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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추적
짧게 한탕하고 평안히 여생 보내다 튀니지서 사망……잭 스패로의 모델
해적들의 전설이 된 영국인 잭 워드
2019. 05. 20 by 김현민기자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에 등장하는 선장 잭 스패로(Jack Sparrow)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면 잭 스패로는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

그 모델은 바로 17세기초 북아프리카를 주름잡던 영국인 해적 잭 워드(Jack Ward, 1553~1622). 그의 별명은 버디(Birdy), ‘짹짹거리는 새라는 뜻이다.

 

잭 워드의 어린시절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영국 동남부 해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여느 어부의 자식처럼 바다 생활에 익숙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평범한 어부로 살았는데, 50대 쯤에 사략선(privatee)에서 일했다.

사략선은 영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무역에 종사하는 민간 무역선인데, 당시엔 국제해양법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사략선이 해외에 나가 밀무역과 약탈도 일삼았다. 일정한 금액을 세금만 내면, 영국정부가 인정을 해주었다.

1588년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대치할 때 사략선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영국이 스패인 해군을 격파한 이후 사략선에 대한 허가를 전면 취소하고, 영국 정부에 복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때 많은 사략선 업주와 선원들이 실망을 했다. 정부에 소속되어 일하면 일정한 봉급이야 받겠지만, 약탈과 밀무역으로 인한 쏠쏠한 수익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1604년경까지 잭 워드는 영국 해군에 복무하며 영국 해협을 지키는 해군 일을 도왔다.

 

잭 워드가 샤략선 일을 마치고 영국 해군에 배속되어 일하던 리어언 웰프(Lyon's Whelp)호 /위키피디아
잭 워드가 샤략선 일을 마치고 영국 해군에 배속되어 일하던 리어언 웰프(Lyon's Whelp)호 /위키피디아

 

그러던 어느날, 그는 영국 플리머스(Plymouth) 항의 어느 선술집에서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중 이렇게 떠들었다.

친구들이여.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세상이 혼탁해졌다. 우리는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 정부가 주는 몇푼 안되는 돈과 말라 비틀어진 빵조각에 의존해야 하는가. , 바다로 나가자. 이제 우리의 길을 가자.”

그날 밤, 잭과 동료 몇 명이 25톤짜리 조그만 배를 훔쳐 타고 플리머스를 도망쳤다. 도망자들은 잭 워드를 선장으로 추대했다. 이어 영국 남부 와이트 섬(Isle of Wight)에 들러 또다른 배를 납치했다. 그 배에는 카톨릭교도들이 많은 보물을 숨겨두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막상 덥쳤을 때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두척의 배를 이끌고 지중해로 갔다. 네덜란드 범선 한척을 또 빼앗아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향했다. 잭과 일당은 알제를 공격했지만 실패하고 모로코 살레(Sale)로 가서 해적이 되려는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을 선원으로 보충했다.

53살이 되던 1606년 여름 잭은 일행과 함께 튀니지로 가서 오스만투르크의 지역사령관 우트만 데이(Uthman Dey)와 협상을 벌였다. 수익금의 10분의 1을 줄터이니, 기항을 허용해달라고. 둘 사이에 협상이 타결되었다. 잭 워드는 튀니지에 드디어 거점을 마련했다.

 

1600년에 만들어진 지중해 지도. /위키피디아
1600년에 만들어진 지중해 지도. /위키피디아

 

1606년 가을부터 잭 워드의 본격적인 해적질이 시작된다. 11월 영국 상선을 나포한 것을 시작으로, 지중해에 떠다니는 유럽 국가들의 선박을 연이어 공격했다. 베네치아 상선에서는 풍부한 물자를 약탈했다.

잭은 1607년에 기프트, 리틀존, 루비, 카미나티등 4척의 선대를 보유했다. 모두 빼앗은 배였다. 그는 이들 배를 이끌고,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에게해, 키프로스 연안, 터키 연안을 누비고 다니며 약탈을 했다.

그러던 중 160741,400~1,500톤급 되는 베네치아 소속 대형 상선을 만났다. 그들에겐 월척이었다. 하지만 해적선들은 고작 200~400톤 짜리 소형선이었다. 소형선 4척이 대형선과 맞붙었다. 당시엔 상선도 언제 만날지 모르는 해적과 상대하기 위해 무장을 했다. ‘레니에라 에 소데리나’(Reniera e Soderina) 호라는 베네치아 상선은 해적들이 세시간 이상 쏘아대는 포격을 끄덕 없이 견뎌냈다. 하지만 베네치아 상선은 동작이 둔했고, 선원들의 소총은 작동이 되지 않았다. 해적들은 배를 바짝 대 소데리나호를 올라갔다. 마침내 선장이 항복하고 말았다.

나포된 베네치아 상선의 가격은 최소한 200만 파운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었다.

베네치아가 격분했다. 베네치아 원로원은 무역선단의 항해중지 명령을 내리고, 잭 워드의 해적들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영국인 해적들은 신출귀몰하게 빠져 나가며 튀니지로 돌아갔다.

잭 워드 일당을 잡지 못한 베네치아는 영국에 화풀이했다. 런던주재 베네치아 대사는 영국 정부에 잭의 해적행위를 명분으로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베네치아는 가라앉고 있었고, 영국은 스페인을 꺾은 뒤여서 베네치아 대사의 발언이 엄포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해적질을 한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짧게 한탕한 다음 그는 평안하게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잭 워드는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해적질을 해서 돈도 많이 벌었으니, 영국 국왕과 타협하고 싶었다. 그는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에게 사면을 청원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하지만 영국 국왕은 거절했다. 그는 실망해서 튀니지로 돌아갔다.

튀니지의 수령 우트만은 그를 지켜주었다. 그는 그에게 이슬람을 권했다. 더 이상 영국으로 돌아갈수 없게 된 잭 워드는 스스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부하들에게도 개종을 권유했다. 그리고 이름도 이슬람식으로 유수프 레이스’(Yusuf Reis)로 바꾸었다.

현지처도 얻었다. 이탈리아 여자였다. 하지만 그는 해적질을 해서 번 돈을 꼬박꼬박 영국에 있는 본처에게 보냈다고 한다.

60세가 되던 1612년 그는 해적질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두목 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튀니지에서 10년을 더 살았는데, 그가 죽은 원인은 전염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그의 해적 활동은 대중가요로, 연극으로 전해지다가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라는 가공인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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