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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
500년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이유…유럽인 팽창욕에 움츠리는 조선 조명
마젤란 세계일주 후 하나의 지구촌 500년
2019. 06. 01 by 김현민 기자

 

1519920일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5척의 배에 선원 270먕을 태우고 지도에도, 지식에도 없는 바닷길을 떠났다. 남아메리카 끝 마젤란 해협을 돌 때에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는 희망없는 행해를 계속한 끝에 필리핀 섬에 도착했다.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죽었지만, 남은 선원이 스페인에 되돌아 갔다. 이들의 위험한 항해는 인류로 하여금, 지구가 둥글고, 출발하면 원점으로 돌아올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마음껏 지구촌을 여행한다. 유럽도 가고, 미주도 간다. 대도시 여행에 싫증나 오지 여행도 인기다.

이 당연한 사실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인류는 너무나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마젤란의 세계일주 24년후 1543년에 나왔지만, 당대 유럽인의 머릿속을 지배한 기독교 세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1세기 후인 1616년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종교재판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지동설 포기서약을 했을 때에도 새로운 지식과 기존의 고정관념은 첨예하게 대치했다.

 

마젤란 세계일주로 /브리탠니카 백과사전
마젤란 세계일주로 /브리탠니카 백과사전

 

유럽인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배를 타고 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500년은 유럽인들의 시대였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몰랐던 미지의 세계를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먼저 깨친 기술력과 사상적 우월감으로 아메리카의 두 대륙을 삼켰고, 아시아로, 아프리카를 침략했다.

또다른 곳, 북쪽에서는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를 깨고 얼어붙은 대륙을 밀고 동진했다. 그들은 중화의 세계에 안존해 있던 동아시아를 북쪽에서 압박했고,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까지 나아갔다.

그 사이에 동아시아는 지리적 탐험이나, 기술개발, 사상적 발전에 더뎠다. 고루한 유교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했고, 해양 진출을 금지했다. 어쩌다 보이는 서양 배를 이적(夷狄)으로 간주하며 자기고립의 상황에 매몰되었다.

특히 조선은 은둔의 나라그 자체였다. 공맹의 가르침에 매몰되고, 남과 북쪽에서 진출하는 서양 오랑캐의 움직임에는 둔감했다. 어쩌다 마주친 서양인은 파멸시켜야 할 짐승이었다. 그것이 올은 일, 즉 선()이요 진리로 알았다. 지금 와서 위정척사니 하며, 고리타분한 유교를 비판하지만, 그때 어디 감히 그런 말을 내뱉을수 있었겠는가.

인류 역사는 오래되었다. 우리 역사도 반만년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기나긴 역사 속에 우리의 삶을 규정할수 있는 기간은 짧은 500년이다. 500년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의 90% 이상을 규정하고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500년의 역사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많았다. 부와 패권의 이동에 관한 분석서들도 널려 있다. 그런 분석들을 토대로 우리의 삶을 규정한 지난 500년의 역사들을 짚어보는 기회를 갖기로 한다.

 

잘릴레오 갈릴레이과 수학자 비비아니 그림(1892, Tito Lessi) /위키피디아
잘릴레오 갈릴레이과 수학자 비비아니 그림(1892, Tito Lessi)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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