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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산업화 시대에 자산가가 돈으로 지주계층을 복수

‘폭풍의 언덕’에 읽히는 사회 변동과 계층갈등

2021. 09. 24 by 박차영 기자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사랑과 증오, 복수를 테마로 하고 있다.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언쇼(Earnshaw)와 린튼(Linton)의 두 지주가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폭풍의 억덕’(Wuthering Heights)이 출간된 해는 1847년,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던 시절이다. 그 시기 영국에선 봉건적 귀족제도가 잔존하고 도시에는 산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모든 것이 혁명적으로 변하던 때에 기독교적 풍습에 안주하려는 풍토와 새로운 변혁을 이용해 구제도를 붕괴시키려는 시도가 교차했다.

소설은 비인간적이고, 악마적 경향까지 보인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음산하다. 시골의 중간 귀족들이 누리는 평온은 증오와 복수로 점철된다. 갈등의 핵심은 히스클리프(Heathcliff)라는 이질적 인간이다.

로런스 올리비에, 멀 오버런 주연의 영화 ‘폭풍의 언덕’(1939년) 장면 /위키피디아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씨는 어느날 고아인 히스클리프를 데려온다. 히스클리프는 리버풀 거리에서 집도 없이 굶주리던. 피부가 까만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히스클리프를 친자식처럼 애지중지했다. 이에 친아들 힌들리가 반감을 품게 된다.

아버지 언쇼가 죽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구박했다. 히스클리프는 학대를 당하면서도 양아버지의 딸 캐서린과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된다.

비극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 깨지면서 시작된다. 캐서린은 천한 신분의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캐서린은 이웃 스러시크로스 저택 린튼가의 젊은 아들 에드거의 청혼을 받게 된다. 캐서린은 에드거와 결혼한다. 사랑에 실패한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집을 떠나게 된다.

3년이 흐른후 히스클리프는 부자가 되어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다. 히스클리프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작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요크셔 일대는 영국 최고의 공업단지였다. 히스클리프가 급성장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편승해 일확천금을 벌었을수도 있다. 즉 히스클리프는 졸부가 되어 토지에 고착해 사는 귀족계급(gentry)을 돈으로 복수하러 온 것이다.

복수는 치졸하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황금만능 사상이 팽배하다. 자본주의 초기단계 자산가들의 냉혹성을 히스클리프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괴롭히던 힌들리에게 돈을빌려줘 그를 도박으로 파멸시키고 워더링 하이츠를 손에 넣었다. 악마는 담보로 잡힌 힌들리의 아들도 노예로 삼는다.

다음 타깃은 자신의 사랑을 뺏어간 에드거다. 히스클리프는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 결혼하고, 캐서린에게 손길을 뻗쳐 에드거를 괴롭혔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하다가 딸 캐시를 낳고 숨졌다. 아내 이사벨라도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 아들 린튼을 낳아 기르다가 세상을 떠났다.

히스클리프의 마지막 복수는 에드거의 스러시크로서 저택을 뺏는 것이다. 그는 에드거와 캐서린의 딸 캐시와 자신의 아들 린튼을 결혼시켜 러스리크로서 저택의 상속권을 뺏으려 했다. 그의 계략은 성공하지만 아들 린튼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 말미에 느닷없이 히스클리프는 선한 사람으로 변신한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기독교적 선과 악의 개념이 도입된게 아닐까. 악마가 나쁜 짓을 다하고는 개과천선의 바보가 되는 이상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소설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흥자본가에 의해 낡은 지주계급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렸다. 증오와 복수라는 이름으로 계급구조의 변혁이 소설에 내재하고 있다.

또 히스클리프라는 존재의 복수에서 인종적 갈등이 느껴진다. 히스클리프는 그저 까만 아이라고 했지만, 흑인인지, 인도인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제국주의 전성기 시절에 영국 도시에는 식민지에서 올라온 어린 소년들이 많이 있었다.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버려진 아이일수도 있다. 히스클리프가 어느 종족 또는 계층이든 인종 또는 계층갈등의 요소도 드러난다.

에밀리 브론테는 엘리스 벨(Ellis Bell)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언니 샬롯 브렌테(Charlotte Brontë)도 소설가로, ‘제인 에어’(Jane Eyre)를 발표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은 같은 해(1847)에 발표되었는데, 제인 에어의 인기가 더 높았다. 여동생 엔 브렌테(Anne Brontë)도 시인이자 소설가다. 이들 세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브론테의 자매들’(The Brontë Sisters)이 1979년에 프랑스에서 제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