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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이야기
콜레라가 하수도 악취에서 전염된다는 신념에서 착수…실제는 상수도원 오염에서 발원
잘못된 인식이 만든 걸작, 런던 하수도
2019. 06. 01 by 김현민 기자

 

1858년 영국 런던의 여름은 유난히 덥고 건조했다. 6월 중순이 되자 템스강에서 나는 끔찍한 악취가 웨스트민스터 의회까지 침투했다. 의원들은 구역질 나는 공기를 견디지 못해 의회를 뛰쳐 나갔다. 대영제국의 신사인체 하는 의원들도 더 이상 체면을 차리지 않았다. 냄새도 고약했지만, 공기를 통해 콜레라가 전염된다는 공포심에서 의정이고 뭐고 우선 사는 게 급했다. 영국에서는 이를 대악취’(Great Stink)라며 역사의 한페이지로 기록하고 있다.

의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영국의 제국주의자로 잘 알려진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가 주도했다. 의회는 돈이 아무리 들더라도 런던 하수도를 정비하기로 하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죽음의 템스강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죽음의 템스강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당시 영국은 콜레라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콜레라에 걸리면 건강한 사람에게도 몇시간 내에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왔다. 어디서 누가 걸릴지도 몰랐다. 부유층이 살던 주택가에도 콜레라가 엄습했다. 산업화 초기, 판자집에 콩나물시루처럼 모여 살던 빈민들은 떼로 죽어 나갔다. 100명의 유아 중에 15명이 생후 1년 이내에 죽어 나갔다. 장례 비용을 감당 못해 시체를 집에 숨겨둔 빈민들도 많았다고 한다. 200년전에 유럽에 퍼졌던 흑사병 이후에 다시 괴질이 당시 250만 인구의 런던을 강타한 것이다.

조제프 바잘게트 /위키피디아
조제프 바잘게트 /위키피디아

 

하지만 콜레라의 경로를 모르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콜레라가 공기를 타고 전염된다고 믿었다. 템스강은 구역질 날 정도로 냄새가 났다. 당시 런던에는 하수처리 시설이 있긴 했지만, 빗물 배수구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농촌 인구가 대거 런던으로 몰려가면서 하수시설이 넘쳐나는 오물을 처리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거지에 오물을 쌓아 두었고, 지하에 감춰진 오물들이 까맣게 썩어 마룻바닥이나 틈 새로 새어 나와 길거리에 제멋대로 흘러 넘였다. 그 모든 하수구가 그대로 템스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빈약한 하수처리시설이 런던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그 공기를 통해 콜레라가 전염된다고 믿었다.

저명인사들이 독가스이론(miasma theory)을 지지했다. 질병이 독가스처럼 공기를 통해 퍼지며, 런던 하수구에서 배출된 죽음의 냄새를 제거하면 콜레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개혁가였던 에드윈 채드윅은 물론 크림전쟁에 뛰어든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도 이 이론의 지지자였다.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이었지만, 수도 런던은 흘러넘치는 오물과 무계획적인 하수시스템으로 몸살을 앓았다. 때마침 수세식 화장실이 상업적으로 개발되어 부유층에 보급되면서 오수 배출량이 늘어났다. 수세식 변기가 확산되면서 런던이 물 사용량이 1850년에서 1860년 사이에 두배나 많아졌고, 그만큼 더 많은 오수가 템스강으로 흘러들어갔다.

 

템스강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 /위키피디아
템스강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 /위키피디아

 

단 한사람만이 공기가 아닌 물이 콜레라 전염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존 스노(John Snow)라는 의사는 콜레라 발생지역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끝에 콜레라의 경로가 물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콜레라 전염의 원인은 상수도에 있지, 하수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하수처리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런던시 당국은 1848-1855년 사이에 6개 이상의 위원회를 설치해 하수시설 정비에 나섰지만, 공사는 지지부진했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드는데, 의회가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의회는 1855년에 수도공사국의 창설을 결정하고, 조지프 바잘게트((Joseph Bazalgette)를 공사 책임자로 임명했다. 바잘게트는 유능한 토목기사였다. 바잘게트는 하수가 시가지에서 템스 강으로 직접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템스 강과 평행하게 동서로 달리는 별도의 하수도를 설치할 것을 생각했다. 하수가 템스강으로 빠져 나가지 않고 별도의 하수관을 통해 바도로 빠져 나가면 템스강의 수질을 개선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분리하수관의 개념이다.

 

템스강 하수관 공사(1859년) /위키피디아
템스강 하수관 공사(1859년) /위키피디아

 

문제는 돈이었다. 바잘게트의 설계대로 하수시스템을 만들려면, 방대한 런던 땅을 뜯어 내야 하고, 지하에 배관시설을 넣고 제방시설을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 그러던 중 1858년 여름에 대악취 소동이 빚어진 것이다. 의회는 무엇보다 시급한게 런던 하수처리 시스템이라고 판단하고, 예산을 통과시켰다.

37세의 바잘게트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았다. 그는 채집용 하수관거를 템스 강의 북측에 3, 남측에 2개 만들고 템스강 하류에 하수 출구를 설치했다. 160km 길이의 하수간선에 3개의 펌프장을 설치했다. 바젤게트는 템스 강의 북쪽 인구를 230만명, 남쪽 인구를 115만명으로 상정하고, 한 사람이 1일 평균 140l의 하수를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모두 합해 1,600km의 가로 하수도와 130km의 채집 관거가 이어졌다. 런던의 지형을 이용해 하수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런던시 전체가 공사판이 되었다. 도랑을 파내 하수관을 묻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템스강변에 배수관거를 설치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템스강변에 배수관거를 설치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공사는 1875년에 마무리되었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은 보기에 달라질 정도로 좋아졌다. 악취도 사라졌다. 런던의 하수로 대공사가 준공되면서 사람들은 콜레라는 더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콜레라가 다시 번졌다. 하수도의 악취가 콜레라 발병과 전파의 원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죽은 존 스노 의사의 말에 귀를 귀울이기 시작했다. 런던 상수도 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런던시도 끓이지 않은 물은 마시지 말라는 광고를 냈다.

그후 과학자들에 의해 콜레라의 통로가 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백신이 개발되면서 무시무시했던 콜레라는 무력화되었다.

런던 하수도 공사는 악취를 제거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하수도 개선공사로 우물과 펌프에서 나오는 물의 질도 좋아졌다. 위생이란 관념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882년의 런던 하수처리시스템 지도 /위키피디;아
1882년의 런던 하수처리시스템 지도 /위키피디;아

 

애비 밀의 펌프 시설 /위키피디아
애비 밀의 펌프 시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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