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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중 미국 망명 기간에 집필…전투에 참가, 출격후 실종
생텍쥐페리 인생역정 고스란히 담긴 ‘어린 왕자’
2021. 10. 08 by 박차영 기자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작가 자신의 인생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현장이라고 할수 있다. ‘어린 왕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세계에 약 30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판매부수는 전세계에 2억부, 프랑스에만 1,400만부에 달한다. 독자는 전세계에 4억명으로 추산된다.

 

250개 언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 소설. (2013, 일본 오사카) /위키피디아
250개 언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 소설. (2013, 일본 오사카) /위키피디아

 

작가 안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1943어린 왕자를 출간한 이듬해인 194472차 대전 전투에 참전, 출격했다가 사망했다.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하라에 추락한 생텍쥐페리(1935) /위키피디아
사하라에 추락한 생텍쥐페리(1935) /위키피디아

 

그는 비행기 조종을 좋아했다. 프랑스 육군에 입대한 이후 항공정비병으로 근무하며 조종사 자격증을 땄고, 전역한 이후 1926년 첫 저서로 비행사’(L'aviateur)를 발표했다. 그후 항공사에 취업해, 프랑스령 카사블랑카(모로코)와 다카르(세네갈) 간 정기 항공우편 조종사로 근무했다.

1935년 생텍쥐페리는 코드롱사에 개인 전용기 'Caudron C.630 Simoun'를 주문했다. 그는 이 비행기로 그해 11월 파리~사이공(베트남) 구간의 비행 경기에 참여했으니, 시합 도중에 기체 결함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 그는 5일 만에 구조되었으나, 자가 전용기는 부숴졌다. 이 때 사하라 사막에서 불시착한 경험이 어린 소년의 화자(話者)에 녹아 있다.

 

19392차 대전을 앞두고 생텍쥐페리는 민항기 조종 경력을 인정받아 예비역 공군대위로 동원되었다. 그는 독일과의 전투에 참전해 공로를 세웠으며, 곧이어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자 194012월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뉴욕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그의 미국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건강이 악화된데다 미국 체류 프팡스인들 사이에 친 비시정권파와 친 드골정권파의 대립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의 출판업자 유진 레이날(Eugene Reynal)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그는 냅킨에 아이 한 명을 그렸다. 유진이 그 그림을 보고 생택쥐페리에게 "그 아이를 소재로 동화를 쓰면 참 좋을 텐데요"라고 제안했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동화를 쓰는 게 도움이 될 것이란 충고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생텍지페리의 동화창작이 시작되었다. 그는 건축에 관심이 많아 그림을 그릴줄도 알았는데, 그 실력을 동화의 삽화도 그려보았다.

 

동화 속 어린 왕자는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던 1942년에 캐나다 퀘벡을 여행하던 중에 한 철학가의 집에서 금발의 조숙한 8살 어린이를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또 미국의 인기 있는 항공조종사 찰스 린드버그 집을 방문했다가 금발의 그의 아들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설도 있다.

어린 왕자가 거주하는 소행성 B-612는 그가 항공우편의 조종사로 일할 때 부여받은 번호 A-612에서 따왔다.

 

부인 콘수엘로 /위키피디아
부인 콘수엘로 /위키피디아

 

어린 왕자가 사랑하는 꽃 장미는 부인 콘수엘로(Consuelo). 도도하고 거만하면서도 왕자를 사랑하는 꽃, 소행성에서 단하나만 있는줄 알았는데 지구에 와보니 엄청나게 많은 꽃이 장미였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를 소설의 장미에 비유했다. 원래 다른 별 출신의 씨앗이 왕자의 별에 날라와 피어난 꽃이다. 왕자는 장미꽃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을 고통스러워하다가 별을 떠나 이별을 하게 된다.

소행성 여러곳을 돌아다니고, 지구를 방문한 후에야 왕자는 자기 별에 피어난 장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사막여우도 셍택쥐페리가 좋아하던 동물이다. 그가 우편항공기 조종사를 할 때 사막여우를 알게 되었고, 사막에서 살 때 사막여우를 길렀다고 한다. 소설에서 사막여우는 지혜로운 동물로 등장한다. 사막여우는 왕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며 소행성에서 자기를 기다릴 장미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왕자는 사막여우의 말에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은 한 송이 꽃 때문에라며, 장미에게 되돌아 갈 것을 다짐한다.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홈페이지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홈페이지

 

지구를 도착하기 전에 방문한 여섯 군데의 소행성에 등장하는 인물은 생텍쥐페리가 인생 경로에 경험한 사람들의 형상화다. 왕은 1차 대전에 몰락한 유럽 왕가의 계몽군주를 풍자했다. 과거에 일방적으로 명령만 내리던 군주가 부당한 명령을 내릴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명령을 할 백성이 사라진 몰락한 군주에 불과하다. 허영심 많은 남자, 술꾼, 지리학자, 사업가, 가로등 켜는 사람 등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유럽 사회상에 나타나는 인물들이다.

 

생텍쥐페리의 가장 유명한 소설 어린 왕자19434월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그가 어린 왕자를 출판할 무렵 나치의 앞잡이 비시 정권은 일방적으로 생택쥐페리를 정부요직에 임명했다. 그러자 레지스탕스를 이끈 자유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은 그를 친독일 인사라고 암시했다.

생텍쥐페리는 스스로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자유프랑스의 공군에 입대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3세로 조종사 연령제한을 8년이나 초과했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친분이 있는 장교들을 앞세운데다 자유프랑스도 그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에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게 했다.

1944731일 오전 825, 생텍쥐페리는 일상적인 정찰 비행을 위해 정찰기를 몰고 이륙했으나, 6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륙 8시간 30분후 실종보고가 들어왔고, 그의 실종 소식은 국제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여러 정황을 분석컨대, 그는 독일 공군에 격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생텍쥐페리는 우주의 어느 소행성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살아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꿈으로 만들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라.”

 

‘어린 왕자’ 심볼 /‘어린왕자’ 홈페이지
‘어린 왕자’ 심볼 /‘어린왕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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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You 2021-10-22 01:10:50
“인생을 꿈으로 만들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