 기둥으로 인공섬을 만들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로즈아일랜드공화국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결국 이탈리아 해군에 의해 인공섬이 폭파되면서 사라졌다. 로즈아일랜드에 관한 스토리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선 북한강 하중도 남이섬에 만들어진 ‘나미나라 공화국’도 마이크로네이션에 포함된다. 나미나라 공화국은 관광용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나라이므로, 대한민국 주권에 위배되지 않는다.

마이크로네이션이 바티칸이나 모나코와 같은 ‘작은 나라’ 또는 소국(小國)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망명정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망명정부의 경우 영토는 잃었어도 동맹국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는다.

마이크로네이션의 공동체는 독립을 선포하고, 독립국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나라도 이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말로 ‘초소형 국민체’ 또는 초소형 공동체, 초소형 국가체 등으로 번역된다. 굳이 번역하자면 허균의 율도국과 같은 가상국가다. 가상화폐도 만들어지는 세상에 가상국가도 만들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자칭 국가’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마이크로네이션은 통화와 국기, 여권, 메달, 우표도 발행한다. 헌법도 만들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도 창설하고 군대도 두고 있다.

마이크로네이션의 반대말은 매크로네이션(macronations)이다. 주권의 실체가 있는 나라로, 미국 합중국(USA), 대한민국과 같은 주권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