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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누구일까. 절대왕정이나 전체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개인으로 비교한다면, 단연 중세 독일의 야코프 푸거(Jakob Fugger, 1459~1525)를 꼽는다. 그의 재산은 현재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4,00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며, 미국의 부호 존 록펠러(3,500~4,200억 달러), 앤드류 카네기(3,100억 달러), 헨리 포드(1,990억 달러), 코르넬리어스 밴더빌트(1,050~1,200억 달러)를 뛰어 넘는다. 야코프 푸거의 전기를 쓴 그레그 스타인메츠는 “그의 재산은 유럽 내 총생산의 2%에 육박했다”고 했다.
야코프 푸거는 자신의 돈으로 카를 5세(Karl V)를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앉혔고, 합스부르크 가무은 세계 제국을 일으키는데 그의 돈을 필요로 했다. 그는 은행가이자 상인이었고, 광산주이기도 했다. 야코프 푸거는 독일 남부 자유도시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고향을 세계적인 상업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16세기에 유럽의 구리 생산을 독점했다. 그의 광산에서 채굴, 제련된 구리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거쳐 인도에 수출되었다. 또 인도에서 옷감과 향신료, 보석을 사서 유럽에 팔았으며, 브라질산 유창목을 독점 수입하기도 했다. 그는 고대 기독교의 성유물을 판매하기도 했다.
야코프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돈을 댔고, 합스부르크의 영욕과 함께 성장하고 실패했다. 합스부르크 출신의 황제 막스밀리안과 카를 5세는 푸거 가문의 돈으로 황제 행세를 했고, 오스트리아 대공 지기스문트도 푸거가와 거래했다.
푸거가 성공의 또다른 조력자는 교황청이었다. 야코프 푸거는 교황청 주화 주조를 위임받았고, 교황청의 면죄부를 매매하는데도 가담했다. 종교개혁의 폭풍이 불어닥칠 때에 그는 카톨릭을 고수했다. 교황청과 노선을 같이하며 농민반란을 억압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야코프는 현대 자본주의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상업활동을 천대시하는 중세에 그는 이윤을 내는 것 자체를 합법화하는데 공헌했다. 또 북유럽 상업을 카르텔로 독점하던 한자(Hanza) 동맹을 격파했다.
야코프 푸거는 돈의 문제에 잔혹하고 인정사정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자선사업에는 넉넉하게 선심을 썼다.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의 공공주택건설에 자금을 댔다. 아직도 그가 지은 푸거라이(Fuggerei)는 명물로 남아 아우크스부르크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거 가문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야코프의 할아버지 한스 푸거(Hans Fugger)부터다.
한스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라벤(Graben) 마을의 농부였다. 한스는 단조로운 농사 일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1367년에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사를 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BC15년 로마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건설된 도시로, 황제의 이름에서 도시 이름이 정해졌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중세에 주교령이었다가 1276년에 상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교를 내쫓고 자유도시가 되었다. 자유도시는 주민(상인)이 시정을 결정하는 자치주의를 채택해 황제 이외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독일 쾰른과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도로의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중세에 인구 4만의 큰 도시로 성장했다. 한스가 이사를 할 무렵, 아우크스부르크는 유럽 직물생산의 본거지로 부상해 있었다.
한스는 시청에 전입신고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푸케르(Fucker)라고 적었다. 이 철자는 영어로 읽으면 욕이 된다. 어쨌든 아우크스부르크에 정착하면서 한스는 성을 푸거(Fugger)로 수정한다.
한스도 직물 생산과 거래에 뛰어 들었다. 그의 사업은 잘 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직물 생산은 외주로 돌리고, 도매상에 전념했다.
한스는 정략결혼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성공의 발판이 된다. 그는 직물조합 수장의 딸 클라라 비돌프(Klara Widolf)와 결혼했고, 클라라가 일찍 죽자 또다른 직물조합 거물의 딸 엘리자베트 가터만(Elizabeth Gattermann)과 결혼했다. 한스도 직물조합에 가입했다. 1936년 아우크스부르크의 납세자 명단에 한스는 상위에 랭크되었다.
한스는 엘리자베트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이 안드레아스(Andreas Fugger), 둘째가 야코프(Jakob Fugger the Elder)다. 푸거 가문은 여기서 두 지파로 나눠지는데, 세계 최대 부호가 된 야코프는 한스의 둘째 아들 야코프의 이름을 물려받게 된다.
안드레아스의 아들 루카스(Lukas)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로부터 황금 사슴 문장을 받아 이 집안은 ‘사슴 가문’(Fugger of the Deer)라 부르고, 야코프의 후손은 후에 백합 문장을 받아 백합 가문(Fuggers of the Lily)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스의 둘째 아들 야코프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주화를 생산하는 조폐소의 주인 베징거의 딸 바바라(Barbara Basinger)와 결혼했다. 야코프와 바바라는 아들 일곱에 딸 넷 등 모두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버지는 아들 가운데 막내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는데, 그가 가문을 유럽 최대의 부호로 일군 인물이다.
아버지 야코프는 막내아들 야코프가 10살이 되던 1469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야코프는 사망할 무렵 아우크스부르크의 최고액 납세자가 되어 있었다.
가업은 맏아들 울리히(Ulrich)가 떠맡았다. 형제들은 어머니 바바라의 보호 아래 가업을 발전시켰다. 울리히는 동생 마르쿠스(Markus)를 로마로 보내 교황청 자금을 거래했고, 아우크스부르크에선 동생 게오르크(Georg)와 함께 교회헌금을 맡아 관리했다.
푸거 형제들이 합스부르크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Friedrich III)에게 의복을 제공하면서부터였다. 1473년 프리드리히는 13살 된 아들 막스밀리안을 데리고,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의 샤를 대공을 만나러 가던 길에 아우크스부르크를 들렀다. 황제는 샤를의 직위를 대공에서 왕으로 승격하고, 자신의 아들 막시밀리안을 샤를 대공의 딸 마리와 결혼시킬 작정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샤를 대공과 만나는 거창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아우크스부르크의 직물상인들에게 자신과 아들의 옷을 부탁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상인들은 비싼 황실복을 만들어주고 떼어먹힐 것을 두려워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울리히와 형제들이 황제와 그의 아들 오스트리아 대공의 옷을 제작해 주었다. 황제는 고마움의 표시로 백합(Lily) 세 송이를 그린 문장을 선사했다. 이 백합 문장이 야코프 푸거가의 공식문장이 된다.
어머니 바바라는 처음에 막내아들 야코프를 성직자로 만들려고 생각했다. 형제들이 많기에 막내를 사제로 성장시켜 교황청 사업을 뚫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마음을 바꾸었다. 바바라는 야코프를 형들과 함께 상인으로 키워야겠다고 판단했다.
어머니는 14살 된 어린 야코프를 당대에 가장 번창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보냈다. 야코프는 베네치아에서 무역회사에서 도제로 일했다.
야코프는 베네치아에서 금융을 배웠다. 은행(Banco)이란 단어도 이탈리아에서 생겼고, 당시 베네치아는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야코프는 또 회계라는 것을 익혔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복식 부기를 개발했다. 회계란 개념이 없던 독일인에게는 놀라운 기법이었다. 장부에 대변과 차변을 만들어 양쪽이 맞아 떨어지는 회계는 야코프의 일생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야코프는 베네치아에서 5년간 장사방법을 배웠다. 그가 아우크스부르크로 돌아올 시기에 형 마루쿠스가 페스트로 사망했다. 야코프는 돌아와 형들과 함께 가업에 동참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Fugger family
Wikipedia, Jakob Fugger
Wikipedia, List of wealthiest historical fig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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